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전 연재 3]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한가지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됐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자연스럽게 집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는데, 여기에서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주제는 바로 누가 더 최악의 집과 집주인을 겪었는가. 일종의 무용담 배틀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 동안의 여러 모임에서 진행된 배틀을 종합해 대화체로 재구성했다.
나 : 예전에 내 친구 집은 대문이 따로 없었어. 주택과 주택 사이에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틈을 지난 다음에, 무릎 정도 오는 화단을 넘어가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지. 살찌면 집에도 못 들어가겠더라고. 벽과 벽 사이에 껴서.
지인1 : 대학교 때 내가 아는 선배네 집도 진짜 신기했어. 대문이나 담장 같은 게 없고 그냥 길에서 바로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였어. 골목에서 문을 열잖아? 그럼 바로 방이 시작되는 거지. 골목에서 신발을 벗은 다음에 방에 있는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문을 닫았다니까 글쎄.
지인 2 : 야 그건 아무것도 아냐. 나는 어떤 할아버지 중개사가 보여준 집이었는데 콘크리트로 만든 사과 상자 같은 단칸방이 덩그러니 있더라고. 그 건물에 나무 사다리가 걸쳐져 있는 거야.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까 올라가서 빨래 널 때 쓰래. 온 동네 사람 다 보이는 거기에 말야. 내가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이불 말리기는 좋겠네요”하니까 할아버지가 미처 그 생각까진 못했다는 듯 “그러네 아주 딱이구먼”하면서 어찌나 크게 웃으시던지….
지인 3 : 난 말야. 어디 공공기관에서 청년들을 위해서 공유 주택 같은 걸 한다는 거야. 당연히 저렴하고 집도 좋고 위치도 진짜 좋았어. 경쟁률이 어마어마하게 치열했지. 일단 소득 증명이며 각종 서류와 함께 자기 소개서를 내야 돼. 공유 주택을 선택하게 된 계기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미래 목표 이런 것도 적어내. 나중엔 면접도 하고. 뭐 서로 모르는 사람 여러 명을 모아서 같이 살게 하는 거고 한정된 혜택을 꼭 필요한 사람한테 줘야 하니까 그런 과정이 있는 게 당연하지. 근데 들어가려는 사람 입장에선 그냥 좀 그렇더라. 난 그냥 살려고 하는 것뿐인데 자소서에 면접이라니.
지인 4 : 선배들은 그래도 방에 보일러 전원은 다 있었죠? 전요 학교 다닐 때 하숙집에서 살았는데 보일러 켜고 끄는 권한이 집주인한테만 있었어요. 각 방에는 보일러를 켜는 장치 같은 것도 아예 없고요. 전기 장판은 전기세 많이 나오고 화재 위험이 있다면서 또 안된대요.
일동 : 아니, 추울 땐 어떡해 그럼?
지인 4 : 문자로 집주인한테 보일러를 틀어달라고 하는 거죠. 하루는 진짜 너무 추워서 집주인한테 보일러를 켜달라고 연락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따뜻해지지가 않는 거에요. 그래서….
지인 1 : 야… 설마… 안돼… 하지마…
지인 4 : 헤어드라이어로 이불 속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 넣어 몸을 덥혔었죠… 다시 생각해도 이가 갈려요.
이렇게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강력한 한 방이 나오면 과열 양상을 보이던 세입자 배틀은 일순 숙연해진다. 물론 이러한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에게 자가(自家)는 없어도 술과 음식, 그리고 애환을 나눌 세입자 친구들이 있으니까!
이 글을 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아니 어떻게 하면 이사를 그렇게 자주 해요?”
내 친구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집순아. 너 근데 도대체 언제 그렇게 이사를 다녔니? 우리 나이에 열 다섯번 이사가 가능한가?”
“뭐 기숙사 생활도 많이 하고 교환학생도 다녀왔고 그런 거 다 합한 거지.”
“아무리 그래도.”
“너도 막상 세 보면 이사 꽤 많이 했을 걸?”
“나? 에이 아냐 나는 그렇게까진.”
“그러지 말고 세봐 한번.”
“하나… 둘… 셋…. 넷…………열여덟, 열아홉, 스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신도 배틀에 참여하실 자격이 있습니다. 열려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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