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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 Oct 24. 2018

전셋집이 뭐라고  :그때 그 시절 우리의 전셋집

[출간전 연재 8]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



“어머님, 아버님, 제 조카입니다.”

“아아, 그래요. 아이구 바쁜데 왜 왔어.”

“아니에요, 오늘 쉬는 날이라 하나도 안 바빠요.”

“얘가 서울서 대학 나와서 회사에 착실하니 다니고...”

“아이고 시상에나! 장하다 장해.”

“예, 그라고 지가 돈 모태 갖고 전세까지 들어 갔어라.”

“(??!)”


전.셋.집.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의미라는 게 있나? 눈에 불을 켜고 전셋집을 물색해 열네 번째 원룸을 전세로 계약했지만, 그건 다 미래에 집을 소유하기 위해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한 조치였을 따름이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집 소유욕’에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나에겐 구매가 아니면 월세나 전세나 다 같은 ‘대여’일 뿐.


하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전셋집은 조금 특별한 의미인 듯 하다. 지난해 친척 결혼식 참석차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을 모시고 상경한 작은 삼촌 내외를 마중 나갔었다. 작은 삼촌이 처음 뵙는 사돈 어르신들께 나를 소개하며 꼽은 세 가지 키워드에 '전세'가 있었다. 1번(서울에서 학교 나옴)과 2번(서울에서 직장 다님) 키워드가 나왔을 때만해도 착한 아이답게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3번(서울에 전세…) 키워드에서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삼촌, 이건 초면에 합당한 소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아...아니에요, 그냥 방 한 칸짜리 집이에요”라고 손을 내저었지만, 당황한 내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그래그래”를 연발하시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작은 삼촌도 삼촌이지만, 우리 엄마는 또 어떻고. 열네 번째 집으로 이사하기 전 날은 바로 엄마의 생신이었다. 이사를 돕기 위해 올라온 엄마는 케이크를 사다가 생일 잔치를 하자는 내 말에 단호한 거부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그 이유란 게 좀 그랬다.

“나는 눈에 흙이 들어가도 월셋집에서 생일을 맞이하진 않을랑게.”

아니, 뭐 그렇게 진지할 것 까지야. 그 기세에 눌려 다음날 이사간 집에서 촛불을 켰다. 내 휴대폰에는 생일 축하 노래에 맞춰 군인처럼 박수를 치는 엄마의 신난 표정이 사진으로 고이고이 남아있다.


‘세계 유일무이, 집을 매개로 한 사금융 제도’ ‘우리나라를 갭투자의 온상을 만든 주범’.

전세 제도를 향한 이런 비판도 적지 않다. 하지만 평생을 두고 내 집을 장만할 날이 올까 아득하기만 했던 사람들에게, 전세는 내 집 마련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처럼 2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전세금을 올리는 경우도 비교적 적었고, 그래서 요즘보단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 있었다.


전셋집이 곧 우리집이었고, 전세금이 곧 전 재산이었다. 그런 전세금을 딴 데 쓰려고 빼거나, 떼이기라도 하면 집이 망하고 인생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건설사가 부도가 나서 결국엔 보증금 일부가 날아갔던 나의 여섯 번째 집. 전세금을 돌려받지도 못할 수 있다는 소식에,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울고불고했다. 그런여동생을 보기가 안쓰럽고 답답했던 큰삼촌이 무작정 우리 아파트 사무소를 찾아갔다.

“여기 다 어려운 사람들 들어온지 알지라?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알지라!”

삼촌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오는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전세하니까 생각나는 기억이 또 하나 있다. ‘가정환경조사서’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어릴 땐 해마다 새학기면 가정환경조사서를 제출해야 했다. 소득이나 주거 형태를 물어보는 내용이 적힌 그 갱지는 매해 3월 내 손에 들려 엄마에게로 전달됐다. 소득 수준이야 어려운 학생을 지원하기 위해 조사한다고 쳐도 주거 형태는 대체 왜 필요했을까? 그리고 왜 같은 질문을 6년 동안 반복해야 했을까. 말해봐요,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요?


어느 3월이었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가정환경조사서에 볼펜으로 체크를 해나갔다. 그러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왔다.


“엄마, 이거는 어디에 표시해? 자가, 전세, 월세…”

“전세에다 표시하면 돼.”

“전세가 뭔데?”

“우리집이란 뜻이야.”

“그럼 자가랑 월세는 우리집 아니고 뭐야?”

“아니이, 다 같은 건데 종류가 좀 다른 거야.”

“그니까 뭐가 다른데?”

“전세에 표시해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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