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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력도시 연구소 Aug 03. 2018

소도시일수록 글로벌하게: 말콥버거

매력도시 매거진 vol.04_안동 (4)


그리고, 대도시일수록 로컬 하게.


<말콥버거>의 황동규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가 떠올린 매력도시 운동의 슬로건입니다. 반전反轉이야말로 매력 중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외모는 한없이 한국적인 사람이 유창한 프랑스어로 음식을 주문한다거나, 콧날 오뚝한 외국인이 부산 사투리로 구수한 한국말을 구사하면 독특한 매력을 느낍니다. 인식과 실재의 간극. 우리의 선입견을 깨뜨리는 이 간극이 크면 클수록 강한 매력을 느끼는가 봅니다.


안동에 정통 수제버거 식당이 있다는 것 자체가 반전이었습니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에서 국제 상업 문화의 아이콘, 햄버거가 팔리기는 합니까?


"심지어 저도 궁금해요. 왜 우리 가게에 오는지.(웃음) 어떤 젊은 여행객이 배낭을 메고 들어오길래 물어봤죠. 왜 안동찜닭이 아니라 여기 와서 햄버거를 드세요?"

황동규 대표는 콧수염을 기른 거구의 오너 셰프입니다.

"그 손님 말이, 안동 맛집으로 검색하면 안동 찜닭이랑 안동 간고등어 가게만 우르르 나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는 그렇게 검색 안 하고, '안동 존맛탱'이라고 입력해서 나오는 곳을 가는데, 그렇게 하면 말콥버거가 리스트 맨 위에 있다고 하네요. 하하."



존맛탱은 끝내주게 맛있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또래들끼리 쓰는 숨은 말입니다. '매우, 대단히'라는 말을 빼고 그 자리에 '존'을 넣는 것이 존을 존잘 쓰는 방법입니다. 간고등어, 찜닭, 갈비라는 안동의 전통 맛집 군群은 굳건히 자리를 지켜 왔지만, 인스타그램과 은어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존맛탱이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새롭게 떠오른 겁니다.


사실 이들 세대에 국한된 일은 아닙니다. 새로운 곳에 여행을 간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음식을 고르는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그 지역에서만 찾을 수 있는 독특한 맛을 내는 식당에 가는 것이 하나의 선택이라면, 늘 먹던 것을 새로운 지역에서 먹는 재미가 또 다른 대안입니다. 지역의 맛과 일상의 맛이라는 두 개의 축을 오가며 여행을 즐기는 것이죠.

이런 순서 아닐까요? 일단 여행지에 도착하면, 지역의 독특한 맛부터 찾게 됩니다. 부산에 가면 밀면을 먹고, 광주에 가면 육전을 먹어봐야 직성이 풀니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 끼니를 익숙하지 않은 지역의 맛으로만 채우면 지루한 기분이 듭니다. 뉴욕까지 가서 굳이 한국 식 가보시는 분들 있죠? 젊은 세대는 늘 먹는 파스타와 햄버거를 지역 음식 사이사이에 끼워 넣어줘야 합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소도시에는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일상의 맛집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지역의 맛집은 차고 넘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존맛탱 말콥버거가 안동에 생긴다는 소문이 돌자, 오픈도 하기도 전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이미 가게 공사할 때부터 사람들의 기대감이 올라갔어요. 하루에 한 20-30개 팔릴 줄 알았는데, 오픈하자마자 제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어요. 일손이 부족해서 아버지가 패티를 배달해주시고, 어머니가 옆에서 구워주시고. 동네 사람, 관광객 할 것 없이 길게 줄을 섰죠. 영화배우 박신양 씨도 몇 번 오셨는데, 부끄러워서 같이 사진 찍자는 말이 잘 안 나오데요. 하하. 사진이 없으니 친구들이 아직도 안 믿어요."


미리 말해두지만, 머리띠를 두른 거구의 황동규 대표를 밤 길에 마주친다면 조금 무서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함께 앉아 커피를 마신다면 몇 시간 씩 즐거운 수다가 끊이질 않을 거라 확신합니다. 커다란 손으로 고기를 빚어서 뜨겁게 달군 철판에 치익칙익 굽다가, 휴식시간에는 안동의 커피 맛을 탐구하려 여기저기 쪼르르 돌아다니는 귀여운 남자입니다. 황동규 대표 역시 반전 매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아마 햄버거라는 음식 종류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누구나 뭔지 알잖아요. 좀 더 맛있게 만든 것을 좋아하는 거고요."


안동사람들이라고 설마 허구한 날 간고등어와 찜닭만 먹겠습니까? 일상의 식사는 비빔밥, 갈비탕, 햄버거, 치킨입니다. 오히려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이런 일상의 음식을 수준 높게, 정 들여 만드는 가게에 목마릅니다. 관광객을 바라 보고 장사하는 맛집은 넘쳐나는데, 막상 햄버거, 피자, 초밥 맛있게 만드는 집은 우리 동네에 드뭅니다. 남녀노소, 세계인 누구나 아는 음식. 흔하지만 정작 맛있는 집은 드문 음식. 햄버거의 이런 보편성이 가게의 본질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이런 보편성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이 햄버거를 먹으러 말콥버거에 옵니다. 주민과 관광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지방 도시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고, 그 사람들도 마음 붙이고 갈 만한 식당이 필요합니다.

"안동은 교육열이 높아서 영어 선생님들이 많아요. 학교, 학원. 그런 분들이 사는 외국인들이 와요. 여기서 파티도 하고요. 그들이 가는 식당과 술집은 딱 정해져 있어요. 자신들 분위기에 맞는 펍 몇 개 정도죠."


어쩌다가 햄버거 셰프가 됐을까요? 황동규 대표도 안동 리너터 중 한 사람입니다. 대도시에서 여러 직업을 시도해 보다가, 호주식당에서 잠시 일했습니다. 익숙한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안동에서 스스로 해볼 만한 일을 궁리했습니다. 그리고 정통 햄버거를 파는 작은 펍을 떠올렸습니다.

"다른 도시에는 있지만 안동에는 없으니까, 망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생각보다 많은 손님들이 와주셨요. 안동에서 가게를 하기로 한 것은 좋은 결정이었죠."


아무리 햄버거 식당이 드문 안동이라고 해도, 아무나 한다고 잘 되는 것은 아니겠죠.

"저 같은 이국적인 외모가 대도시에 가면 좀 있죠. 하하. 그런데 안동에는 잘 없어요. 안동 손님들은 저를 보고 딱 햄버거 만들게 생겼다고 그래요. 한국사람 맞나요, 묻기도 하고, 영어로 주문하는 분들도 있고."

본인의 타고난 매력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점도 가게가 잘 되는 이유일 겁니다.


반전 매력의 소유자가 운영하는 안동의 수제 버거는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꾸준히 단골손님들이 늘었고, 동네 학생들이 찾아오고,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옵니다. 안동의 어르신들도 호기심을 가지고 기웃기웃하시고, 고향이 그리운 외국인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조용한 소도시의 다운타운에 지역 주민과 관광객,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한국인과 외국인을 아우르는 글로벌한 장소가 생긴 겁니다. 수줍음 타는 거구의 사나이가 자신의 고향에 만든 작은 한 점點입니다.



최근에 황동규 대표는 미국을 여행하면서 본토의 햄버거 맛을 보고 왔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미국 5대 버거 다 먹어보고 왔다고 합니다.

"자평하긴 어렵겠지만, 어떠세요. 5대 버거와 말콥의 버거를 비교하면?"

"저 자평 잘해요. 하하. 고든 램지 버거는 너무 맛있어서 무릎을 꿇었고. 인 앤 아웃은 가성비가 좋아요. 쉑쉑은 신선하고. 음, 인 앤 아웃과 쉑쉑 보다는 제가 만든 게 더 맛있는 것 같은데... (웃음) 다녀보니, 동네에 개인들이 하는 작은 집들 중에 의외로 맛있는 곳이 많았어요."

미국 여행객도 같은 이야기를 할 겁니다. 야, 안동이라는 전통 도시에 같더니, 수제 버거 맛이 제대로야. 평범한 작은 동네 가게인데 말이지.


소도시에 반전 매력을 더하는
글로벌 포인트


이쯤에서 도시의 반전 매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죠.

서울은 국제 도시입니다. 코스모폴리스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베트남... 모든 국제적인 물건과 음식들이 과도하게 넘쳐납니다. 그러니 오히려 이곳에서는 빌딩 숲 속에 있는 한옥 마을, 높은 수준의 한국식 레스토랑을 기대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과포화된 상태에서는 원점으로 돌아가 오래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소도시는 반대입니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오래된 것들이 변하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종갓집을 누군가 묵묵히 지키고 있고, 병산서원은 400년째 병풍처럼 펼쳐진 산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동네의 풍경은 작년과 다를 바 없고, 낙동강은 변함없이 흘러갑니다. 이러다 보니, 도시에 국제적인 것, 세대를 아우르는 것을 소개하는 사람이 귀합니다.



소도시일수록 글로벌 감각을 갖춘 한 점을 소중히 갈고닦으면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소도시에 반전 매력을 더하는 글로벌 포인트. 말콥버거를 만나고 우리가 생각한 소도시 장소의 모델입니다.

 

그건 그렇고, 내내 궁금했던 질문. 말콥은 무슨 뜻인가요?

"우리 동네에서는 엉뚱하고 고집 센 놈을 저, 저, 호랑말코 같은 놈, 이러거든요. 거기에 펍 Pub을 붙여서 호랑말코 펍이라 하려다가 그냥 말코랑 펍을 합해서 말코 펍, 말콥..."

존 말코비치 라던가 말콤 X 같은 멋진 유래를 상상했는데, 이런 얼토당토않은 조합이라니. 또 반전입니다.    [매력도시연구소]



Reference

말콥버거 +


매력도시 매거진 vol.04_안동

1편: 전통과 글로벌의 원투 펀치, 안동의 매력

2편: 리터너와 가족의 왕국, <존 하테치아>

3편: 귀향파의 매력, 낙향파의 매력: <소규모 상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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