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머리깍기 6년차.. 가위손이 되다
동부로 지금 사는 곳에 이사와서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되든 안되든 머리를 질끈 묶고 살면 되는데
가운데 머리 부터 빠져가는 남편의 머리는
주변머리가 너무 길어지기 전에 커트를 해야한다.
어느 일본인이 야매(?)로 집에 출장이발을 해준다 하기에 그분의 연락처를 받았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질 않아서 알아보니
모르는 전화번호는 안받는다고 했다.
아들과 같이 살 때 였는데, 자기의 뻣뻣한 생머리를 멋지게 투블락으로 잘 쳐준 적 있다기에
아들 이름대고 '나 OO이 아빠다' 밝히는 문자를 보내고 나서야 우리집에 왔다.
그러다가 그분도 투잡 힘들다고 그만두셨는데
마침 동네에 한인부부가 뉴저지에서 델리를 하다가 미용을 배워 이사를 왔다.
정식 허가증을 가지고 계시며
가게를 오픈하기 전 잠시 그분들 집에서 헤어컷 하신다고 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남편은 부지런히 알아서 예약을 하고 머리가 길면 바로바로 가서 이발을 하고 왔다.
그러다가 코비드19가 터지고
갑작스런 불경기에 할 수없이 두 분은 딸이 있는 씨애틀로 이사를 가셨다.
또 다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우리는
코비드기간이니 어디 갈 수 도 없었고
결국 난 남편을 위해 아마존에서 구입한 바리깡을 들었다.
남편은 그동안 예약하기 번거로왔는데 너무 너무 좋다고 마냥 신나한다.
바리깡이 뭔지도 모르는 쌩짜배기에게 자기의 머리를 맡기곤
"옆을 확 올려줘, 겁내지 말고 그냥 밀어. 아 괜찮다니까.."
"아니 이걸 어떻게 올리라는 거야" 하다가 그만 한쪽 머리가 확 밀려버렸다.
순간 아찔했다. 어쨌거나 그 길이에 다 맞춰야 할 것 같아서
여기 저기 밀었는데 덜덜 떨려서 1시간이나 걸렸다.
발랄했던 남편이 말이 없이 조용해진다.
"아 그러니까 왜 나한테 하래냐고, 나 안해봤다고 했는데 ㅠㅠ"
"괜찮아.. 머리는 곧 자라는데 뭐"
다음 날 만난 지인분이 남편 머리를 보더니 손좀 봐줄까 물어본다.
남편은 괜찮다고 했다.. 앞에서 보면 그래도 좀 괜찮은것 같은데
뒤쪽으로 갈 수록 쥐파먹은 부분이 있었다.
그라데이션이 안되가지고ㅠㅠ
숫이 없고 속이 점점비어가는 스타일은
바리깡으로 머리를 깎을 때는 진정한 스킬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머리는 곧 자랐지만.. 나는 첫날보다 실력이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더 실수를 했다.
어쩌면 이리도 손재주가 꽝인지.. 마이더스가 아니고 마이너스의 손이다.
어느날 남편은 조심스럽게 나에게 푸념비슷한 리뷰를 남겼다.
'자꾸하면 실력이 점점 더 나아져야 하는 데 첫날이 제일 잘 짜른거 같아'
그렇게 시작한 남편 머리 깎아주기가 오늘로 6년째다.
지고지순 나를 믿고 머리를 맡긴 남편 덕에
오늘은 바리깡 쥔 손이 날라다닌다.
15분이면 끝~~~
난 가위손이 되었다.
(그림출처 : Freep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