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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 Jun 07. 2019

[연수편_4]브레이크가 있다

굴러가 어쨌든







“따라해봐.”

오늘도 연수를 시작하는 선생님의 첫 마디는 똑같다.



“브레이크가 있다.”

“브레이크가 있다!”

“세 번 반복해.”

“브레이크가있다브레이크가있다브레이크가있다!”



“선생님 근데요.”

“뭐?”

“엑셀은요?”

“시끄러”



치고 달린다. 야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런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운전도 다를 바 없다. 갈 땐 엑셀을 밟고 멈출 땐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다. 물론 실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쳐야 할지 달려야 할지 판단이 안될 때도 있고, 달리긴 달렸는데 스텝이 꼬이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대한 착오는 멈춰야 할 때 달리거나 달려야 할 때 멀뚱히 서 있는 것이겠지. 그래서 ‘시끄러 선생님’은 내게 이런 당부를 했다. “이상하게 당황하면 브레이크가 아니라 엑셀을 밟게 된다고. 그러면 큰 사고가 나. 그러니까 미리미리 세뇌를 시켜둬야 해. 브레이크가 있다. 브레이크가 있다……”



물론 사고 상황이야 케이스 바이 케이스, 대처도 제각각이겠지만 어쨌거나 시끄러 선생님의 경험상으론 비상시 브레이크보다는 엑셀을 밟는 비율이 높다는 얘긴데. 궁금했다. 어째서 브레이크가 아니고 하필 엑셀일까? 사고회로가 얼어붙을 때 우리는 왜 멈추기보다 달리기를 선택하는 것일까?



실은,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의문을 가졌었다. 운전을 배우기에 앞서 내가 배운 두 가지 기술이 있다. 수영, 그리고 스쿠버다이빙이다. 이 두 가지를 배우면서 나는 한평생 간과해 온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그건 바로 내가 '숨을 쉰다'는 것을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머리로는 호흡의 정의가 숨을 마시고 뱉는 한 세트라는 걸 안다. 하지만 물 속에서 공포에 빠져 다급해지면 나는 언제나 숨을 뱉기보다 들이마시기에 바빴다. 당연히 호흡이 될 리 없다. 몇 번이고 물 밖으로 도망쳐 헐떡대는 나를 보며 스쿠버다이빙 선생님은 물속에서 숨을 잘 뱉는 법을 가르쳤다. “물속에서 숨을 내뱉으면 물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오죠? 그걸 끝-까지, 끝까지 다 뱉어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이 원칙은 수영을 배울 때에도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자유형에서, 물속에 고개를 처박는 순간 숨을 끝까지 방출해야만 고개를 수면으로 돌렸을 때 충분한 산소를 마실 수 있다. 내 안의 산소가 빠져나가는 게 아까워 숨을 참으면 그때부터 코 속으로 물이 마구마구 밀려들어온다. 호흡이 불안정하면 멀리 갈 수 없다. 이처럼 숨을 들이마시는 것과 내쉬는 것은 50대 50의 비율로 똑같이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이토록 자연스럽게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곧 숨쉬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브레이크와 엑셀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차를 탄다. 그러니까 멈춘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차를 타는 목적에 위배된다. 멈춰 선다는 것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점차 잊혀지고 어느새 엑셀과 브레이크의 중요도가 다르게 매겨진다. 숨이 마시고 쉬는 것의 한 세트로 이어진 것처럼, 운전도 엑셀과 브레이크가 정확히 50대 50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말이다. 다시금 브레이크의 존재감을 되새겨 둘 사이의 밸런스를 되찾아야 한다. 여기에 브레이크가 있다. 멈출 수 있다. 언제든, 멈출 수 있다.



인생은 길이고 우리는 그 길을 걷는 여행자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끝이 보이지도 않고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모를 이 길을 나는, 사람들은 걷고 또 걷는다. 맨날 걷기만 하다 보니, 걷는 걸로 부족해 뛰라는 말만 들으며 살다 보니 잊고 있었다. 지금 당장 걸음을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멈춤이라는 것은, 브레이크를 밟고 숨을 내 쉰다는 것은, 단순히 다시 걷기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는 부수적인 행위가 아니다. 멈춤에는 그 자체로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기능과 의미가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시는 잊지 말아야지. 그러니까, 다시 세 번 반복이다.

“브레이크가있다브레이크가있다브레이크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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