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순 Sep 19. 2018

세입자 배틀  : 누가 더 최악의 집을 만났는가

[출간전 연재 3]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


세입자 배틀과 늘 함께 이뤄지는 마작 배틀.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한가지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됐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자연스럽게 집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는데, 여기에서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주제는 바로 누가 더 최악의 집과 집주인을 겪었는가. 일종의 무용담 배틀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 동안의 여러 모임에서 진행된 배틀을 종합해 대화체로 재구성했다.


 : 예전에 내 친구 집은 대문이 따로 없었어. 주택과 주택 사이에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틈을 지난 다음에, 무릎 정도 오는 화단을 넘어가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지. 살찌면 집에도 못 들어가겠더라고. 벽과 벽 사이에 껴서.


지인1 : 대학교 때 내가 아는 선배네 집도 진짜 신기했어. 대문이나 담장 같은 게 없고 그냥 길에서 바로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였어. 골목에서 문을 열잖아? 그럼 바로 방이 시작되는 거지. 골목에서 신발을 벗은 다음에 방에 있는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문을 닫았다니까 글쎄.


지인 2 : 야 그건 아무것도 아냐. 나는 어떤 할아버지 중개사가 보여준 집이었는데 콘크리트로 만든 사과 상자 같은 단칸방이 덩그러니 있더라고. 그 건물에 나무 사다리가 걸쳐져 있는 거야.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까 올라가서 빨래 널 때 쓰래. 온 동네 사람 다 보이는 거기에 말야. 내가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이불 말리기는 좋겠네요”하니까 할아버지가 미처 그 생각까진 못했다는 듯 “그러네 아주 딱이구먼”하면서 어찌나 크게 웃으시던지….


지인 3 : 난 말야. 어디 공공기관에서 청년들을 위해서 공유 주택 같은 걸 한다는 거야. 당연히 저렴하고 집도 좋고 위치도 진짜 좋았어. 경쟁률이 어마어마하게 치열했지. 일단 소득 증명이며 각종 서류와 함께 자기 소개서를 내야 돼. 공유 주택을 선택하게 된 계기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미래 목표 이런 것도 적어내. 나중엔 면접도 하고. 뭐 서로 모르는 사람 여러 명을 모아서 같이 살게 하는 거고 한정된 혜택을 꼭 필요한 사람한테 줘야 하니까 그런 과정이 있는 게 당연하지. 근데 들어가려는 사람 입장에선 그냥 좀 그렇더라. 난 그냥 살려고 하는 것뿐인데 자소서에 면접이라니.


지인 4 : 선배들은 그래도 방에 보일러 전원은 다 있었죠? 전요 학교 다닐 때 하숙집에서 살았는데 보일러 켜고 끄는 권한이 집주인한테만 있었어요. 각 방에는 보일러를 켜는 장치 같은 것도 아예 없고요. 전기 장판은 전기세 많이 나오고 화재 위험이 있다면서 또 안된대요.


일동 : 아니, 추울 땐 어떡해 그럼?


지인 4 : 문자로 집주인한테 보일러를 틀어달라고 하는 거죠. 하루는 진짜 너무 추워서 집주인한테 보일러를 켜달라고 연락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따뜻해지지가 않는 거에요. 그래서….


지인 1 : 야… 설마… 안돼… 하지마…


지인 4 : 헤어드라이어로 이불 속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 넣어 몸을 덥혔었죠… 다시 생각해도 이가 갈려요.


이렇게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강력한 한 방이 나오면 과열 양상을 보이던 세입자 배틀은 일순 숙연해진다. 물론 이러한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에게 자가(自家)는 없어도 술과 음식, 그리고 애환을 나눌 세입자 친구들이 있으니까!


이 글을 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아니 어떻게 하면 이사를 그렇게 자주 해요?”

내 친구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집순아. 너 근데 도대체 언제 그렇게 이사를 다녔니? 우리 나이에 열 다섯번 이사가 가능한가?”

“뭐 기숙사 생활도 많이 하고 교환학생도 다녀왔고 그런 거 다 합한 거지.”

“아무리 그래도.”

“너도 막상 세 보면 이사 꽤 많이 했을 걸?”

“나? 에이 아냐 나는 그렇게까진.”

“그러지 말고 세봐 한번.”

“하나… 둘… 셋…. 넷…………열여덟, 열아홉, 스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신도 배틀에 참여하실 자격이 있습니다. 열려있어요.



이전 02화 떠나는 자의 뒷모습 : 잘 살아요, 우리도 잘살았으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