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사라지고 말 반짝임이라도
네일아트를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책 사는 일 다음으로 좋아한다.
두 행위를 비용적인 면에서 손익계산서를 따져가며 비교해 본다면, 책은 사서 손해 볼 일은 없다. 끝내 읽지 않으면 중고로 되팔 수 있고(다만 책의 중고가격은 좀 너무한 부분이 있다) 되팔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언제든 내켜서 읽고 나면 뭐든지 간에 그 흔적을 남긴다. 재미 또는 교훈, 혹은 몰랐던 사실의 발견 같은 것들을. 또는 나도 몰랐던 내 호불호를. 그러나 네일아트는 찰나의 기분전환, 그뿐이다. 그마저도 금방 사라진다. 물리적으로도 없어진다. 언젠가는 지워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산업은 대부분 이처럼 부질없고 허망한 것이 주를 이룬다. 색조(또는 피부) 화장만 봐도 그렇다. 네일아트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화장을 하고 나면 내 본 얼굴보다 좀 더 화사하고 보기에 좋도록 변하니까 당장에 기분은 조금 좋아진다. 그러나 이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중간중간 살피며 신경 써야 한다. 잠들기 전에는 지워야만 한다.
다만 나는 화장과 화장품에는 관심이 없고 잘하고 싶은 욕심도 없다. 그저 맨얼굴로 다니는 게 제일 편하고 좋은 사람이라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다.(여성 노동자에게 화장을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게 아니라 필수요소로 강요하는 직업군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는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네일아트는 몹시 좋아한다. 다만 스스로 예쁘게 할 재주가 없다. 그렇다면 돈과 시간을 조금 들이면 된다. 가만히 앉아서 손을 맡겨두면 전문가가 알아서 원하는 디자인으로 공들여 예쁘게 만들어준다.
이 때문에 페미니스트로서 한동안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네일아트는 예쁨과 기분전환이 제일 큰 장점이고 나머지는 미미하다. 실은 단점이 좀 더 많은 미용 코르셋이기도 하다. 네일아트를 하는 이들 역시 이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좋으면서 싫고 하고 싶은데 하기 싫었다. 이도저도 아닌 채로 애매하게 중간에 걸쳐있었다. 탈코르셋 운동이 불어닥치기 시작했을 당시에는 이 괴리가 더 컸다.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스탠스를 정하지 못해 정말 괴로웠다. 그냥 깔끔하게 포기해 버리면 괴로울 일이 없는데 포기가 안 되는 게 문제였다.
한동안 이를 두고 한참 내적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운동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손톱에 뭘 덜 하게 됐다. 클라이밍을 하게 되면서는 손톱을 바짝 깎지 않고서는 클라이밍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더더욱 신경을 안 쓰게 됐다. 헬스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손톱이 조금만 길어도 바벨이나 덤벨을 제대로 쥐기가 번거로워서 자연스레 멀리하게 됐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네일샵sns계정을 살피며 새로운 디자인을 찾았고 셀프네일에 도가 튼 사람들 영상을 따라다니며 흠모했다. 여성주기가 불어닥칠 때면 물리적인 고통 탓에 운동을 못하니까 스트레스의 반작용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작정한 것처럼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디자인을 골라 샵을 찾았다. 십여만 원을 그렇게 손톱 꾸미기에 태우고 나면 만족감이 차오르다가도 일주일이면 무감해진다. 2주가 넘어가면 조금 지겨워진다. 4주째에 달하면 답답해진다. 손톱은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기 마련이고 붙어있는 젤도 함께 밀려 올라간다.
손톱연장시술을 받은 경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일상 속 소소한 불편함은 배가 된다. 대체로 많이들 물어보는 게 머리 감을 때 불편하지 않냐는 내용인데. 머리 감기는 아무렇지 않다. 손톱에 화려한 디자인을 올리고 생기는 불편감은 의외의 상황에서 생겨난다. 크기가 작거나 두께가 얇은 무언가를 섬세하게 집을 수 없다. 작은 물건이나 카드 혹은 명함이 대표적인 예다. 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줍는데 한세월 걸린다. 소프트렌즈를 착용하는 이라면 이를 마음 놓고 탈착 하기 어렵다. 익숙해지면 요령이야 생기게 마련이라지만 애초에 안 했으면 없었을 문제다. 귀걸이, 피어싱, 목걸이와 같은 액세서리를 착용한다면 바꿔끼는데에 상당한 공력을 들여야 한다. 컴퓨터 키보드 타이핑을 할 때 손가락에 무리가 많이 간다. 손가락을 제대로 굽힐 수 없기 때문에. 스타킹을 신고 벗을 때 올이 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처럼 긴 손톱은 보기에는 화려할지 몰라도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속 빈 강정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들이 젤네일을, 손톱연장시술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단순하게 자기만족이라기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나만 해도, 자기만족이라거나 스트레스해소와 같은 이유를 대지만 이게 이 행위를 포기하지 못하는 전부는 아니다. 과시일 수도 있고 홧김비용일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설명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여전히, 후회할 것을 알면서 혹은 금방 질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네일아트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금방 사라질 반짝임에 불과한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