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 오후
일찌감치 눈을 떴지만 이런 저런 생각에 밍기적대다가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근처 카페에 나왔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리타언니에게 카톡이 왔다. 해외 지사 파견 인터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거긴 몇 시야? 서울은 오후 6시. 아 여긴 오전 11시에요, 이제 아침 먹으려고요. 카톡 전화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순간 너무 글로벌한 것 같아 괜히 뿌듯해졌다. 예상대로 언니는 면접관에게 혼구녕이 났다고 한다. 미혼의 알과장은 어디서나 치이기 마련이다. 그래도 내년에 다시 도전할 때를 대비하여 필요한 서류는 다 만들어 놨으니 그거면 된 거 아니냐고 서로 위로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밥을 먹으러 온 카페의 이름은 음 가스트하우스* 어쩌고 라고 발음 가능하다. 도대체가 이놈의 나라 글자는 읽을 수가 없네. 월요일에는 을씨년스러운 날씨 때문인지 들어가 볼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화창한 햇살 아래서는 너무나도 베를린스럽게 아름답다. 드디어 대단히 맑은 하늘을 오전에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부디 내가 떠나는 날까지 이 맑은 날씨가 계속되길(그러나 주말에 비 소식이...) 센스있고 아리따운 여직원이 영어 메뉴를 주었다. 단백질이 필요하여 그리스식 오믈렛에 베이컨을 추가하여 배터지게 밥을 먹었다. 직원들이 너무 친절하게 응대해줘서 황송할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나라에서 두 번이나 전쟁을 일으키고 두 번 다 처절하게 패배했단 말인가. 몸에 건강한 음식을 먹고도 좀처럼 기운을 차릴 수가 없어서 더블 아이로 또 커피를 마시러 갔다. 월요일 오전보다는 조금 한가한 편이어서 낮에는 별로 사람이 없군, 하고 생각했는데 웬걸 내가 카페 라떼를 받자마자 또 텍사스 소떼처럼 카페인에 중독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똑같다. 내가 묵고 있는 이 곳 쉐네벡*은 너무나도 로컬 지역이라 이곳에 가이드북을 들고 돌아다니는 이방인은 나 밖에 없다. 도심 한가운데로의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아마 집세도 만만치 않을 거다. 그러니 가난한 유학생이나 가난한 독일 학생들과 그들보다 더 가난한 예술가들이 진치고 있는 곳은 예전 장벽 동쪽의 동백림(이스트 베를린을 한자로 이렇게 표현한다. 어딘지 모르게 앤틱한 느낌이 들어서 이 단어를 좋아한다)이다. 웨스트 베를린 지역에서 게이 컬처로 유명한 이곳은 부유하고 한결 깔끔한 느낌이다.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이상하게 더 기운이 빠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소냐는 한국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고 그녀의 사랑이 고픈 강아지 엘라는 내게서 그 애정을 갈구했다. 엘라를 다독이며 한동안 시간을 보낸 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 포츠다머 플라츠로 향했다. 오늘 처음으로 S반을 탔다. 이 나라는 사람들의 자율성에 너무 기대는 경향이 있어서 한국처럼 교통 카드 리더기가 아예 없다. 스크린 도어 역시 있을 리 만무하고. 물론 에어컨도 없다. 이때는 몰랐지. 그 이후 며칠 동안 폭염으로 미치겠는데 에어컨이 없는 지하철에서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어지러움을 호소하게 될 줄은.
오늘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바로 베를린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 명소를 둘러보는 프라이빗 투어다. 나의 가이드는 런던 출신의 데이브. 덕분에 영국식 발음을 3시간이나 줄기차게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의 억양을 따라하며 어설프게 영국식 영어를 하고 있었다. 정말 영국 남자들은 위험한 존재들이다. 단지 역사에 대해 설명해준 것만으로도 여성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
오늘 데이브와 함께 열심히 걸어 다녔던 곳은 바로 브란덴부르크 문, 홀로코스트 기념 공원, 젠다르멘마크, 체크포인트 찰리, 공포의 지형학이라고 알려진 베를린 장벽의 남은 부분들, 베벨 광장, 베를리너 돔, 알렉산더 플라츠 그리고 바로 그 유명한 히틀러 벙커 등이다. 혼자서 돌아다녀도 되지만 그러면 이 장소들과 건물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눈으로 한 번 보고 사진 몇 장 찍고 뭐야 별 거 없네, 하고 총총 근처 펍으로 들어가 맥주나 배터지게 마실 것 같아 전문가에게 맡겼다. 이 생각은 정말 탁월한 것으로 드러난다.
데이브는 독일, 특히 베를린의 전반적인 역사에 대해 완전히 꿰뚫고 있었다. 나는 그가 런던에서 역사 선생님을 하다가 잠시 이곳에 와 휴가를 즐기며 가이드로 부업을 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의 직업은 바로바로 뮤지션. 내가 오아시스*와 뮤즈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너무 순진한 과후배를 보듯 코웃음을 쳤다. 저는 여대를 나왔는데 말입니다. 오아시스는 자신도 예전엔 좋아했지만 요새는 갤러거 형제들이 너무 난리법석이라 별로라고 했다. 그러게 그 아저씨들 언제 화해하려나. 음악 때문에 6년 전에 베를린에 왔다가 이제는 완전히 정착했다고. 오늘 아침에도 3시간 동안 투어를 진행하고 잠시 집에서 자다가 날 위해 나왔다고 했다. 다행히 오늘 오후 투어 참가자는 오직 나 혼자 뿐이라 데이브와 나는 마치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처럼 끊임없이 대화하며 미떼* 지역 곳곳을 부지런히 걸어 다녔다. 둘 다 피곤한 상태라 사이좋게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며 투어를 시작했다. 핸섬해서 내가 쐈다. 역시 우성형님이 말씀하셨듯이 잘생겨서 불편한 점은 없다.
데이브의 전문적인 역사적 소양 덕분으로 나는 독일의 중세 시대 이후 역사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2차 대전 후 베를린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도. 조금이라도 현대 유럽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베를린이 동독 한 가운데에 섬처럼 떨어진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고립된 지역이었던 베를린은 당시 소련과 미국, 영국, 프랑스가 사이좋게 나눠 먹은 후 서로서로 더 잘났음을 과시했던 장소다. 잘나기는 개뿔. 베를린으로 오기 전 아주 간략하게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그의 아주 빠르고 강렬한 영국식 억양으로 이뤄진 설명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베를린의 관광 명소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인터넷과 가이드북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나오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서술해보겠다. 사실 책에 나오지 않은 사실이 훨씬 더 흥미롭다.
히틀러 벙커. 그 우울하고도 또 우울한 영화 <다운폴>(2004)에 묘사된 그의 마지막 순간을 보면 히틀러는 애인이었던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린 후 사이좋게 권총으로 자살한다. 가장 아끼던 개 블론디 역시 가차 없이 죽인다. 그러면 아무런 동요 없이 독일 병사들이 그들의 시체에 휘발유를 끼얹은 다음 사체를 태운다. 그래도 자신들을 이끌었던 위대한 총통 각하(마인 퓌러!!) 인데 슬퍼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오직 그 모습을 애처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요제프 괴벨스만이 자신의 수많은 친자식들에게 청산가리를 먹여 독살하고 아내*와 함께 역시 자살한다. 히틀러를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괴벨스였던 것 같다. 여튼 히틀러가 그의 벙커에서 자살한 후 독일은 학살의 대가를 뼈저리게 갚아야 했다. 문제는 바로 21세기에 나타난 네오 나치들이었다.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있었던 벙커는 5미터 두께의 콘크리트로 보호되고 있었다. 지금은 그 위에 주차장이 세워졌다. 히틀러의 사체가 태워졌다고 알려진 곳이 문제였다. 네오 나치들이 성지 순례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 우상의 무덤이랍시고 와서 헌화를 하든, 노래를 하든, 춤을 추든, 맥주를 마시든, 사랑을 나누든(?) 어쩌면 이 모든 걸 다 했을 수도 있다. 베를린 시에서는 이런 사태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히틀러가 사망한 장소는 지금 어린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바로 그 앞 건물에는 유치원이 있다. 아니 이런 무시무시한 곳에 어째서 유치원이 있는건가 하고 경악했는데 이런 이유에서였다. 만약 나 같은 쫄보 학부모라면 이런 곳에 있는 유치원은 보내지 않을 것 같은데 몸도 마음도 강건한 독일 사람들은 역시 다르다. 아무리 정신이 온전치 못한 네오 나치 찌그래기 같은 놈이라도 어린 아이들이 깔깔대며 뛰놀고 그들의 부모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곳에서는 쪽팔려서 뻘짓은 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 어디나 문제 해결을 위해 창의력을 가진 인재는 있는 법이다.
데이브의 박학다식에 감탄하면서 길을 걷다가 동독에서 만들어진 장난감 같은 자동차 트라비가 전시된 장소를 지났다. 처음 생산될 때의 컬러는 5종으로(당연히 눈으로 확인했지만 바로 까먹었다. 다만 알록달록한 느낌의 화사한 파스텔톤의 색이었다)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거의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대강대강 생산했다고. 그래서 그 당시에 만들어져 지금도 전시 중인 자동차들도 부식이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고. 문제는 이전에 자동차 열쇠를 대량 생산해본 적이 없어서 뭐 아무 자동차에나 키를 꽂으면 다 열렸다고 한다. 맥주를 거하게 한 잔 하신 동백림 양반들은 자신의 차를 정확하게 찾지 못해서 근처에 그럴 듯한 자동차에 차키를 꽂고 그냥 몰고 가버렸다고. (야 이거 내 차 맞지?) 그렇게 동백림의 사람들은 모두가 모두의 자동차를 운전해서 도로를 질주했다는 전설 같은 일화가 있다고 했다. 나는 믿지 않았다. 이게 지금 말이 되냐고. 하지만 데이브는 진심이었다. 너무 웃겨서 길거리 한복판에서 박장대소를 하며 한참을 웃었다.
대화 중에 데이브에게 베를린 사람들은 어떠한 편견도 없다고 했다니 무슨 의미냐고 되묻는다. 상점이나 카페 혹은 펍에서 나의 인종은 개의치 않고 일단 독일어로 말을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데이브의 영국식 액센트에 심취해 있었더니 어느새 3시간의 워킹 투어가 끝났다. 아직도 브란덴부르크 문에는 2차 대전의 폭격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당시 지어진 모든 건물에는 폭격과 총알의 상흔이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는 것과 그 실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래서 도시의 유명한 명소와 건축물이 인터넷에서 본 그대로 인지 확인하는 작업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수 백년 전 나폴레옹이 군대를 이끌고 베를린으로 진격하여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났고, 히틀러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그 결과 통일이 이뤄질 때까지는 일종의 개선문이자 제국주의와 나치의 상징처럼 여겨진 공간이라고. 그 옛날 키 작은 나폴레옹이 위풍당당하게 이 문을 통과하여 거대한 폭의 대로를 따라 들어온 길 위에 잠시 서 있었다. 사방에서 온갖 종류의 언어가 들렸다. 모두가 사진을(주로 셀피를) 찍고 있었다. 나폴레옹의 감정 같은 건 느낄 겨를이 없었다. 실시간으로 급격하게 당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져 슬금슬금 방으로 돌아와 잠시 널브러져 있었다.
저녁을 먹어야했다.
*Gasthaus Gottlob 단트라는 저녁에 문을 열기 때문에 오전부터 오후까지 작업실로 썼던 동네 카페 겸 식당. 전형적인 유럽의 카페이다. 오전과 오후에는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요리도 무난하며 수려하고 아늑한 동네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주변에는 괜찮은 식당들이 가득하다.
*대부분 가이드북에 이렇게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 발음은 ‘슈’네벡에 가깝다. 쉐네벡이라고 5번 쯤 말하면 상대방은 보통 아~ 슈-네벡 하면서 정정한다.
*Oasis 90년대 영국을 후려쳤던 맨체스터 출신의 브릿팝 밴드이다. 작곡을 했던 노엘과 프런트맨이었던 리암 갤러거 형제가 중심이었으나 2009년 밴드 해체 후 그들은 끝없이 싸우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데뷔 앨범과 2집은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듣는다. 참고로 나는 노엘형님이 더 좋다.
*Mitte 베를린을 방문한 여행객이라면 필연적으로 꼭 한번은 들르게 되는 도심 중의 도심. 가이드북에서 봤던 모든 곳이 다 미떼 지역에 들어차 있다. 즉 전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을 볼 수 있는 곳이며 비싼 물가와 불친절한 서비스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체크포인트 찰리 앞에는 맥도날드, KFC와 스타벅스가 있다.
*영화를 보면 이 아줌마가 진짜 젤 무섭다. 국가 사회주의(나치)가 없는 독일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키울 수 없다며 손수 독약을 먹여 싸그리 다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