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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 Aug 09. 2020

[어드밴스드_ 끝] 멀-리, 여유-롭게

굴러가 어쨌든




운전대를 막 잡았을 때 주변에서 했던 초보운전의 몇 가지 ‘코스(?)’가 있었다.


1.     사이드 미러를 접고 도로를 달린다.

2.     한적한 도로 (예를 들어 제주도 외곽 도로 같은) 곳에서 역주행을 해버린다.

3.     운전 2~3년차에 큰 사고가 나기 쉽다.


하나같이 가당치도 않았다. 일단, 요즘 차들은 시동을 걸면 사이드미러가 자동으로 펼쳐진다. 아니 그리고 아무리 한적해도 그렇지 샛노랗게 중앙선이 그어져있는데 그걸 왜 넘음? 교통사고야 하늘의 소관이겠지만 나처럼 겁많은 사람은 워낙에 살금살금 운전하기 때문에 접촉사고 이상은 날 가능성이 희박하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 초보운전의 코스를 성실하게, 하나도 빠짐없이 밟아왔다. 다들 알다시피 나는 새벽 김포가는 길에 사이드미러 한 쪽을 접고 질주했고, 제주도에서는 온 가족을 태우고 역주행을 시전했다. 대형사고도 냈다. 운전을 시작한지 딱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보나마나 뻔하다고 예상했던 그 모든 것들이 예측을 빗나갔다. 나만은 다르다, 그런 건 정말로, 단 하나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예측만 빗나간게 아니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내 눈을 의심하게 됐다. 절대로 차가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좁아보이는 길이어도 내 차는 낙낙하게 지나갈 수 있었고, 수평 이동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해 보이던 좁은 공간에도 평행주차는 가능했다. 이건 약과에 불과하다. 길이 굽어보인다고 핸들을 돌리는 것도 때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살짝 커브가 있는 길에 맞춰 핸들을 돌리다보면 어느새  차선을 밟기 일쑤였다. 이럴땐 직진을 한다고 생각하고 핸들을 잡고 있으면 오히려 안정적으로 운전할 수 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당장 코 앞에, 내 눈 앞에 뻔히 보이는 길인데도 직접 가고 밟아 봐야만 보이는 것들이 도처에 있었다.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눈 앞에 있는 것을 보지 않는 것이다. 대신 더 먼 곳을 보는 거다. 그래서 나의 운전 선생님은 아주 여러번, 그 특유의 박자감을 가진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멀-리, 여유-롭게 운전하라고.


직접 가봐야만 알 수 있는게 생각보다 많다는 거, 아직은 완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진심으로,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봐야 한다고? 근데 또, 조금 달리 생각하면 좀 납득이 되기도 한다. 내가 아무리 전전긍긍하며 예측을 하고 한 박자 일찍 핸들을 돌려봤자, 실전은 다를 수 있다.


이 사실이 그닥 짜증나지도, 슬프지도 않은 걸 보면

나도 이제 조금은 어른이 된 것일까.


물론 마음 먹은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마음이라도 먹는게 어디야, 이렇게 생각하려 한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마음 먹으려고.

멀-리, 여유-롭게 드라이브하자고.


운전을 할때건, 운전을 하지 않을때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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