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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 Oct 31. 2018

이사, 일상의 마침표  : 내 삶의 무게를 달다

[출간전 연재 9]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


열다섯 번째 집에서 본 동네 풍경. 20년 간 살았던 여섯 번째 집이 저 너머에 있다. 그렇게 싫었던 집인데도, 베란다에 서면 나도모르게 까치발을 하고 옛집 쪽을 바라보게 된다.


녹이 슬어 삐걱대는 철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고 나면 엄마는 문 밑이나 위로 열쇠를 던졌다. 조그만 열쇠 꾸러미가 시멘트 바닥에 툭 떨어지는 소리. 그 소리가 들려오면 트럭이 출발한다. 친구들이 쥐어준 색종이 편지를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몸을 돌려 작은 집이 더 작아지고 머잖아 시야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참 빨리 멀어지는구나.’

그때 나는 그런 것을 신기해 했던 것 같다.


도저히 정리될 수 없을 것 같은 삶도, 용달차 한 대면 충분히 실어 나를 수가 있었다. 별무늬가 무수하게 박힌 촌스러운 나일론 이불 보따리며 욕실에 있어 늘 축축했던 검은색 철제 선반, 옷가지들... 그 모든 삶의 부스러기들은 작은 트럭에 실린 채 도로의 굴곡에 따라 조금씩 뒤뚱거리다 새로운 곳에 부려졌다. 낯선 집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짐처럼 우리도 새 보금자리에서 낯선 존재였지만, 짐들이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듯 우리 역시 금세 새로운 일상에 적응했다. 잦은 이사가 준 선물이라고나 할까.


이사의 좋은 점은 무한히 이어질 것 같던 지루한 일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잠시 멈춰서 그 간의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다. 학교를 마치고, 또는 퇴근하고 돌아와 혼자서 짐을 쌀 때면 부지런히 물건을 옮기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편지를 읽거나 책에 빠지는 일도 많았다. 그러면서 이 집에서 새롭게 생긴 것과 여전히 남아있는 것. 이제는 그만 버려야 할 것과 영원히 간직해야 할 것에 대해 자문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내 짐이 곧 내 삶의 무게요 부피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 기숙사에서 첫 서울살이를 시작하던 그때, 내 짐은 내 삶은 아주 가벼웠다. 고작 내 손에, 내 어깨에 매달려 있는 정도. 항상 ‘거기서 거기’로 이사했기 때문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짐을 나른 적도 많았다. 나보다 더 컸던 하얀색 곰인형 '고미'는 업어서 이사를 시켰다. 고시원과 하숙집을 몇 번 더 거치면서 짐은 조금씩 늘었고 오토바이나 택시, 밴 같은 탈것의 신세를 졌다.


열여섯 번째 집으로 옮길 때는 짐이 정말로 많아져서 처음으로 포장이사를 불렀다. 트럭 한 대면 될 것 같다던 아저씨들은 막상 실어보니 한 대를 더 불러야 한다고 했다. 하긴 처음으로 전셋집을 마련했다며 침대에 책장, 식탁과 서랍장까지 사들이지 않은 게 없었으니까. 내가 그렇게 아등바등하며 사 모은 살림들이 이삿날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짐짝이 됐다.


유난히 힘들었던 그 해, 이사를 마치고 짐 더미 틈에 앉아 잠시 우울했었다. 거대한 책장과 빛 바랜 세계명작전집, 후줄근한 옷더미가 나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내 삶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무거워졌기 때문이 아닐까. 문득 그런 느낌이 왔다. 그날 이후 나는 책장과 책 대부분, 어른 둘이 옮기기에도 무거웠던 수납장, 초등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던 파스텔 등 묵은 물건을 많이, 아주 많이 처분했다.


여섯 번째 집에서 이사하던 때 엄마는 무려 20년 간 쌓였던 짐을 싸야 했다. 지겨워서 이를 바득바득 갈던 나전칠기 장롱 세트와 짙은 갈색 단스, 대체 왜 있는지 모를 미니 분수대 같은 것들을 그때 모두 정리하셨다. 그 커다랗고 묵직한 가구에 담긴 어두운 눈물과 쓰지도 달지도 않은 자잘한 추억들까지 이사를 기점으로 영영 과거로 부쳐진 셈이다. 그렇게 부쳐야 할 것이 어찌나 많았던지, 엄마는 이삿날 아침까지 짐을 다 싸지 못했다.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가져온 플라스틱 바구니에 짐을 던지다시피 해서 겨우겨우 이사를 했다고 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야기에도 그렇게 또 하나의 마침표가 찍어졌다.


이 집에서는 어떤 삶의 무게로 떠나게 될까. 몇 시간 만에 짐을 쌀 수 있으려나. 짐을 많이 줄였으니까 세 시간? 다섯 시간?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다가올 이사가 조금 기대되긴 한다. 그때까지 절대 잊지 말자. 아무리 욕심 내봤자 결국, 내가 짊어질 수 있는 것만이 내 삶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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