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는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밖에

7월 19일

by 안나

금요일 오후. 오늘은 베를린 언더그라운드 그래피티 투어를 하는 날이다. 제대로 이스트 베를린을 돌아본 적이 없어서 긴장했다. 가이드의 이름은 해리. 약속 장소로 가는데 세상에서 가장 너절한 사람들을 몇 번이나 마주쳤다. 예상은 했지만 이 동네를 감싸는 분위기는 그 어디에서도 접해본 적이 없는 독특함이 있었다. 이스트 베를린의 기묘한 정취가 낯선 듯 친근했다. 역 근처*는 아주 더러운데다 약에 취한 자유로운 영혼들이 가득 했다. 나는 드디어 진정한 동백림에 도착한 것이다. 조금 기다리고 있자니 거대한 키의 해리가 야구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저 양반과 함께 돌아다니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겠군. 마음이 든든했다. 나 말고도 한국인 참가자가 한 명 더 있다고 하여 흥분했다. 한국어, 한국어가 너무 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름은 예진. 우리 말고 러시아에서 온 여자 친구들과 네덜란드의 가족 3명도 함께 했다.


해리는 뮌헨에서 나고 자랐고 10년 넘게 교사로 일했다고 한다. 허나 지난해에 이제 더 이상 이 짓은 못해먹겠다 싶어서(정말 공감이 갔다) 때려치고 이 곳 베를린에 정착한지 6개월 남짓. 10월에는 뮌헨의 부모님 댁에 머물면서 옥토버페스트* 가이드를 하고 있단다. 정말로 앰뷸런스가 줄지어 서 있고 애미 애비도 몰라보게 취한 사람들이 속성으로 알콜을 몸에서 뺀 다음, 다시 술을 퍼마시고 또 술을 깨고 또 마시고 이런 미친 짓을 반복하냐고 했더니 사실이란다. 그렇게 엉망으로 취한 사람들 중 몇몇은 잔디밭에 고꾸라져 먹은 술을 다 게워내고 기절해 있으면 누군가 살며시 다가와 지갑과 핸드폰을 훔쳐가고(아리랑 치기!!) 뭐 그런 대환장 파티라고. 해리는 모든 것이 비싸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뮌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보였지만 전형적인 ‘까도 내가 깐다’의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함께 욕하지 않았다. 역시 난 누구에게나 넙죽 엎드릴 수 있다.


해리와 함께 이스트 베를린에 숨겨진 그래피티와 아직 관광객들에게 덜 알려진 핫 스팟을 찾아 다니며 가이드북에는 나오지 않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예전에 공장으로 쓰이던 부지에 갔더니 수많은 카트에 탄 서양 남자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와우 이것이야말로 실사 카트 라이더! 이 광경을 처음 본 우리들은 흥분했다. 그쪽도 여러 명의 젊은 여자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눈빛을 반짝이며 바라보니 나름 흥분한(?) 것 같았다. 누군가가 먼저 인사를 했고 덩달아 신나서 손을 흔들어줬다. 이런 귀엽고도 멋진 것을 타고 도심을 질주한다니 정말 부러웠다. 포츠다머 플라츠나 쿠담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겠지.


서울에서 그래피티는 가끔 접해봤다. 딱히 예술성의 가치를 논할 수 없는 낙서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수 년 전, 드디어 런던에서 제대로 된 거리 예술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런던의 작품들은 대체로 말끔하고 어느 정도 정돈된 느낌이었다면 베를린은 상상을 뛰어넘는 기괴하고 괴랄하고 강렬한 작품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다. 거대 회사와 협업하여 예쁜 그림을 그려내는 것을 혐오하는 분위기라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훼손하거나 비바람에 망가진다고 해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름 수많은 예술 작품을 봤다고 자신했지만 이렇게 독창적이고 지저분하면서도 기억에 남는 곳은 없었다. 이런 동네에서라면 예술가가 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KakaoTalk_20190815_195716716.jpg 하나 하나 다 보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KakaoTalk_20190815_195718449.jpg 자동차 부품을 이용한 작품. 굉장히 크다

마음에 쏙 드는 작품 몇 개를 아이폰에 담고 실시간으로 당이 떨어진 나와 예진씨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다음 주 토요일에 CSD*에 나와 함께 가고 싶다고 하여 나도 뭐 어떻게 구경해야 잘하는 건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알았다고 했다. 여행 와서 한국인을 만나 연락처를 주고받은 건 처음이었다.



KakaoTalk_20190815_195718644.jpg 눈을 뗄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작품.


KakaoTalk_20190815_205911699.jpg 글쓰는 고슴도치. 노트북의 빨간 점은 이름모를 작가의 서명과도 같은 역할이라고.


KakaoTalk_20190815_195718829.jpg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해서 봐야 정확하게 보인다는 그래피티. 신기하다.


5일 동안 매일같이 몇 시간 씩 걸었더니 발목과 무릎이 쑤셔왔다. 파스 사올 걸.... 투어를 마치고 잠시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커스틴이 알려준 펍으로 향했다. 오늘 밤의 목적지는 프렌츨라우어 베르크(Prenzlauer Berg). 베를린을 떠나기 전에 이 동네 이름을 제대로 기억해서 발음할 수 있을까. 커스틴과 만나기로 한 모쿰(Mokum)이라는 이름의 바는 힙스터로 유명한 동네에 있었는데 이 근방 전체에 동양인이자 관광객은 나 밖에 없는 듯 했다. 커스틴과 요르그 그리고 그의 직장 동료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마커스가 함께 앉아 또 미친 듯이 떠들었다. 커스틴에게 지난 수요일에 있었던 해프닝을 설명하는데 나도 모르게 돌고래 소리를 내며 몸서리를 쳤더니 막 뒤로 넘어가며 웃는다. 대강 상황 설명을 들었던 요르그는


“안나, 모든 독일 남자들이 그런 건 아니야. 너무 신경 쓰지마.”

“아니 그 사람은 독일 사람이 아니고 우루과이 사람이야.”

“어쩐지.... (독일 남자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하더라니.”


요르그는 이제 나만 보면 쉬바를 외친다. 아직도 너무 귀여울 뿐더러 너희는 생긴 거 자체가 너무 젠틀해서 아마 제대로 된 한국어 욕은 못할 거라고 했더니 요르그가 테이블에 앉아있는 다른 친구들에게 갑자기 그 단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우리 테이블의 모든 독일인들이 나를 향해 합창하기 시작했다. 아앗... 제발 그만...!!! 내가 잘못 했어...!!!! 그만하라고 ㅅㅂ.


그가 건배를 제안하기에 맥주잔을 들었다가 실수로 엎질렀는데 하필 내 아이폰 위에 잔뜩 쏟아버렸다. 그 순간 바로 앞에 있던 마커스가 정말 번개같이 내 폰을 채가서 맥주가 들어가지 않도록 마구 털어댔고, 요르그는 내 폰을 받아 자기 옷에다가(!) 마구 닦으면서 경황없는 중에 다시 내 잔에 자신의 맥주를 채워줬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사람들이었다. 나? 나는 거의 반실성하여 휴지를 잔뜩 꺼내서 테이블을 닦았다. 당케쉔과 쏘리를 30번 쯤 울부짖었다. 생각해보니 독일어로 미안하다는 말은 배우지 못했다. 고마워요 내 아이폰 구해줘서 흑흑. 다행히 밑에 그 접합하는 부분(전문 용어를 모르겠네)에는 맥주가 들어가지 않아서 멀쩡했다. 그때까지 거의 대화가 없었던 마커스와 이 계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안나, 내 친구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폰 윗부분 스피커에 물이 들어가서 시리가 작동이 안됐어. 나중에 꼭 확인해 봐야해.”

“괜찮아, 괜찮아. 나 어차피 시리 안 써. 걘 나한테 하등 도움도 안돼.”


너무 당황해서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자니 어느새 긴장이 풀려서 자연스레 마커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나와 동갑이고 사실 뮌헨 출신(이 도시에는 정작 베를린 태생들이 별로 없다)으로 촬영 감독으로 일하고 있으며 주로 광고를 찍고 있다고. 알고보니 요르그의 직업도 촬영 감독이었다. 언젠가 영화 촬영에도 참여하고 싶지만 영화계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고 했다. 너네는 언제부터 맥주를 마실 수 있냐고 물어보니 16살*. 즉 고등학생이 되면 합법적으로 옥토버페스트에서 토할 때까지 맥주를 마시고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일생에 꼭 한번은 옥토버페스트에 가봐야 한다고 해서, 아까 들었는데 진짜 개환장 난리라는데? 죽도록 마시고 토하고... 미심쩍어 하는 내게 마커스가 진지하게 말했다.


원래는 각 지방의 사람들이 전통적인 복장을 입고 와서 함께 즐기는 축제였어.

지금은 거대한 비어 텐트에 가면 정말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거기만큼 국제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도 없을 거야.


내가 영어로 표현을 잘 못하겠지만 어쨌든 그런 축제는 세계 어디서도 열리지 않아.


정말 정말 꼭 가봐 꼭!”


베를린에는 다른 도시에서 태어나 이 도시의 거부할 수 없는 마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유로운 영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언젠가 나도 이곳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더 오래 머물 수 있을까. 금요일 밤을 나와 함께 해준 정다운 그들과 긴 작별 인사를 하고 터벅터벅 역으로 향했다. 이 거리는 각종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내뿜는 엔돌핀으로 점점 광기가 돌고 있었다. 펍이 즐비한 거리에서 내게 아마도 독일어 욕으로 추정되는 허접한 소리를 지껄이는 십대 소년들을 마주 했을 때는 살짝 당황했지만 이 새끼들이 뭔 개소리를 하는 지 알 수 없어 경멸이 담긴 눈빛을 보내며 무시했다. 미국에서는 욕까지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서 기분이 상했지만 베를린은 아니란다.


조심조심 방으로 들어왔더니 목이 칼칼하다. 되도 안 되는 영어로 너무 많이 떠들었다. 아까 지하철 역에서 맥주를 때려 마시고 병을 깨고 계단을 발로 차며 지랄발광하던 소년들을 보고 나서야 내가 정말로 베를린에 있음을 실감하게 됐다. 그리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는 확신이 들어서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다. 내가 외계 행성에 온 것도 아니고, 쟤들이나 한국인들이나 크게 다를 바 없구나.


오늘은 새벽 2시 귀가. 다행히 소냐도 레니도 불금을 즐기고 있어서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이게 왠 엄마 몰래 귀가하는 대학생 코스프레인가. 자기 전에 아이폰 화면을 보니 아까 맥주잔에 부딪혀 보호 유리에 살짝 금이 가 있었다. 다행히 시리는 나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고 통화에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아이폰이 고장난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여권은 잃어버려도, 독일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해도 해결책은 있지만 스마트폰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맥주 공격에도 끄떡없이 살아남은 아이폰에게 감사를 표하며 깊이 잠이 들었다. 베를린에서의 첫 번 째 금요일 밤이었다.



*Warschauer Straße U반, S반 둘 다 이용가능한 역이다. 주변에 흥미로운 장소들이 아주 많다. 이 지역이 프리드리히샤인(Friedrichshain)이다. 어쩌다보니 3주 동안 주말마다 방문했다. 한국어로 또박또박 프.리.드.리.히.샤.인이라고 말하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기회가 된다면 독일어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배워보는 것도 좋겠다. 나는 계속 연습했지만 결국 프리드리히 대왕과 프리드리히샤인, 프리드리히슈트라세(거리 이름이다)는 의미 전달에 실패했다. 슬펐다.


*Oktoberfest 뮌헨에서 매년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2주 동안 열리는 맥주 축제이다. 뮌헨 출신 친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정말 아침에 눈뜨자마자 맥주를 마신다고.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 Christopher Street Day, 약칭 CSD로 불린다. 베를린 여행 일정도 이 행사 기간에 맞췄다. 자세한 정보는 후술하겠지만 지금 너무 궁금하신 분은 구글에서 검색하시면 됩니다.


*맥주는 16살, 보드카 같은 독주는 18살부터 음주 가능하다고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