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우리.

7월 15일

by 안나

오전 9시에 으라차!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하루 종일 잘 줄 알았는데 무의식적으로 흥분했나보다. 조심조심 세수를 하고 소냐에게 간단하게 동네 정보 브리핑을 받았다. 커피가 매우 급해서 구글에서 극찬을 받은(베를린 최고의 커피!) 카페 더블 아이*를 찾아갔다. 오늘 날씨는 흐리고 바람이 불고 아주 조금씩 가랑비가 내린다. 하지만 아무도 산책을 멈추거나 자전거에서 내리거나 혹은 우산을 쓰지 않았다. 지난 한달 동안 열기로 끓어오르는 도시에 있다가 이곳에 오니 에어컨을 달고 다니는 기분이라 무척 상쾌했다. 태연한 척 하면서 들어간 더블 아이는 리뷰대로 이 동네 사람들에게 핫플레이스였다. 월요일 아침에도 이렇게 사람들로 가득하면 주말에는 들어갈 엄두도 못 낼 것 같은데. 애기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도 많았는데, 갓난아기는 물론이고 꼬맹이들이 나한테서 눈을 떼지 못해서 조금 민망했다. 그래 이렇게 까만 머리에 까만 눈을 한 사람은 난생 처음 봤겠지. 여튼 만나서 반갑구나 아가들아. 내가 이 동네에 오기 위해서 일만 킬로를 날아왔단다. 넌 좋겠다, 여기 살아서.


뭘 먹어야 하나 메뉴판을 보고 고민하고 있는데 얼굴에 나 인자해!라고 써진 할머니께서 독일어로 말을 걸었다. 그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나는 먼저 주문하시라고 비켜드렸다. 힙함의 결정체인 바리스타는 너무 친절해서 오히려 식은땀이 났다. 플랫 화이트와 에그 타르트를 주문하고 비좁은 공간에 서서 커피를 마셨다. 크아 이 집 커피 잘하네! 감탄하고 있는데 멀끔한 양반이 내 앞의 신문을 가리키며 또 뭐라 뭐라고 말을 했다. 당연히 느낌 상 이 신문을 본인이 읽어도 되는지 물어보는 줄은 알았지만 네 라고 할지 아니오 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왜냐면,


“이 신문 네 거니?”

“이 신문 내가 읽어도 되니?”


이 질문의 답은 반대가 되기 마련. 그래서 세계 어디서도 통하는 ‘나라 잃은 표정’으로 쳐다봤더니 영어로 이 신문 네 거니?하고 물어봤다. 너가 읽으라고 밀어주니 고맙다고 하길래 그리고 매우 친절해 보이는 눈을 하고 있어서 용기내어 말을 걸었다.


“저기, ‘나는 독일어를 하지 못합니다’라는 문장을 독일어로 어떻게 말합니까?”

“독일어로요? 이히 크아햐온휘ㅏㄹ헝도히얺

“음................ 그렇군요........”

“알아요, 조금 복잡한 거. 카인 도이ㅎ취 라고만 해도 됩니다.”

“오 감사해요.”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앞으로는 초면에 다짜고짜 독일어를 못한다고 영어로 자수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베를린 사람들은 참 편견이 없다. 아무도 내게 독일어 할 줄 아냐고 물어보지도 않을 뿐더러 아무 거리낌 없이 내게 독일어로 말한다. 이걸 고마워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모르겠네.


카페인을 충전해 기분 좋은 상태로 소냐가 추천한 마트에서 애플 망고 쥬스와 빵을 사들고 근처 공원 묘지를 잠시 산책했다.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커피도 마시고 한 달 교통권도 샀겠다, 베를린에 살고 있는 독일인 친구 커스틴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그 유명한 카데베 백화점에 잠시 들렀다. 백화점이 있는 거리는 베를린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 거리이자 카이저 빌헬름 교회가 있는 쿠담이었다. 잔뜩 찌푸린 날씨의 월요일 오후임에도 활기찬 표정의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오후가 되니 배가 고파져 이름을 발음할 엄두도 내지 못할 라이브 재즈바*에 일빠로 들어왔다. 들어가도 되나 쭈뼛쭈뼛하고 있었더니 기운차게 할로!!하고 환대해준다. 햄버거에 감자튀김, 그리고 드디어 맥주를 마시며 한참 하루키의 공장 견학에 대한 에세이를 읽었다. 문득 어처구니없는 의문점이 들었다. 라이브 재즈바로 명성이 높은 이곳은 월드컵 시즌에 어떻게 운영할까? 만약 조별 리그 예선전과 오픈 시간이 겹친다면? 그때는 라이브 재즈고 뭐고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서 손님들과 같이 보려나? 지금 물어보면 너무 미친 인간처럼 보일 거 같고 한번 더 방문하면 그때 물어봐야지. 왜 나는 이런 게 궁금해서 참을 수 없을까.

첫 잔은 흑맥주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접한 맥주는 기상천외하고 경이로울 만큼 대단히 굉장한 맛은 아니었다. 내가 미각이 떨어지는 면도 있지만 이제는 서울에서도 혹은 다른 외국의 도시에서도 높은 퀄리티의 맥주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허나 다른 도시보다 독보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바로 바텐더 및 사장의 쿨하고 힙하고 스타일리시한 자태다. 책을 읽다가 바 구경을 하다가 순간순간 그들의 섬세한 옆선과 길쭉한 다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독일 맥주가 전 세계적으로 칭송을 받는 이유를 드디어 깨달았다. 특히나 베를린의 펍은 분명 그 중 최상위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직원들의 기럭지를 감상하며 햄버거와 맥주 두 잔을 들이키고 있자니 드디어 베를린에 온 기분이 난다. 선물도 샀겠다, 커스틴에게 짜잔- 놀랐지? 나 베를린이야!하고 연락했더니 이 양반은 정말 기절 직전이다. 오늘은 회사일이 있어서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곧 만나기로 했다.


베를린에 독일인 친구를 만나러 오다니 내가 생각해도 이건 너무 멋지다.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공원을 부지런히 걸어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어린 친구들이 무려 농구를 하고 있었다. 축구말고는 그 어느 단체 구기 종목에도 딱히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건 좀 놀랐다. 특히 축구 선수 다비드 루이스보다 더 엄청난 볼륨의 헤어스타일을 자랑하는 한 소년을 보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넌 임마 힙스터로 태어나서 결국 여기서 힙스터로 죽겠구나.


헉헉대며 5층 계단을 올라가는데(허나 아이폰 건강 앱에는 7층으로 표시된다...) 소냐의 아들이자 내 이웃 방에 살고 있는 레니가 반갑게 인사하며 내려온다. 역시 한참 젊어서 해질녘에나 놀러나가는구나. 매우 부럽다. 내 방에 들어와 잠시 노닥거리는데 어디선가 강렬한 이디엠 작업 소리가 들린다. 아래 층에 뮤지션이 살고 있나보다. 설마 한밤중까지 작곡하지는 않겠지. 그럼 매우 화를 낼거다. 그것도 강렬한 한국어로.

이렇게 널브러져 있다가 커스틴이 뭐하냐고 해서 아무것도 안한다고 했더니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가 거의 마무리됐으니 괜찮으면 펍*으로 오라고 하여 벌떡 일어나 나갔다. 해가 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흐린데 해는 밤 10시에나 졌다. 서둘러 우버를 타고 도착한 펍에 커스틴이 있었다. 13년 만에 우리가 다시 만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둥켜안고 반가움에 소리를 질렀다. 질세라 앞 다투어 말하는데 반가움과 놀라움에 심장이 마구 뛰었다. 기분 좋은 떨림이었다.


“안나, 네가 여기 베를린에 있다니 믿을 수가 없어!”

“커스틴, 나도 내가 여기 온 걸 믿을 수가 없어!”


근사한 웃음이 매력적인 커스틴과는 2006년 여름, 샌프란시스코 어학원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비슷한 또래인데다 성격도 말도 잘 통해서 금방 친해졌다. 커스틴과는 고작 한 달 동안 함께 어울렸음에도 각자의 도시로 돌아간 후에도 종종 연락을 했다. 어느 크리스마스에는 독일로 내가 그린 그림과 카드를 보내기도 했다(그녀는 아직도 그 카드와 그림을 가지고 있다). 지난 해 그녀가 베를린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으로 접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베를린에 있다. 어쩌면 진짜로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늘 동경하던 바로 그 도시 베를린으로. 지난해 겨울, 영어 강사로 일하던 학원에 사표를 내고 천천히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하면서 심심할 때마다 항공권과 숙소 검색을 했다. 의외로 너무 비싸지도 그렇다고 너무 저렴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주위에 알리면 어쩐지 없던 일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항공권을 결제하기 전까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아니다. 변덕이 심하고 겁이 많은 내가 없던 일로 만들어버릴 것 같아서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었다. 혼자서 외국으로 떠나도 문제가 없다는 확신이 들기까지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했다. 수많은 질문에 대답을 고민하는 날들이었다. 너는 굳이 거길 왜 가려고 하니? 백수 주제에 가서 뭐 하려고? 글을 쓰겠다고? 너 같이 작가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한 둘인 줄 알아? 정신 차리고 돈이나 벌어. 어린 애들처럼 징징대지 말고. 그러나 커스틴의 환한 웃음을 보는 순간 그 수많은 고민들은 다 증발해버렸다. 그 월요일 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커스틴과 그녀의 친구들인 요르그(어째 소련 이름이다. 그 후로 나는 그를 종종 ‘나의 소비에트 유니언 친구’라고 불렀다) 헨릭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한참 떠들며 거나하게 맥주를 마시다가 새벽 한시가 되어서야 겨우 헤어졌다. 그들은 스타워즈에 열광하는 내 나이 또래의 평범한 남자들이었다. 대화 중에 갑자기 여기서 여행하려면 독일어로 욕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단다. 그래서 일단 가장 센 걸 배웠다. 발음이 좋다고 칭찬도 받았다. 필연적으로 독일어 욕을 배우고 나니 자연스레 답례로 한국어 욕을 가르쳐줘야 했다. 외국인이 하는 한국어 욕은 아무리 봐도 너무 귀엽게만 보였다. 계속 연습하길래 아직도 투 큐트하니 누굴 죽일 생각을 하고 배에 힘을 실어서 말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가르쳤다. 요르그는 모든 말에 한국의 욕을 집어넣어서 계속 지적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무형문화재 장인이 일반인을 가르치는 심정으로다가...


“아니 아니 그게 아니얏! 아직도 너무 귀여워!! 옳지 옳지 그렇지, 짜증과 증오를 품고!!!”


사실 지난 시간 동안 내게 있었던 일을 말하고 싶어서 커스틴과 만났지만 이 양반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너무 웃겨서 그 밤 내내 허튼 소리를 하며 웃고 떠들었다. 대체 누가 독일인들 재미없다고 했냐. 요르그는 건배할 때 뜬금없이 모시모시!라고 소리쳤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3초간 박장대소를 했다. 내가 숨이 넘어가게 웃자 그는 ‘모시’가 독일어로 꽤나 야한 말이라고 실토했다. 결국 일본인들이 전화를 받을 때마다 독일어로 야한 말을 당당하게 내뱉는 거였다. 그것도 어이가 없어서 또 웃었다.


이 기묘하고 강렬하고도 유쾌하고 또 감동적인 만남은 시차와 피로도 싹 사라지게 했다. 내일부터는 요르그가 지적한대로 약간 지루하고 평이한 관광 명소 일정을 수행한다. 커스틴과는 주말에 또 만나기로 했다. 커스틴에게 준비해 간 선물을 조공했다. 호랑이가 그려진 자석과 난초가 장식된 책갈피 등의 매우 한국적인 기념품이었다. 이것만 주기 애매해서 디올에서 내가 늘 쓰는 립글로우를 수줍게 건넸더니 너무 비싸다며 주저했다. 그건 내가 늘 쓰는 거고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라고 안심시켰다. 여행 직전 인사동에서 한국 관련 기념품을 사왔는데, 내 평생 이런 걸 사본 건 처음이었다. 다른 나라에서야 사봤지. 나중에 암펠만* 기념품 샵에 갈거라고 했더니 이 양반들 표정이 썩었다. 그런 걸 돈 주고 왜 사니? 라고 온 몸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니 귀엽잖아! 횡단보도 지날 때마다 얼마나 귀여운데! 심지어 당일치기로 포츠담*에 다녀올 거라고 했더니 거긴 별로 인상적이지 않아,라고 딱 잘라서 말하더군. 난생 처음 보는 나한테 ‘오 그곳은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야. 즐겁게 잘 다녀오길’ 이런 비즈니스적인 멘트는 아예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단호박같은 면이 너무 웃겨서 한참 웃었다. 난 왜 이런 게 웃길까. 요르그와 커스틴과의 관계는 꽤 복잡한데, 로맨스 드라마에 나올 법한 상황이니 차후에 서술하기로 하겠다.


13년 만에 외국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도, 그 친구의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시간을 보낸 것도 태어나 처음이다. 평생 이 베를린의 요란했던 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Double Eye 뭔가 일을 잘 했을 때 칭찬하는 말이라고. 내가 묵었던 동네 쉐네벡Schöneberg에서 아주 유명한 카페다. 갈 때마다 음악 선곡이 마구 바뀌는데 주인장의 취향이 중구난방인 것 같기도 하고 여튼 힙하다. 주문하길 기다리는 사람도,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는 사람도 많은데다가 공간이 아주 협소해서 눈치껏 주문도 잘 하고 커피도 날렵하게 잘 받아야 한다. 맑은 날이면 카페 앞의 간의 의자에 앉아 넋을 놓고 커피를 마시면 근심 걱정을 잠시 잊을 수 있다. 이 분위기에 취해 집에 가기 전까지 종종 이용했다.


**요크슐라쉔(Yorckschlösschen) 가이드북에서 읽고 찾아간 재즈바. 한여름 오후의 관광객은 나밖에 없는 듯 했다. 쉐네벡 주민들의 계모임 장소 수준으로 내밀한 공간이다. 주말 저녁이나 일요일 오후에 라이브 재즈 공연이 열린다. 공연 당일 저녁에는 사람이 매우 많다고 하니 미리 예약을 하는 편이 좋다고 하는군요. 보통 공연 입장료는 8유로. 맥주는 바텐더가 추천해주는 것을 마시면 좋으나, 그 전에 본인이 어떤 맛의 맥주를 좋아하는지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The Castle Berlin Mitte 버스와 트램 정류장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추운 날에는 홀린 듯이 들어갈지도 모른다. 맥주는 무난하지만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덩달아 신이 났다. 독일 사람들이 조용하고 과묵하며 냉정하다는 이미지는 첫날부터 다 깨져버렸다.


****암펠만. 베를린의 횡단보도에 설치된 신호등을 모티브로 한 기념품점. 초록불이 되면 모자를 쓴 사람이 걷는 모양으로 불이 켜진다. 각종 관련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베를린 도심에 대여섯 군데 있다. 사실 밖에서만 보고 안 들어가 봤다. 참고로 베를린의 횡단보도 신호는 매우 짧다. 정신줄을 놓고 있으면 도로 한 가운데에서 당황하기 십상이니 늘 잰 걸음으로 빠릿빠릿하게 길을 건너도록 하자.


*****포츠담 회담으로 유명한 바로 그 도시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베를린에서 3-40분이면 갈 수 있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상수시 궁전(Schloss Sanssouci)이 관광의 필수 요소로 꼽힌다. 이렇게 한참 공부만 하고 결국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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