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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 Sep 26. 2018

자취생 아닌데요, 1인 가구인데요  :1인 가구의 자격

[출간전 연재 4]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


미러볼이, 그것도 무려 3개나 달려있는 한 1인 가구의 집. 혼자 있어도 늘 흥겹다.




“가족들이랑 같이 사세요?”

“아뇨.”

“아, 그럼 자취?”

“아뇨, 그건 아니구요.”

“아니… 그럼…?”

“1인 가구에요.”


이렇게 대답하면 많은 사람들이 소리 내 웃는다. 미처 생각 못했다는 듯이, 엉뚱하다는 듯이 하하호호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하지만 궁금하다. 저기, 그런데 그게 그렇게 소리 내 웃을 정도인가요?


난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항상 설명을 주저리주저리 덧붙인다. “자취생은 주말에 빨랫감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대학생에게나 어울리는 단어죠. 저는 서울서 혼자 산지 벌써 12년인데요. 자취생이라고 하기엔 좀 안 맞는 것 같아서요.” 그에 비해 1인 가구들의 반응은 확실히 다르다. 무릎을 탁 치며 “그러네. 나도 그렇게 대답하면 되겠네!” 이러던가 무반응이거나.


네 집 걸러 한 집이 1인 가구다. 1인 가구 비중은 2015년 기준 27.1퍼센트로 2인 가구, 3인 가구, 4인 가구보다도 많다. 하지만 아직도 혼자 사는 건 가족을 이루기 전 잠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만 인식되는 것 같다. 물론 여전히 그런 상황 때문에 1인 가구인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꽤나 긴 시간 동안 혼자라면, 그 상태를 조금 더 진지하게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같은 맥락에서 1인 가구를 설명하는 말 역시 너무도 빈약하다. 이 수많은 1인 가구들은 다 ‘자취생’이 아니다. ‘혼자 산다’는 말도 지금의 1인 가구를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그 동안 ‘혼자 사는 것’이 뒤집어 쓰고 있던 각종 부정적인 인식이 때문인 것 같다. 여하튼 뭐라 딱 꼬집어 이야기는 못하겠지만 충분치 않은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1인 가구’라는 단어가 생겨서 너무 좋다. 사회의 부산물이 아니라 당당한 구성원으로 대접 받는 느낌이랄까. 나는 내가 책임지는 내 삶에, 내 손으로 하나하나 가꾸는 내 생활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책임감이니 자부심이니, 이런 기준은 너무 추상적이라 조금 구체적인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보았다. 본인이 자취생인지, 1인 가구인지를 판단할 일종의 기준표다. 네 개 이상 체크했다면, 공인 받은(?) 1인 가구라고 할 수 있다. 리스트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으나 본인이 세대주일 것, 월세 등 주거비용과 공과금을 책임질 것 등이 기본 전제다.


<1인 가구 체크리스트>

□비가 많이 오는 날 집에 들어가면 몸의 물기를 닦기보단 창문부터 살핀다.

*반대로 날씨가 좋은 날엔 이불 빨래를 떠올린다면 체크 가능.

□우리 동네 음식물 쓰레기 배출일을 알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청소를 하고 쉴 때 진정한 평화가 온다.

□전등 교체, 페인트칠 등 집수리를 직접 해본 경험이 2회 이상 있다.

□공과금이 전달보다 적게 나왔을 때 기뻐서 주변에 자랑한 적이 있다.

□부모님도 우리집 비밀번호를 모른다.

□고향집엔 내 물건이 없다. 쓸데 없는 물건이라고 고향으로 보내진 않는다.

*단 앨범 등 추억의 물건은 제외


이런 엄정하고도 조악한 리스트까지 만들고 돌이켜보니, 나는 대학생일 때도 일종의 ‘독립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서울 부모님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에게는 “부럽다”고 얘기했지만 속으론 그다지 부럽지 않았다. 스무 살이라고 다 어른이냐, 독립해야 진짜 어른이지,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하지만 젊은 친구들, 비용을 생각한다면 부모님 집에 최대한 오래 머물길. 꼭꼭꼭) 또 자취를 하면서도 부모님이 자주 찾아와 집안일을 해주거나 주말이나 방학 내내 집에 돌아가 있는 친구들 역시 진정한 자취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다. 그게 뭐라고! 하지만 그땐 그런 치기가 있었다. 그런데 사람은 정말 바뀌지 않나 보다. 지금도 이런 리스트나 만들고 앉아 있는걸 보면….


그래, 1인 가구가 별건가. 혼자 살면 1인 가구다. 그렇긴 해도, 난 좀 자기 생활을 사랑하는 1인 가구가 늘어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혼자 살면 지지리 궁상이라는 오해가 조금 불식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 오해를 푸는 건 엄청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내는 것이라는 점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자취생이든 혼자 사는 사람이든 1인 가구든 뭐라 부르든지 간에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계속 늘어날 것 같다. 2020년이면 30퍼센트로 인구의 3분의 1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있다. 지나치게 높은 거 아닌가 싶겠지만, 우리나라보다 1인 가구 비중이 더 높은 국가는 얼마든지 있다. 복지제도가 발달해 있는 북유럽 국가들이다. 노르웨이는 40퍼센트, 스웨덴은 무려 47퍼센트에 달한다. 일본도 30퍼센트로 현재 우리나라보다 높다. 1인 가구가 절반에 가까운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혼자서 어떻게 살아갈까? 궁금하다. 그리고 그런 나라에서 “안녕하세요, 전 한국에서 왔고요, 1인 가구에요.” 이렇게 날 소개하면 과연 어떤 반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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