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력도시 연구소 Jun 08. 2018

술집이 보물: 거북이 식탁

매력도시 매거진 vol.03_군산 (7)


좋은 술집은 매력 도시의 보물이다.


이런 주장을 해봤자, 술 안 마시는 분들은 공감하실리 없겠죠? 술꾼들 조차 '뭐 보물일 것 까지야'라고 생각하실겁니다. 브라질 쿠리치바 시장님이었던 자이메 레르네르의 아름다운 글을 인용하자면,


바 Bar 의 카운터는 깔끔한 출발 지점이다. 수영장 레인 끝에서 턴을 하는 동작에 비유하자면, 바에서 기분 좋게 턴을 하여 하루 중 가장 개운한 시간대로 들어가는 셈이다.


어떻습니까, 이 멋진 비유. 50미터 레인을 전속력으로 헤엄쳐와서 플립턴을 한 후, 잠영으로 고요하게 미끄러지듯 출발점을 향해 돌아가는 당신. 적당히 어둑한 조명, 부드러운 저녁의 음악, 두툼한 나무 카운터, 차가운 글라스에 넘칠 듯 따라주는 맥주가 하루의 반환점에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한 문장 더 인용하자면,


산세바스티안의 지하 술집부터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 앞에 있는 바에 이르기까지, 카운터는 고독에 맞서고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침술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왁자한 대화를 나누고 나면 다음날 다시 스타트 플랫폼에 올라설 수 있는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도시의 술집은 우리가 고독한 레이스를 버텨내도록 격려하는 치유의 공간이자, 이웃들과 여행객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공동체 시설입니다. 


게다가 술집의 이런 역할은 전 세계 만국 공통입니다. 미국인이든 영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저녁의 선선한 바람이 불면 카운터에 앉아 위스키에 잠긴 얼음을 바라보며 하루를 반추합니다. 낯선 출장지와 여행지에서도 '어느 뒷골목에 좋은 술집이 숨어있을까', 내 마음에 맞는 보물을 찾아내려고 뒷골목을 탐험합니다. 인종과 성별을 초월한 술꾼들의 저녁 본능이죠. 혈자리에 좋은 술집이라는 침을 한방 맞으면 혈액과 기운이 도시의 길을 따라 돌고, 밤은 활력을 찾습니다.


좋은 술집이라는 침을 한방 맞으면
도시의 밤은 활력을 찾습니다.


앞선 글에서 윤주선 박사님과 대담을 나눴던 군산의 술집, <거북이 식탁>을 추후에 자세히 소개하겠다고 했는데요. 비밀스러운 골목 파티가 벌어질 듯한 월명동 인근의 독특한 술집이었습니다. 가게를 만든 주인공은 거북이 식탁의 셰프 겸 사장, 김은영 대표입니다.


"이 동네는 봄, 가을이 좋아요. 해가 길어지고 사람들이 여유롭게 오가는 골목 분위기가 특히."

사이즈가 넉넉한 회색 후드티셔츠 차림으로 1층과 2층을 오가며 손님을 살피던 김은영 대표가 잠시 짬을 내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음식 준비를 해둔 다음, 영업을 시작하는 6시까지 가게 앞에 자리를 깔고 커피 마시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해요. 이곳에서 삶의 여유를 알게 되었죠."

삶의 여유뿐 아닙니다. 서울에서 바쁘게 살아가던 그는 군산에서 일하다 만난 여자 친구와 결혼, 본격 '군사너 Gunsaner'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눈길을 끌었던 무늬만 자개 테이블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자개 문양을 프린트해서 붙여둔 재치 있는 물건입니다.

"가게를 찾다가 이 공간을 딱 보는 순간 자개 테이블이 어울리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진짜 자개는 구하기 힘들고... 허허."


허허. 자개 테이블이야 뭐, 손님들이 좋아하시면 됐지. 이은영 대표는 푸근한 표정으로 말을 줄입니다. '가게 사장과 공간의 분위기가 닮아있다'는 윤주선 박사의 표현에 공감했습니다.

처음부터 저 푸근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서울에서 빠른 속도를 뒤쫓아가며 일했었고 일과 삶의 균형이 위태로웠던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군산의 봄과 가을을 체험하고 세련된 멋쟁이에서 둥글고 푸근한 인상의 거북이 사장님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더 내려가고 싶어요. 더 느린 곳으로. <거북이 식탁>의 경험과 브랜드를 가지고 언젠가는 군산 보다 더 느린 곳에 가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여기까지 와서 또다시 속도와 욕망에 휩싸일 수는 없으니까요."


거북이 식탁은 우리가 지방 소도시 뒷골목에서 찾아내고 싶은 바로 그 술집입니다. 소박하지만 주인의 개성을 발휘해서 섬세하게 꾸민 공간. 푸근한 음식과 개성 넘치는 공간을 찾아 우리는 낯선 도시의 밤을 탐험합니다.

거북이 식탁의 김은영 대표는 우리가 지방 소도시에서 만나보고 싶은 바로 그 인물입니다. 빠른 속도를 경험한 끝에 거북이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장사를 시작 전 가게 앞에 앉아 골목 풍경을 느긋하게 지켜보는 사람. 내가 사는 동네에서, 혹은 처음 여행을 가본 도시에서 이런 술집과 술집 사장님을 만난다면, 보물을 하나 찾은 기분일 겁니다.


그러니 실은 술집이 매력도시의 보물이라기보다는 술집 사장님이 보물입니다. 마스터 Master가 만들어낸 분위기와 음식의 신호에 이끌려 우리는 도시의 작은 공간에 모입니다. 이런 보물 같은 장소를 당신도 알아봤군요! 한 공간에서 술을 마신다는 이유로 손님들은 동질감을 느낍니다. 가게를 늘 지키고 있는 마스터의 단골손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손님들은 서로 눈인사를 나누고 유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레르네르 시장님도 술집 주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바가 이따금 지루해질 수도 있는데, 이런 지루함은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브라질 포수스지카우다스에 있는 어느 바 주인은 분위기가 지루해진다고 느낄 때마다 벨을 울려 손님들에게 경각심을 준다. 바 주인의 책임감이 얼마나 투철한가!


갑자기 벨이 울리면 깜짝 놀란 사람들이 멍한 표정을 짓습니다. 잠시 후 다들 와하하 웃으면서 술집에 다시 활기가 피어납니다. 아직도 어리둥절해하는 낯선 손님들에게 벨이 울린 이유를 알려주며 함께 즐거워합니다 



술과 안주는 세대를 연결하는 고리입니다. 20대 젊은이들의 술상에도 50대 아저씨들의 술상에도 처음처럼과 삼겹살 파무침이 놓여 있습니다. 두 그룹 사이에 도저히 메워질 수 없는 취향의 간극이 존재하는데도 말입니다. 방탄소년단과 진시몬 정도의 간극 말입니다. 의, 식, 주, 대부분의 소비 취향에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은, 특히 문화에 대해서는 서로에게 약간의 적대감마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술집에서만큼은 하나가 됩니다.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음식을 먹고 마십니다. 희미하지만 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정을 느낍니다. 단골 어르신들이 드시는 메뉴를 슬쩍 훔쳐보고 20대 여성이 '나도 저걸로' 하는 곳이 술집입니다. 


보물 같은 술집이 있다면
매력도시가 맞습니다.


성별과 세대의 계곡을 연결하는 다리. 그나마 우리 도시 어디에 이런 공간이 남아 있습니까? 이곳에 기대서 개인은 격려를 받고, 공동체는 서로 존재를 확인합니다. 너그러운 술집 주인의 배려가 뇌리에 남아 오래 전 갔었던 도시의 골목을 다시 찾아가게 됩니다. 보물 같은 술집이 있다면 매력도시가 틀림없습니다. 

자, 그러니 군산에 가시면 거북이 식탁과 고랫등 같은 동네의 보물에서 기분 좋은 턴을 하시기 바랍니다.


바르셀로나의 유명 선술집 라참파녜리아, 뉴욕의 아이리시 퍼브, 리우의 평범한 선술집에 이르기까지 모든 바에는 연대의 정서가 있어야 한다. 가족들은 더 이상 참고 들어주지 않는 똑같은 옛날이야기를 몇 번이고 들어주는 인내심도. [매력도시연구소]



Reference

자이메 레르네르 Jaime Lerner +


매력도시 매거진 vol.03_군산

1편: 군산, 인터내셔널을 준비하라

2편: 9회 말 투아웃, 역전의 명수 군산

3편: 동네 책방, 매력도시의 지표생물

4편: 마을의 파수꾼, 게스트 하우스: 죽성동 화담여관

5편: 군산의 악동: 앙팡 테리블 조권능

6편: 펼칠까, 모을까. 소도시 매력 작전

매거진의 이전글 펼칠까, 모을까. 소도시 매력 작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