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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 Sep 05. 2018

뭐 잊은 거 없어요?
: 나의 열세 번째 방을 떠나며

[출간 전 연재 1]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





창 밖이 뻥 뚫려있어서 좋았던 여섯 번째 집. 이사 나오던 해 겨울.






 “뭐 잊은 거 없어요? 한 번 보고 와요.”


이삿날 트럭에 짐을 다 싣고 나면 친절한 용달차 아저씨들은 이런 확인절차를 거친다. 그러면 나는 잊은 물건이 분명히 없는데도 다시 집으로 뛰어들어간다.


나의 열세 번째 방. 이곳에서 나는 5년을 살았다. 옆 건물이 창문을 막고 있어서 낮에도 불을 켜야 했던 방. 하지만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습하지 않아 쾌적했던 곳이었다.


아무도 없는 빈 방에 혼자 들어가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방금 전까지 내가 살던 곳인데도 묘하게 낯설다. 이사는 보통 아침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짐을 들어낸 방은 항상 해 질 녘처럼 어스름한 빛을 띠고 있다.


나 갈게.


짧은 인사를 고한다. 그 동안 고마웠다, 앞으로 잘 살아라 하는 구구절절한 작별인사 따윈 어울리지 않으니까. 내방은 나에 대해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 어쩌면 나도 모를 내 마음까지 방은 알지도 모른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든 말든 방은 무표정하다. 당연하지. 방이 무슨 표정이 있겠어. 방은 전에 아무도 산 적이 없었던 것처럼 또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것이다.


재작년, 광주에 사는 엄마가 거의 20년 만에 이사를 했다. 오래 산 만큼 사연이 많은 집이었다. 그 자질구레한 사연 중 하나는 아파트를 지은 영세한 건설사가 준공 직후 부도를 맞아 보증금의 절반을 떼인 일도 있었다. 엄마는 그 일을 계기로 자신의 집을 한없이 증오하게 됐다. 수년 전부터는 돈도 없으면서 무슨 배짱인지 “내년엔 이사 갈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관리사무소 아저씨에게까지 “저 내년에 이사 가요”라고 물어보지도 않은 질문에 답을 하고 다녔다. 그런데 간절하면 통한다더니 정말 이사를 하게 됐다.


이사하기 몇 달 전 집에 들렀더니 벌써 몇 가지가 박스에 포장돼 있었다. 박스와 옷 무더기 틈에서 며칠을 보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날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문득 깨달았다. 지금이 이 집과 나누는 마지막 순간이란 사실을.


“엄마, 근데 이 집 나는 다시 볼 일이 없겠네?”

엄마도 미처 그런 생각은 못했는지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네 진짜.”

 “그러게...”


신발을 신은 채 처연하게 나이 든 집을 한 번 돌아보았다.

또 기분이 묘해졌다.


그날 밤, 광주에는 앞도 안 보이게 눈이 왔다. 그렇게 아우성치듯 눈이 무섭게 내리는데도 세상은 마치 음소거를 한 것처럼 조용했다. 우산도 없이 그 눈을 맞으며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가는 길, 엄마와 나는 이사나 집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이 참 많이도 온다”같은 말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엄마가 이사를 한 지도 벌써 2년이 돼 간다. 그래도 가끔 옛집이 꿈에 나온다. 어쨌거나 나의 20년은 그 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니까. 


의아한 점이 하나 있다. 정말이지 오랜 세월 별의 별일이 다 있었는데도, 그 집을 생각하면 항상 같은 장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는 사실이다.


입주한 지 며칠 안돼 집에 들어가면 항상 페인트 냄새가 났던 즈음이었다. 생에 처음으로 새 집에, 그것도 아파트에 살게 됐다는 사실만으로 어깨가 으쓱했던 그때. 동네 학교에 처음으로 등교하고 돌아와 보니 내방 문에 천 원짜리 한 장과 쪽지가 붙어있었다.


“밥을 못해놨다. 이걸로 빵 사 먹어라. 엄마가”


감동스러운 것도, 슬픈 것도 특별한 것도, 그 아무것도 아닌 장면.


참, 도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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