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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 May 31. 2019

[연수편_3]우회전은 우아하게

굴러가 어쨌든




코너링이 참 우아하시네요



“자, 저기서 우회전.”

“아. 네 우회전이요, 우회전...”

“집순씨, 우회전은 어떻게 해야 해. 대답해봐.”

“에...일단 깜빡이를 켜고, 횡단보도 파란불이 아닐 때...”

“에효. 따라해. 우회전은 우아-하게.”

“???”

“아 따라하라고. 우회전은 어떻게?”

“우... 우아-하게...”


“저어… 선생님.”

“뭐.”

“그럼 좌회전은 어떻게 하나요?”

“시끄러.”



‘우’자로 시작하는 것 말고, 우회전과 우아함의 상관 관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선생님은 우회전을 할 때마다 눈꺼풀을 내려 깔고 콧소리를 한껏 섞어가며 우아미를 거듭 강조했다. 근데 실은 이 맥락 없는 가르침이 내가 그의 교육 내용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운전이라는 일종의 ‘기술’을 가르치면서 ‘우아할 것’을 주문하는 것. 그게 내겐 왠지 아주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건 아마도 내가 이른바 ‘먹고사니즘’의 시대를 살아가는 철저한 ‘먹고사니스트’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우아하다는 말 조차 사치인 시대에, 우회전을 우아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나만 아는 지극히 사소한 반항인 동시에, 가장 급진적인 투쟁처럼 느껴진달까.



그야말로 '극한초보'였던 나의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좌우를 막론하고 우아한 코너링은, 실로 쉽지 않은 것이었다. 우선 속도 조절이 정말 어렵다. 필요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급커브를 돌면 차가 날아갈 것 같은 아찔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게 무서워 커브 바로 직전에 속도를 급감했다가 뒷차 운전자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 적도 있다. 약간 경사까지 있는 커브길이었는데 속도가 너무 낮아 차가 기어가다시피 했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왕초보도 할 수 있다는 그 유명한 '직진'도 우아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급정거, 급출발을 하지 않기 위해 발끝에 힘을 주고 페달을 살살 밟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나중엔 발끝이 저려오고 다리가 뻐근해진다. 종아리에 쥐가 나기도 여러번이다.


 

굳이 우아씩이나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잘 가고 멈추기만 하면 되지. 장거리 운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그나마 다른 사람을 태우고 운전할 때에는 승차감에 더 신경을 쓰지만, 혼자 있을 때는 대충 운전하게 된다. 역시 우아한 운전은 사치인가보다 싶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거친 운전을 하다보면, 속이 울렁거리기 때문이다... 적어도 운전에서만큼은, 우아는 사치가 아니다.



그나저나 콧소리가 한 가득 섞인 선생님의 그 어조가 어찌나 중독적인지, 머릿속을 도통 떠나질 않는다. 선생님 없이 혼자 운전을 하는 지금도 우회전을 할 때면 어느새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다.



우회전은 우아하게. 아니, 우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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