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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 Oct 17. 2018

애증의 부동산 중개인 1  :집 구하기의 동지 혹은 적

[출간전 연재 7]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

뷰는 좋았지만 방이 너무 좁았던 성북동의 어느 집. 그 와중에도 풍경 사진을 찍었다.



“이 가격에 이런 집 어디 가서 못 구해요. 이 정도면 후-울륭하지 아주.”

그런 말을 들으면 겉으로 표는 안내지만 나는 속으로 항상 맞받아 친다.

그렇게 좋으면 당신이 살든가. 당신은 왜 여기서 안 사는데?

집을 구할 때 부동산 중개인이 이런 말을 하는 곳은 장담컨대, 별로다. 백발백중이다.


직방, 다방, 네이버 부동산,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 등등 나도 집을 구할 때는 이런 온라인 매물을 먼저 뒤진다. 눈팅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보러 많이도 다녔다. 하지만 왜인지는 몰라도 결국 계약하는 집은 부동산 중개인이 보여 준 집이다. 그래서 내게 부동산 아저씨 아줌마들은 너무나 중요하다. 내가 먹고 자고 할 곳을 물색하고 알려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니까.


그런데 하늘 아래 그 모든 방들이 제각각으로 생겼듯이 부동산 중개인들의 개성도 만만치 않다. 슬프게도 지금까지 부동산 중개인과 관련된 기억들 대부분은 좋지 않은 것들이다. 나는 벽지나 바닥 색도 보고, 동네 분위기도 보고, 올라가는 계단도 살펴보고, 창문은 튼튼한 지도 따져봐야 하는데, 일부 무심한 부동산 중개인들이 보기엔 천장이 있고 벽이 있으면 이미 더할 나위 없는 집인가 보다. 그런 분들에게 푼돈을 들고 가 “3층 이상에 햇빛이 잘 드는 집을 원해요”라고 말하는 나 같은 사람은 그저 고생할 줄 모르는 철부지 젊은 여자'다. 내 예산과 요구를 이야기하면 “그런 건 없어요. 여기 시세는 이 정도예요”그냥 이렇게 말해주면 되는데, “아가씨가 세상 물정을 모르네”라거나 “그런 집 있으면 나한테 좀 알려달라”는 면박이 돌아온다.


오랜 경험을 통해 나는 젊은 아줌마 중개인이 나와 합이 맞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같은 여자의 눈으로 봐서 그런지 그들이 보여주는 집들은 항상 중간 이상이었다. 현재 살고 있는 열여섯 번째 집과 내가 ‘운명의 집’이라고 부르는 열네 번째 집, 한 두 해 살 줄 알았는데 꼬박 5년을 살았던 열세 번째 집이 모두 아줌마 중개인이 찾아 준 곳이다. 특히 열여섯 번째 집을 소개해 준 분은 두 번의 중개 만에 나의 자금 상황은 물론 취향까지 꿰뚫었다. 열여섯 번째 집을 구할 때 정말 많은 집을 봤지만 결국은 그녀가 “내가 자기 취향 딱 알잖아”라며 보여준 첫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


물론 모든 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 사람 나름이다. 내 기억 속 최악의 중개인 두 명은 모두 여자였다. 응암동 쪽으로 집을 알아보러 갔을 때다. 열네 번째 집에서 계약기간보다 일찍 쫓겨나는 상황이라 무너진 정신을 가까스로 그러모아 집을 보러 다니는 중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동네의 낡은 부동산 같았는데 문을 열자 의외의 풍경이 펼쳐졌다. 6평 남짓한 조그마한 공간에 한눈에 보기에도 앳돼 보이는 청년 네댓 명과 30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있었다. 무슨 PC방처럼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끊임없이 커뮤니티에 매물 홍보글을 올리는 듯했고, 그들의 휴대폰 울리는 소리도 멈추질 않았다. 느낌이 안 좋았다.


“아까 전화 주신 분이죠? 저랑 같이 가실 거예요. 이리 오세요.”

여자가 반갑게 웃으며 나를 맞았다.


그날 세 개의 집을 봤다. 첫 번째는 신혼부부가 살고 있는 1층의 투룸이었고, 또 다른 집은 빈집이었다. 다른 한 집은 할머니와 손녀 둘이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이었다. 사실 세 집 모두 깔끔하고 예뻤다. 하지만 왠지 살고 싶다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중개인은 집을 옮길 때마다 “여기 우리가 지금 안 하면 오늘 중으로 딴 사람이 차지할 거예요. 계약하러 갑시다”라고 자꾸만 계약을 독촉하는 것이다. 마음에 들어야 계약을 할 것 아닌가. 집을 보러 다니는 내내 꾹꾹 누르던 짜증이 폭발한 것은 그녀의 차를 타고 다른 집을 보러 이동하던 때였다.


“아니, 진짜 집 볼 줄 모르네. 집 볼 줄 몰라. 다른 부동산에서 다른 집들 좀 봐 봤어요? 여기랑 비교도 안돼요. 집 안 구해봐서 잘 모르나 본데...”

그 말에 마지막 이성의 빗장이 풀리고 말았다.

“아무리 좋아도 제 마음에 안 들면 안 드는 거 아녜요? 왜 억지로 계약하러 가자고 그래요!”


집을 구할 때는 절대 중개인의 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결국 그 집에 살 사람은 중개인이 아니라 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그 집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보다 더 절실할 수는 없다. 함께 가서 집 컨디션을 세심하게 따져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되레 고객인 집 구하는 이에게 태클을 거는 중개인도 많기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속으로 되뇌어도 흔들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한 번은 수압이 어떤지 궁금해서 시험 삼아 물을 틀어봤는데 “허 참. 요새 누가 수압 봐요? 지금 세상에 물 잘 안 나오는 집이 어딨다고”라는 중개인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 후로 왠지 물을 틀어보는데 소심해지고 말았다. 그 결과 나는 지금 다른 집에서 세탁기를 돌리면 샤워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압이 낮은 집에 살고 있다…


반대로 가끔은 너무 고마운 분들을 만나게 된다. 좋은 집을 보여줘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대해 준 분들이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한국에서 지낼 집을 구하던 친구가 정말 괜찮은 집이었는데도 계약을 하지 않았다며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솔직히 조건이나 집 상태가 너무 마음에 들었거든. 근데 같이 간 중개인 아저씨가 그런 얘길 하더라. 여긴 술집이랑 모텔이 너무 많아서 여자분 혼자 살기에는 좀 그렇다고. 만약 자기 여동생이라면 절대 못살게 할 거라고. 자기 계약 안돼도 좋으니까 조금 더 알아보시라고. 한국 돌아와서 정신도 없고 집 구하는 것도 너무 지쳤었는데.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더라고."


성북동에서 원룸을 보러 다닐 때였다. 조건은 괜찮아 보였는데 막상 가니 방이 예상한 것보다 너무 작았다. 이미 놓여있는 침대만으로도 방이 꽉 차 작은 책상도 들어가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마침 거기 있던 집주인이 나에게 “여기 봐봐. 뷰가 정말 좋아”라며 손바닥만 한 창문을 가리켰다.


“아 네~ 정말 멋있네요. 백만 불짜리 풍경이네요.”

하고 얼른 돌아서 내려오는데 같이 간 중개인이 눈을 흘기며 이렇게 읊조렸다.


“뷰 좋아하시네.”


순간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날도 집은 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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