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도시 매거진 vol.03_군산 (6)
매력대담: 윤주선 x 매력도시연구소
윤주선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조성익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매력도시 매거진 편집장
이호 FIT Place 대표, 매력도시 연구소 연구원
김정영 비제이플랜 상무, 매력도시 연구소 연구원
해가 저물자 윤주선 박사는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며 우리를 <거북이 식탁>으로 안내했습니다. 도시 전문가 윤주선 박사가 강력 추천하는 군산의 명소, <거북이 식탁>은 월명동 인근의 술집입니다. 오래된 2층 집을 개조한 가게였는데, 맥주 상자들이 어지럽게 쌓여있는 좁은 마당을 지나 한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만한 계단을 올라갔더니 작은 방이 있었습니다. 초저녁인데도 손님들이 방을 메우고 왁자지껄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마치 비밀스러운 뒷골목 파티에 초대된 느낌이었습니다.
천장에는 울긋불긋 조명이 달려 있고, 자개로 만든 테이블에는 막걸리와 소주병들이 널려있습니다. 아, 자세히 보니 자개 테이블이 아닙니다. 자개 문양을 종이에 인쇄해서 붙인, 무늬만 자개인 테이블입니다. 별난 취향이지만 섬세하게 꾸몄습니다.
윤주선 박사의 표현을 빌리면, "사장님, 공간, 메뉴. 3요소의 느낌이 하나로 일치하는 가게"가 거북이 식탁이라고 합니다. 공간의 개성은 딱 봐도 알겠고, 사장님과 메뉴는 나중에 만나보겠습니다.
이번 군산 취재에는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의 윤주선 박사가 동행했습니다. 도시재생, 즉 지방의 소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 정책을 깊이 연구한 전문가입니다. 윤주선 박사가 최근 몇 년간 애정을 담아 연구 및 활동을 하고 있는 도시가 군산입니다. 거의 매주 한번 꼴로 군산을 다니는 그가 함께 했으니, 곳곳의 매력 공간과 매력적인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뿔테 안경 너머로 둥글둥글하게 웃으면서도 핵심을 날카롭게 짚어서 말하는 박사님인데, 술도 잘 마시고 술자리 대담도 유쾌했습니다.
작고 단단한 소형차 같은
도시가 될 것인가?
매력도시연구소(이하 매력도시)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익산역으로 와서, 다시 차를 타고 군산으로 이동을 했는데요. 역과 도심의 거리가 멀군요.
윤주선 현재 위치의 군산역도 공설시장 쪽에서 이전하면서 도심 접근성이 떨어졌어요. 군산을 방문하는 2, 30대들은 대부분 기차를 이용할 텐데, 기차역과 가볼 곳 사이의 거리가 멀어서 불편하죠. 군산에서 숙박을 하는 경우 숙소가 역 근처에 있다면 다음 날 아침 일찍 이동하기 편할 테고... 그 점도 아쉽죠.
매력도시 군산 뿐 아니라 대부분의 소도시들은 기존 도심과 기차역의 거리가 멀죠?
윤주선 새로운 기차역의 위치를 정할 때 아무래도 땅값이 저렴한 도시 외곽을 고르게 되죠. 그리고 신역 주변으로 아파트 짓고 쇼핑몰 지어서 개발하려는 것도 있고. 신규로 역세권을 개발해야 여러모로 새로운 세금 수입도 생기니까, 구도심의 접근성을 고려하기보다는 개발이 용이한 쪽으로 가게 마련이죠.
실은 소도시일수록 주요 도시 시설을 한곳에 집중해도 살아남을까 말까인데, 행정가들은 일단 확장하는 것부터 머릿속에 떠올려요. 일본에서 '축소 도시'에 대해 연구하고 들어와서 우리 공무원들에게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설명을 했더니, 자리를 박차고 나가시더라고요. 우리 도시를 뭘로 보고 이러냐. (웃음) 조금만 노력하면 다시 커질 수 있다. 관광객도 많이 앞으로 돌아올 거다. 이 분들의 꿈이죠.
컴팩트 시티 Compact City. 쉽게 말하면, 도시의 중요한 시설을 분산 배치하지 말고 최대한 중심부에 모으자, 이런 주장입니다.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 일본의 지방 도시들이 살아남기 위해 찾아낸 도시 발전의 기본 방향입니다.
소도시일수록 도시의 시설들을 모으고 또 모아서 작고 단단하게 만들자. 필요한 기능을 작은 공간에 집약한 소형차 같은 도시가 되어야 경쟁력이 있다. 이런 생각이 축소 도시의 철학입니다.
장점은 분명합니다. 소형차처럼 도시 전체의 운영 비용이 줄어듭니다. 보수해야 할 도로의 길이도 줄어들고, 한적한 도로에 할 일 없이 켜져 있는 가로등도 없어집니다. 당연히 주민의 세금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죠.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작은 도시가 되면 거리에 활력이 생기고 장사 잘되는 가게가 늘어납니다.
매력도시 정치와 행정을 이끄는 리더들의 특징이죠. 꿈을 크게 꿔라.(웃음)
윤주선 꿈을 꾸는 것은 좋은데, 자신들의 도시가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을 기준으로 꿈을 꾸시는 거죠. 지금의 소도시는 마치 스펀지 같습니다. 넓어지기만 하고 그 사이사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것이죠. 스펀지를 손으로 꽉 쥐어짜서 공극을 없애면 컴팩트 도시가 됩니다. 철도 국가인 일본의 경우, 동네의 중심에 기차역이 있어요. 기차역을 중심으로 중요한 시설들이 모여있죠. 군산 대명동에도 <구역전 종합시장>이 있는데요. 말 그대로 시장 앞에 역이 있었다는 거예요. 지금은 시장만 남았지만. 만약 기차역, 시장, 작은 가게가 한 곳에 모여있다면 이곳이 훨씬 활기차고 좋아졌을 거예요.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시장에 들러 음식을 사고, 집이나 숙소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컴팩트 시티. 원래 소도시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속철도가 생기면서 이제는 그런 도시를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지역을 대규모로 개발해서 새로운 역세권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빠르고 쉽게 도시에 갈 수 있게 된 대신, 역에서 도시의 주요 지점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버스와 자동차를 타야 합니다.
기차역이 도시의 현관이라면, 현관에 도착해서 한참 걸어가야 거실과 주방이 나오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소도시의 중요 시설들이 기차역을 중심으로 알차게 모여있는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펀지형 도시냐,
컴팩트형 도시냐.
매력도시 스펀지형 도시냐, 컴팩트형 도시냐. 펼칠 것인가 모을 것인가. 매력 소도시의 전략으로 행정이 생각해야 할 기본 철학이 아닐까요.
윤주선 예를 들어 이 동네도 전봇대 지중화 사업에 많은 돈을 썼어요. 물론 동네 전체의 경관을 좋게 만드는 중요한 사업이긴 합니다만, 뭐가 먼저일까, 우선순위를 생각해보세요. 예산을 넓게 펼쳐서 쓰는 게 맞을까. 집중해서 매력적인 지점을 만드는 게 맞을까. 지중화 사업이 먼저일까, 도심 곳곳의 가치 있는 건물들을 발굴하는 게 먼저일까.
철학은 도시에 돈을 쓰는 방법에 반영됩니다. 안 그래도 예산이 부족한 소도시의 경우, 필요한 부분에만 딱딱 집중해서 컴팩트한 지출을 하면 참 좋겠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우리 집 앞은 전봇대 지중화 안 해주는 거야. 우리 가게 앞에도 산책로 만들어줘. 넓게 돈을 쓰면 이런 요구에 대응하기에 편합니다. 정치와 행정의 기본적인 속성이기도 한데, 보다 많은 사람에게 공평하게 돈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작은 포인트에 집중해야 매력이 생긴다는 것. 머리로는 잘 알지만, 막상 덜어내고 포기해야 할 일들이 눈 앞에 아른거리면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죠.
매력도시 크고 넓게 펼치는 것이 속성인 정치, 행정, 자본이 컴팩트 시티를, 매력 소도시의 운영을 이끈다는 것이 쉽지 않겠어요. 다른 방안이 있을까요?
윤주선 '지역 운영 Area Management'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동네의 작은 범위에 집중해서 마을을 경영하고 지역을 브랜딩 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죠. 주민과 행정의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겁니다. 지금 제가 군산에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예요. 행정가들을 열심히 설득해서 진행하게 되었죠.
자, 여기까지가 1차. 윤주선 박사는 또다시 '반드시 확인'해야 할 곳이 더 있다며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2차는 월명동 <고랫등>. 갓 구워 따끈따끈한 새우전을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밤이 깊었지만 활기 가득한 동네입니다.
개인과 행정을 연결하는
사람들
앞서 말한 것처럼, 윤주선 박사는 소도시가 지속적으로 매력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개인과 행정 사이를 조정하는 지역 운영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개인은 자신의 가게와 내 집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시야가 좁습니다. 행정은 넓고 공평하게 펼치다가 도시 매력을 집중 개발하지 못하기 마련이죠. 지속적으로 좋은 동네가 되는 것을 목표로 개인과 행정의 욕구를 조정해주는 장치를 둔다면? 윤주선 박사가 설명하는 '지역 운영회사'의 역할입니다.
매력도시 개념이 생소한데, 비슷한 사례가 있나요?
윤주선 이미 일본은 몇 백 개 단위의 마을 운영 회사가 있고요. 뉴욕의 타임스퀘어 프로젝트의 경우, 광장의 관리를 행정이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타운 매니지먼트 Town Management를 전문으로 하는 민간회사에서 맡겨서 하고 있어요. 낙후된 도시 공간을 기획하고 설계로 연결되게 도와주고 운영을 해주는 회사죠. 덕분에 사람들이 오고 가며 도시가 활성화되고 가게들도 수익이 나고요. 그리고 가게들은 자기 수익의 일부를 할애해서 동네가 계속 유지 관리되도록 하는 거죠.
우리도 한번 해보려고 열심히 노력 중인데... 쉽지만은 않습니다.
처음 하는 일인데 쉬울 리가 있습니까.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려 하고, 힘든 일은 운영회사에 의존하려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빨리 나타났으면, 하고 조바심을 내는 행정을 달래야 하는 과제도 있고요.
윤주선 군산 인구 27만. 이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도시를 다시 일으키는 계획을 세우는 일은 대단히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에요. 게다가 문제는 행정에서 과도하게 도와주고 비용을 대면, 개인들의 야성野性이 없어집니다. 어쨌든 기댈 데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조금만 일이 틀어져도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불만이 늘어납니다. 제가 그들을 설득하는 가장 중요한 논점은, 세금은 개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주는 거다, 라는 것이죠. 개인은 각자의 살길을 열심히 찾으면서요.
3차 까지 가야할 분위기. 이론과 현장을 오가는 사람만 발견할 수 있는 통찰이 이어졌습니다.
윤주선 쉽지 않은 과정을 겪으며 들었던 말 중에 저에게 가장 큰 힘을 줬던 말은, ‘역사에 생략은 없다’였어요. 결국 다 겪어야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는 거죠.
맞는 말씀. 윤주선 박사도 그렇고, 군산도 그렇습니다. [매력도시연구소]
매력도시 매거진 vol.03_군산
1편: 군산, 인터내셔널을 준비하라
4편: 마을의 파수꾼, 게스트 하우스: 죽성동 화담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