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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 Jun 21. 2019

[연수편_6]선배, 열쇠구멍이 어디죠

굴러가 어쨌든




무엇이 무엇인지... 여긴 어디며 나는 누구인지...



20시간의 운전연수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시끄러 선생님의 지시 없이도, 나는 차선을 바꾸고 도로가 시원할 때에는 슬쩍 속도를 즐기기도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슬슬 실전 운전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할 때가 된 것이다. 마음의 준비라. 그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렇지, 그게 있었지!



나는 무릎을 탁 치며 전화사주에(!) 전화를 걸었다. 연수 마무리할 즈음이 마침 연초이기도 했기에, 신년 운세도 볼 겸사겸사. 내 인생에 일확천금이 들어올 계획이 있는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는지, 내 운명의 상대는 세상에 태어났는지 등등 핵심 질문을 물어본 끝에, 나는 추신을 붙이듯 질문 하나를 덧붙였다. “제가 운전을 배웠거든요. 혹시 사고수 같은 거 없나요?”



내내 차분하게 상담해 주시던 전화사주 선생님이 나의 마지막 질문에 갑자기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아니 뭐 그런걸 다 아하하하. 그래서 연수 몇 시간이나 받았는데?”

“20시간요……”

“뭐어? 연수를 무슨 20시간이나 받았어? 우하하하하하하.”

머쓱해진 내가 “아니… 그래도 걱정이 되잖아요…”라고 말꼬리를 흐리는데 그녀가 말한다.

“너도 참 걱정도 팔자다, 팔자야. 너 운전 아주 잘할 사주야. 운전에서 사방팔방 어디든 돌아다닐 사주!”

그 말에 이번엔 내가 터지고 말았다. “에? 사주에 운전을 잘하는 사주도 있나요? 큭큭흑흑흑. 아니 너무 갖다 붙이시는 거 아녜요?”

“그럼~ 나 같은 사람은 절대 운전하면 안 되는 사주야. 손으로 하는 건 다 젬병이거든. 아무튼 쓸데없는 걱정 말고 운전해서 잘 놀러 다니세요.”

그래, 이게 내가 기다린 말이었다! 마음의 준비 끝! 나는 선생님께 내년에 다시 만나자며 인사를 고하고 전화를 끊었다.



친한 선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면서 전화사주 에피소드를 풀었다. “선배 글쎄 제가 운전을 잘할 사주라네요. 그런 거 말고 일확천금을 얻을 사주라던가 하면 얼마나 좋아요.” 잠자코 얘길 듣던 선배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내 차 운전해볼래? 근처가 한강공원이니까. 잠깐 차 세우고.”



날씨도 쌀쌀하고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라 주차장엔 서 있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일단 주차하고, 우리는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고 돌아왔다. 빈속에 운전하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차 키를 쥐어준 선배가 조수석 쪽 문으로 향했다. 좋았어, 자 우선은 차문을 열자. 그런데 문을 어떻게 열더라? 에효. 어떻게 열긴~ 바보, 열쇠로 열지!!



조수석 앞에 떨며 서있던 선배가 한참을 기다려도 문이 안 열리니까 내 쪽으로 돌아왔다. “야, 왜 문을 안 열어?”

“선배 어두워서 잘 안보이는데... 열쇠구멍이 어디죠?”

선배가 공포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뗐다.


“집순아. 리모컨 열림 버튼 누르면 되잖아……”



진정한 초보운전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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