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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력도시 연구소 Jun 15. 2018

역전의 명수 군산, 탐험과 안심의 도시

매력도시 매거진 vol.03_군산 (8)

매력대담: 조성익 x 이호


조성익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매력도시 매거진 편집장

이호       FIT Place 대표, 매력도시 연구소 연구원



"잊혔고, 재발견된 도시"


2018년 봄, 세계적인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모노클 Monocle>이 군산을 취재했습니다. 전 세계 각양각색, 좋은 도시란 도시는 다 가봤을 글로벌 매거진이 군산을 주목한 겁니다. 뒷골목을 샅샅이 뒤져서 도시의 숨은 매력을 찾아내는 특유의 취재 방법으로 모노클이 내린 결론은 이겁니다. '재발견된 도시.' 


한때 도시가 구가하던 화려한 시절은 잊혔지만 새로운 세대가 도시의 매력을 다시 발견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재발견의 과정에 있는 지금의 군산은 옛것과 새것, 역사와 현재, 토박이와 관광객의 교차가 어느 때 보다 활발합니다. 

잘 가꾼 정원이 있는 돌 집에서 오래된 병원이 아직도 영업 중인가 하면, 디지털카메라로 옛날식 흑백 초상화를 재현해서 찍는 사진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관광객들은 일본식 주택 <히로쓰 가옥>을 배경으로 연신 '예쁘다'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다가, <동국사>의 소녀상 앞에 서서 마음 아파합니다. 군산 아주머니가 전통 방식으로 만든 반 건조 생선을 구워주는 식당 <일력생선>에서 저녁을 먹고, 서울에서 온 사장님이 키치 스타일로 꾸민 술집 <거북이 식탁>의 자개 무늬 탁자에 앉아 술을 마십니다.



모노클이 글로벌 관점에서 군산을 취재하고 내린 군산의 매력은 이런 두 세대 사이에서 활발하게 일어나는 간극과 접촉이었습니다. 도시에 남겨진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자신들의 것으로 다시 발견하는 사람들이 군산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때로는 모순되고 혼돈스러운 이들의 에너지가 군산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찬스와 위기가 동시에 닥친 군산,
판을 흔드는 작전은?


이런 좋은 뉴스에도 불구하고, 군산 사람들의 마음은 한편으로 무겁습니다. 오랫동안 지역의 경제를 떠받히고 있던 공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미래도 낙관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 도시들이 대규모 기업과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지금, 동북아시아 서해안의 작은 소도시가 어떤 장점을 내세워 이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요?

한편으로는 웃고, 다른 한편으로는 울고 싶은 심정이 지금의 군산입니다. 찬스와 위기를 동시에 맞이한 군산. 그 유명한 군산상고의 야구부처럼, 이 도시는 역전승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조성익   군산이 역전의 명수가 되기 위해서 뭘 해야 할까요? 미래의 매력도시가 되기 위해서요. 게임의 판을 흔드는, 큰 안목의 작전을 이야기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호   작전을 정하기 전에 지금까지 게임이 어떻게 흘러왔나를 살펴보죠.

단순하게 정리하면, 현재의 군산은 두 개의 축이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기획하여 만든 산업도시가 하나의 축이고, 젊은 세대가 발견한 레트로 시티 Retro city (복고풍 도시)가 다른 하나죠. 지금까지의 도시 발전 과정에서 이런 두 개의 자산을 손에 쥐게 되었어요. 자, 앞으로 어떻게 게임을 풀어낼까? 앞으로 어떤 칼라를 가진 팀이 될까? 이것이 커다란 질문입니다. 



조성익   레트로 시티는 누가 뭐래도 요즘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생각하는 군산 매력의 원점일 텐데요. <히로쓰 가옥>, <미곡창고> 같은 근현대의 공간 자산이 잘 보존되어 있으니까요. 지금 시대에 맞는 시설로 이용하기도 좋은 공간이고요.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문화가 아니라,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문화라는 것도 군산이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기 쉬운 장점입니다. 전주, 안동 같은 전통도시가 빈티지 Vintage라고 한다면 군산은 모던 레트로 Modern retro라고 해야 할까요. 붉은 벽돌로 지은 낡은 창고는 카페와 갤러리로 이용하기 좋습니다. 

쿠바 아바나에 아직도 살아남아 택시로 이용되는 올드카처럼, '현재에 활용되는 과거'가 군산의 독특한 자산입니다. 


이호   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군산은 요즘 흔히 얘기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도시로 시작했다기보다는, 눈으로 보는 비주얼 스타일에 기반하고 있어요. 최근 서울에서는 을지로가 그런 동네고요. 오래된 상가의 구조와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서 카페와 술집이 들어서고 있죠.


조성익   상세히 보자면 레트로 힙 Retro Hip인데, 옛것을 개성 있는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것이겠죠. 엄마가 20년 전에 입었던 샤넬을 독특하고 세련되게 고쳐서 입는 그런 거 말입니다. 복고를 지향한다기보다 복고의 어휘를 뒤트는 방식이고요. 혹은 일부러 과장된 표현을 통해 키치 kitsch 하게, B급의 정서로 표현하기도 하고.




현재에 활용되는 과거, 
군산 매력의 원점


조성익   군산도 그렇고 을지로도 그렇고 새로운 새대가 과거를 재발견하고 자신들에게 맞게 고쳐 쓰는 대표적 사례겠군요. 도시와 마을에 이런 근近 과거 유산이 남아있고, 젊은 세대가 그 안에서 매력을 포착했다. 이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군산 매력의 핵심입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죠. 이런 복고풍 스타일의 이면에 있는 것들 말입니다. 군산의 도시 구조와 컨텐츠 매력은 어떤가요?


이호   취재를 하며 먹고 마시고 숙박을 해보니, 군산은 도시 어메니티 amenity, 즉 '도시의 생활 편의 시설'이 이미 잘 충족되었다, 라는 느낌이 있었어요. 지방 소도시인데도 불구하고 구색이 잘 갖춰져 있었거든요. 게스트 하우스도 잘 되고 있고, 좋은 바와 레스토랑도 있고, 작은 서점도 있고요.

군산은 안심이 되는 도시구나, 하는 기분이었어요. 매력도시연구소에서 취재한 양양과 비교해보면, 양양은 그런 안심을 주지는 않죠. '서핑'이라는 큰 깃발을 내걸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도시라서, 하나의 아이템, 하나의 항목에 대한 선호가 우선이지 여러 구색을 갖출 필요는 없거든요.



앞서 말한 것처럼, 군산 역시 복고풍이라는 아이템이 1차 매력입니다. 그 하나의 아이템을 보고 일단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런데 막상 도시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1차 매력의 신기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도시 안에 이것저것 여러 가지 물건을 고루 갖춰져 있기를 바랍니다. 숙소도 좋아야 되고, 맛있는 음식도 있고, 자연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식당이 되려면 손님을 끌어모으는 확실한 음식 한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마음에 편안함을 주는 좋은 레스토랑이 되려면 남녀노소를 고루 배려한 음식도 메뉴의 뒷 페이지에 갖추어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족과 함께 가도 안심이 되겠죠. 안심을 주는 구색이 갖춰졌다는 측면에서, 군산은 1차 매력에서 2차 매력으로 넘어가고 있는 지방 소도시의 선구적 모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호   매력도시 연구소가 매력적인 소도시의 지표 생물 指標生物이라 지칭한 요소들이 군산에는 골고루 갖춰져 있었죠. 카페, 베이커리, 인디 서점, 게스트 하우스, 바, 이탈리안 레스토랑 같은 것들 말이에요. 한 세대를 이미 겪고 성숙해가는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성익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에서는 지역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아름답게 편집한 뉴스 레터를 만들어 지역 소식을 알리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만약 소도시가 활발한 예술계 Art scene와  지역 매체 Local media 까지 가지고 있다면, 그건 매력도시의 정점에 다다랐다고 봐야 할 테니까요.



이호   구색을 갖춘 도시냐 아니냐. 이 판단을 내리는 기준은, '대도시에 살다가 군산으로 이사해서 살 수 있어?'라고 자신에게 질문을 해보면 이해가 쉬워요.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몇 개월 몇 년을 살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했다고 치죠. 자, 뭘 보고 그런 결정을 할까요? 

탐험과 안심, 이 두 가지가 충족되면 결정을 내릴 수 있으리라고 봐요. 우선은 대도시와 다른 신기함 있어야죠. 탐험하고 싶은 마음을 자극해야 해요. 


군산의 깔끔한 일본식 골목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아, 나도 이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동차들이 빵빵대며 지나가는 아파트 진입 도로가 지긋지긋하다고 느낄 때쯤 말입니다.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다는 이주 본능. 이것을 자극하는 도시의 독특한 물리적 구조가 우선 필요합니다.


여행은 좋은데,
여기서 살 수 있어?


이호   탐험. 이것이 일단은 우리를 움직이는 동인이에요. 그런데 탐험의 요소가 있다고 해도 너무 위험한 느낌이 있다면 거주를 목적으로 가지는 않죠. 여행은 갈지언정, 불안한 느낌이 있는 곳에서 살 수는 없어요. 이주 가능한 매력도시가 되려면 사람들에게 안심감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도시가 가진 컨텐츠와 사람들이 그 역할을 합니다. 이름 모를 작은 도시에 놀러 갔더니, 내 나이 또래의 사장이 멋지게 꾸민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면 일단 안심이 되는거죠.


조성익   그렇군요. 안심의 핵심은 컨텐츠와 사람이네요. 돌아다니다보면, 여기 살만한가 보구나, 라고 확인이 되는 지점이 있어요. 카페 옆 작은 책방이 있어 들어가 보니 내 취향을 알아맞춘 듯한 책들과 소품이 있다면, 어, 이 동네 어떤 곳이길래? 호기심과 애착이 생기고요.


탐험과 안심. 소도시에서 이 두 가지 요소를 확인하면 우리는 두 번 세 번 같은 도시를 여행하고, 혹은 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제주도가 대표적인 탐험과 안심의 섬입니다. 한라산과 해변의 경관, 독특한 섬 문화가 탐험을 담당합니다. 그러나 제주도를 여러 번 가게 되는 이유는 그곳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노부부, 화려한 생활을 뒤로한 이효리 씨 가족, 좋은 식재료를 쓰는 기분 좋은 식당, 카페, 술집, 이런 것들 때문입니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잘 하면 이곳에 사는 것이 가능하겠구나, 하고 안심을 주는 요소 말입다. 


탐험과 안심을 겸비한
매력도시


모노클이 주목한 (매력도시연구소도 주목한) 군산이 그랬습니다. 군산은 탐험과 안심을 겸비한 매력도시였습니다. 일본 침략기에 남겨진 독특한 자원들이 새로운 세대의 호기심과 탐험 욕구를 자극했습니다. 일본풍 주택에서 디자이너가 작업실을 열었고, 출판사 직원은 독립 서점의 사장님이 되었습니다. 구도심의 낡은 집을 고쳐서 게스트 하우스 파티가 열립니다. 막걸리와 소주도 가능하고 싱글 몰트 위스키와 이탈리아 와인도 찾을 수 있는 소도시입니다. 

과거의 옷을 고쳐 입은 새로운 세대들이 안심하며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도시가 이미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주자들은 베이스를 채웠고, 역전승은 이미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역전의 명수 군산. 이 도시의 매력 작전에 대한 이야기가 매력대담 2편에서 이어집니다.  [매력도시연구소]



Reference

모노클 Monocle: 군산, 과거 위에 짓다. +


매력도시 매거진 vol.03_군산

1편: 군산, 인터내셔널을 준비하라

2편: 9회 말 투아웃, 역전의 명수 군산

3편: 동네 책방, 매력도시의 지표생물

4편: 마을의 파수꾼, 게스트 하우스: 죽성동 화담여관

5편: 군산의 악동: 앙팡 테리블 조권능

6편: 펼칠까, 모을까. 소도시 매력 작전

7편: 술집이 보물: 거북이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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