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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 Oct 03. 2018

전세자금대출 미스터리  : 집주인 동의의 비밀

[출간전 연재 5]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



미스터리한 그것, 전세자금대출무한육면각체의 비밀


“그럼 내일 계약할까요? 아, 그리고 저희 전세자금 대출을 조금 받으려고 해요.”

“전세자금 대출이요? 그걸 왜 미리 얘기 안 해요. 그렇담 안돼요.”

“엣? 어째서죠?”

“나는요, 한 평생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그런 사람이라구요.”

“아뇨, 대출은 저희가 받는 거고요. 집주인님은 은행에서 전화 오면 동의만 해주시면 돼요.”

“그러니까, 나는 대출 같은 건 싫다니까!”

“……”


이 고구마 같은 상황은 실화다. 친한 언니와 오랜만에 만나 세입자의 설움을 나누다가 언니가 “나는 이런 일도 있었어”라며 들려준 경험담이다. 이게 바로 내가 하려는 얘기다. 이른바 <전세자금 대출 미스터리>, 부제목은 ‘집주인 동의의 비밀’.


처음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던 시절. 당연히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면 집주인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사실 같은 건 알 턱이 없었다. 그렇게 해맑게 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중 상암동 쪽에 마음에 드는 원룸을 발견했고,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파투가 났다. 집주인이 전세자금 대출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제야 전셋집을 구할 땐 대출 여부부터 물어봐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인지하고 나니, 집주인 동의의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아파트는 전세자금 대출이 대부분 되는데, 원룸이나 투룸 전세를 구할 때는 평수나 보증금 같은 게 아니라 전세자금 대출 여부를 먼저 물어봐야 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없는 전세 중에 대출이 되는 전세를 추려내자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대출을 받는 사람은 나고, 갚는 사람도 난데 집주인이 동의하고 말고가 무슨 상관?


가만히 생각해보니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부동산에도 물어보고, 인터넷도 열심히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속 시원한 답은 없었다. 인터넷의 어떤 글에는 집주인 동의가 필요하다고 하고, 또 어떤 글에는 동의가 필요 없다고 돼 있었다. 심지어 은행 대출 상담사도 “뭐 집주인한테 전화는 한 통화하긴 하는데 형식적인 거예요”라고 얼버무리는 정도? 그러니까 그게 꼭 반드시 무조건 받아야 하는 거냐고!


물론 법적으로 동의가 필요하건 말건,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는 세입자는 집을 구하기에 앞서 반드시 대출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왜냐면 집주인이 그저 싫다고 하면 계약은 애초에 성사가 안되니까. “난 개 키우는 사람은 안 받아요”라거나 “두 명은 안 돼요”라고 하면, 그게 정당하건 말건 간에 집을 못 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알고 싶었다. 그래서 금융계, 법조계 지인 찬스를 써서 대강의 전말을 알아냈다.


전세자금 대출 동의를 안 해주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동의를 안 해주는 게 아니라 못해주는 경우다. 그 집 자체가 대출이 안될 가능성이 있다. 대부분의 은행은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때 집이 등기부등본상 ‘주택’ 일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원룸 같은 작은 집들은 업무시설을 개조했거나 주택이라도 불법 개조를 했을 수 있다. 이럴 경우 애초에 대출이 안되기 때문에 그냥 “대출 안돼요”라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핵심은 두 번째다. 대출 자격이 되는데도 순수하게 집주인이 대출을 거부하는 경우.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처리할 때에는 집주인에게 동의서를 받거나 전화로 동의를 구한다. 동의를 구하는 이유는 ‘채권 양도’라는 절차 때문이라고 한다. 이건 전세 기간이 다 끝나서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줄 때, 세입자가 아니라 은행에 바로 돈을 돌려주도록 하는 약속이다. 약속을 한다고 해서 집을 담보로 잡는다거나 하는, 집주인에게 불리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집주인들은 그토록 동의를 안 해주는 걸까.


“은행에서 전화를 걸어 채권이니 양도니 하는 이야기를 하면 거부감을 느끼는 집주인들이 많아요.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혹시 내 집에 무슨 불리한 설정을 하는 것 아닐까 불안해하시기도 하고요. 그래도 요새는 잘 설명해드리면 이해하고 동의들 해주시는데. 아직도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집주인의 대출 거절로 성사가 안 되는 걸 보면 좀 안타깝죠.”


집을 구할 때마다 나를 스트레스받게 했던 전세자금 대출의 미스터리가 맥없이 풀렸다.


자신의 소유물을 빌려주면서 얼마든 원하는 조건을 내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셋집들이 단지 ‘선입견’ 하나로 대출을 거절한다면, 종자돈이 없는 사회초년생이나 서민들은 높은 월세를 계속 부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가 오해 때문에 좌지우지된다는 게 합당한 일일까? 그 오해가 공기처럼 흔한 이유는 또 무엇 때문일까. 전세자금 대출, 정말이지 이해 안 되는 것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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