brunch

매거진 편지 Letter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스텔 Sep 15. 2023

희망에 대하여

이걸 희망이라고 해도 될까


한도 끝도 없이 이어져서 죽을 때까지 들러붙어 있을 것만 같던 정신병(우울과 불안)이 미미하게나마 옅어졌나 싶은 순간들이 있어. 정말 놀랍게도 그래.

한줄기 희망이냐고? 아니... 줄기보다 훨씬 가늘고 아슬아슬해서 가벼운 콧방귀에도 툭 끊어질 것 같은 모양새로 존재하고 있어. 옅어지거나 끊어져 나가기도 하는데 정신 차려보면 다시 이어지고 덧대어져서 조금씩 두께가 생겨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걸 희망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까. 이런 희망이 어떻게, 왜 생겼을까?


스스로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아챘냐면, sns 친구가 쓴 글을 읽으면서야.

원래 내가 알던 나라면, 잔뜩 비뚫어져서 웃기지도 않는 소리라고 냉소하고 말았을 내용이었는데 작금의 나는 비틀리지도, 냉소하지도 않고 조용히 긍정했어. 그리고 스스로 조금 놀랐어. 무슨 내용이었냐고?

10대, 20대보다 30대가 훨씬 더 좋으니까 버티고 살아보자는 글이었어. 나는 1년 전쯤에 브런치에 나이 듦에 관해, 그 절망에 관해 장탄식을 늘어놓은 적이 있는데... 그 사이에 뭐가 변한 건지는 잘 모르겠어.


그때에 비해 특별히 상황이 나아졌는가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아. 여전히 미래는 암담하고, 경제적으로 몹시 불안하고, 스스로에 대한 혐오는 멈추지 못한 채 비척거리며 하루를, 오늘을 겨우 버티고 살아내고 있어. 당장 몇 개월 후면 또 한 살이 추가될 거고 마흔이 코 앞으로 바짝 다가왔는데.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나이 듦에 대해 관대해졌을까. 내가 견뎌야 할 몫은 그대로, 살아내야 하는 지난함도 그대로, 죽지 못해 살고 있다는 감각조차 그대로 지니고 있음에도 죽는 것보다 살아있는 게 낫고 20대보다 지금이 더 좋다는 말을 어떻게 이렇게 편안하게 긍정할 수 있을까.


이 변화의 이유를, 모른다고 말하지만 내 무의식 깊은 곳에선 틀림없이 알고 있을 이 이유를 밖으로 끄집어내 더 크게, 넓게 긍정하도록 하는 게 새로운 나의 과제라는 생각이 들어.


살아있길 잘했다고 내 스스로 기어코 인정하게 만드는 일 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트루먼 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