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순 Jul 19. 2020

[어드밴스드_11] 두 번의 장례식

굴러가 어쨌든





친구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담담하게 시작해서 나중엔 가늘게 떨렸다.


부모님의 부고를 전하는 전화였다.


.

.

.


한 친구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빠를 잃었고, 또 다른 친구는 암으로 남들보다 일찍 엄마를 보내야 했다. 내게, 내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아직은 너무도 멀고 너무도 생소한 단어라서, 부모님의 부음을 전하는 친구도 나도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답해야할지 전혀 몰랐다. 그때 그 당시의 통화를 떠올리면 "모르겠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도 했던지. 연락을 하려고 하니 막상 누구에게 전화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 갑자기 이렇게 되실줄은 정말이지 몰랐다고.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머뭇대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지금 갈게.”


언제든, 무슨 말에든 "괜찮다"고, "너 편할때"라고 입버릇처럼 대답하던 무던한 나의 친구들은 그때만큼은 아이처럼 그저 알겠다고 답했다. 그 순순한 대답이 차라리 다행스러웠다. 나는 맞는 대답을 한 것이었다.


두 번의 장례식 모두 광주였다. 첫 번째 부고는 퇴근 후 서울 집에서, 두 번째 부고는 휴가 중 파주에서 받았다. 첫 번째 장례식에는 밤중에 쏘카를 빌려 그대로 광주로 갔다. 파주에서 역시 연락을 받자마자 짐을 싸고 휴가를 위해 빌린 공유차를 연장한 뒤 시동을 걸었다. 그 기분은 버스나 KTX를 타고 지방에 갈 때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지금 가겠다고 답한 그 순간, 나는 정말로 친구들에게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니까. 서울에서 광주까지 가는 4시간 여 동안 걱정이 되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 갈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눈이 발갛게 부은 친구의 얼굴을 봤을때, 새벽녘 어두운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문을 열고 뛰어가 친구와 안고 울었을 때 그 안도감은 더욱 확실해졌다.


아주 어릴때, '거리' 같은 것에 얽매이지 말자고 다짐한 적이 있다. 내 첫 해외 여행지 인도에서였다. 어떤 여행자가 말했다. “여기는 바로 옆 동네 가려고 해도 차로 7~8시간은 걸리잖아요. 좀 멀리 갔다하면 하루 이틀이고. 그거에 비하면 한국은 얼마나 좁아요? 그러니까 이제 돌아가면 어디든 멀다고 생각 안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거 같아요. 기동성이 생긴 기분이랄까. 부산 사는 친구가 갑자기 보고 싶다고 하면 ‘어 알았어!’ 하고 서울서 바로 달려가는 거지. 돌아가면 꼭, 꼭 그렇게 살려고요.” 지금도 손으로 만져질 듯 선명한 장면, 도란도란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 그의 말에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나도 꼭 그렇게 살고 싶다했다.


물론 여행에서 한 모든 다짐과 약속은 현실에선 효력을 잃기 마련이다. 나는 서울에서 세시간 반이면 닿는 고향집도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않는 표준형의 어른이 됐다. 그런데, 그러다가, 다들 알다시피, 나는 얼마 전부터 운전을 시작했다. 뭐 대단한 변화는 아니지만, 그게 가끔 내 마음 한 구석을 '똑똑'하고 두드린다. 원하면 어디든 달려갈 수 있을 것 같던 어린 시절의 그 마음을.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거, 아직 사라지지 않았어. 잠시 잊혀졌을 뿐이지."

이전 27화 [어드밴스드_10] 쏘카를 타고 속도위반을 하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