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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 Jul 19. 2019

[실전편_2]또, 사고

굴러가 어쨌든




공유차를 운전하기 전엔 늘 차 상태를 확인하고 흠집을 찍어둡니다. 누군가 남겨놓은 흠집 하나.



3월의 진해는 벚꽃 천지였다. 가족과 친구를 차에 태우고 벚꽃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는 어느 언덕길을 달렸다. 다들 오랜만의 나들이였다. 룸미러로 슬쩍 내 동승자들의 표정을 봤다. 조금은 들뜨고 또 한편으로는 나른한 얼굴. 그래, 나 운전 배우길 참 잘했지.



벚꽃은 정말 예뻤습니다...



하지만 도로 사정은 만만치 않았다. 2차선에 불과한 도로 한쪽에 벚꽃놀이를 하러 온 이들의 차들이 길게 주차돼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차선 하나를 왕복 차량이 함께 이용하는 꼴이었다. 반대쪽에서 오는 차를 한 대 보내고 나면 이쪽에서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부딪힐 뻔한 고비를 몇 번이고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막 속도를 내기 시작했을 때였다. 퍽- 하는 소리가 났다. 하.... 사고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친구와 뛰어갔다. 피해차량은 갓길에 사이드미러를 편 채로 주차된 차였다. 내가 너무 붙어서 운전하는 바람에 부딪힌 왼쪽 사이드미러가 앞쪽으로 완전히 꺾여있었다. 살짝 당겨보니 다행히 제자리로 돌아오긴 한다. 페인트 자국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접촉이었다. 아니, 자국도 안 남은 충돌인데 소리는 왜 그리도 크게 나는지! 정말 접촉사고가 날 때마다 심장이 떨어질 것 같다. 웃긴 건 상대방 차는 멀쩡한데 내가 몬 차의 사이드 미러엔 흰 페인트 자국이 남았다는 거다. 지난번엔 상대방 차에만 흠집이 났는데, 이번엔 내 차에만 나다니, 정말 복불복이다.



그냥 갈까 하다가, 그래도 차주에게 전화를 했다. 등산복 차림으로 온 차주는 별 이상 없다며 괜찮다고 하셨다. 사고가 나면 작든 크든 연락을 드리는 게 맞지만, 이렇게 사고가 미미한 경우 조금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다.



진해에서 내가 몬 차는 동생 차(10여 년 전 나와 함께 면허를 땄지만 여전히 운전을 못한다. 그래서 그녀의 집을 찾아간 사람들이 이 차를 몬다…)였기에, 언젠가 먼 미래에 사이드 미러를 갈아주겠다는 구두 합의로 상황이 끝났다. 하지만 공유차의 경우엔 문제가 다르다. 흠집이 없거나 미미한 경우에도 과연 본사에 알려야 할까?



물론 이 또한 원칙적으로는 모두 알려야 할 테지만, 경험상 흠집이 없거나 미미한 경우(물론 피해 상대방이 없어야 한다)에는 공유차 본사 측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하긴 그 많은 자잘한 흠집을 다 보험 처리하려면 돈도 돈이지만 회사도 얼마나 고달플까. 하지만,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미미한 정도가 아니라, 시원하게(?) 차를 긁어놓고 본인만 입 다물고 있으면 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점이다. 공유차를 운전하다가 벽인지 뭔지에 차를 대차게 긁었다는 나의 또 다른 지인. 그 또한 ‘우드드득-’하는 소리에 놀라 내려 차를 살펴보니 뒷문에 큰 흠집이 남았단다. 고민 끝에 자신만의 비밀로 덮었던 그는 얼마 후 공유차 회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고객님, O월 O일 O시부터 O시 사이 저희 차를 이용하시면서 접촉사고 내셨죠?”

“아..으아니 그걸 어떻게…”

“블랙박스에 고객님이 놀라 내려서 차를 확인하는 모습이 찍혔습니다.”



결국 지인은 수리비는 물론 회사에서 책정한 벌금까지 물었다고 한다. 역시 공유차 회사들도 허투루 장사를 하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운전을 시작한 지 1년 반, 아직도 좁은 골목길이나 차가 딱 붙어서 움직이는 도심에서는 혹시나 다른 차를 긁진 않을까 긴장이 된다. 좌우 사이드 미러를 번갈아 확인하느라 어지러움마저 느낄 때면 애먼 자동차 제조사에 분노가 치민다. 대체 왜 자동차를 이렇게 스치기만 해도 긁히는 걸로 만든 거야? 페인트 도장 대신에 차 겉면을 패딩 점퍼 같은 걸로 덮든가, 범퍼를 온통 스펀지로 두르면 최소한 긁히진 않을 거 아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할 만큼, 좁은 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때. 늘 곱씹는 내 연수 선생님의 가르침 하나.



“선생님... 이 길을 차가 지나갈 수 있나요? 너무 좁아 보이는데요?”

“리아까(리어카) 가는 길 아니잖아. 도로잖아. 갈 수 있어. 가!!”

“흐으어허헣어어ㅠ_ㅠ”

“가라고!!!”



절대로 죽어도 못 지나갈 것처럼 험준하고 협소해 보이는 길도, 남들 다 다니는 길이랍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갈 수... 있어요. 갈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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