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콩 Oct 10. 2018

내겐 아주 오래된 음악이 있지

'추억의 가요 TOP 10’을 듣는 아침

그 어느 날보다 토요일의 아침을 가장 사랑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새벽 6시쯤 일어나  아이의 도시락을 싸야 하지만,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은 별다른 스케줄이 없는  늦잠을 즐길  있다. 휴일인데도 오히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는 청개구리 아이들은 한국에 있는 외할머니, 고모와 영상통화를 하거나 미뤄두었던 게임을 하며 엄마를 깨우지 않고 나름 토요일 아침의 자유를 만끽한다.

 

덕분에 늘어지게 한잠 자고 일어나면 아침도 점심도 아닌 애매한 시간. 고픈 배를 안고 그야말로 '브런치'를 준비하며 자연스레 하는 일은 핸드폰의 라디오 앱을 켜는 것이다. 평소에는 시차 때문에 한국의 라디오를 잘 듣지 못하지만, 토요일에는 빼놓지 않고 찾는 프로가 있다. 음악 작가 배순탁과 김제동이 지나간 가요들을 소개하는 '추억의 가요 TOP 10'이다. 세상이 좋아진 덕에 이제는 '다시 듣기'라는 것이 생겨서 한국의 토요일 아침에 방송되었던 것을 8시간이 지난 더블린에서 아침을 만끽하며 들을 수 있다.

혹시 모르는 이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가요 TOP 10'은 1980년대 초부터 방송되었던 일종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옛 이름이다. 요즘의 '뮤직뱅크'나 '인기가요' 같은 음악 방송의 전신이랄까. 어쨌든 이 코너 이름을 익히 알고 있다는 건 어쩌면 나처럼 조금은 옛날 사람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여기서 잠깐, 나와 비슷한 또래의 '옛날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 아주 주관적인 생각을 나열해보자면 이렇다.


- '초등학교'보다 '국민학교'가 더 친근하다.

-  매주 토요일에는 당연히 학교에 갔다.

- 어릴 적에 CD보다 LP나 카세트테이프를 더 자주 들었다.

- 사춘기 시절 혼자서 '마이마이' 같은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들고 다녔다.

- 라디오나 다른 테이프에서 나오는 노래를 모아 녹음한 나만의 테이프를 만들어봤다.

- 다이얼을 돌리는 전화기, 안테나가 달린 벽돌만 한 무선 전화기를 집에서 사용해봤다.

- 동네 슈퍼 앞에서 주황색 공중 전화기를 본 적이 있다.

- '외로운 동전 두 개뿐'이라는 015B의 노래 가사가 어쩐지 생경하지 않다.

-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오곤 했다.

- 손편지나 쪽지로 친구들과 얘기를 주고받았다.



마침내 라디오 앱이 가동되고 시그널 뮤직이 끝나면 엄중한 목소리로 주의사항을 미리 알려준다. '추억의 가요 TOP 10' 은 절대 음악 코너가 아니라 신변잡기식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니, 순수하게 음악을 듣고 싶다면 여느 음원사이트를 참고하는 것이 낫다는 내용이다. 이제 추억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면 편안히 귀와 마음을 열기만 하면 된다.


"오늘은 89년 9월 둘째 주로 가봅니다. 추억의 가요 TOP 10, 10위 곡은요!"


잊고 있었던 29년 전의 노래들이 하나씩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배순탁과 김제동은 기다렸다는 듯이 동네 고등학생처럼 아웅다웅 떠들기 시작한다. 대부분 노래에 대한 정보와는 거리가 멀다(간혹 배순탁은 음악 작가답게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그의 진정한 목적은 어디까지나 수다에 있다). 그 노래가 유행할 당시 자신이 군대에 있었다거나 친구 누구와 어디서 무얼 하고 놀았다거나, 그 노래를 부른 가수와 친분이 있다는 등의 아주 사사로운 얘기들을 늘어놓는가 하면, 개인적인 애창곡이 나올 때면 갑자기 자기 흥을 이기지 못해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한다.

어수선하고 시끄럽기 그지없지만, 듣고 있는 나와 남편은 개의치 않는다. 옛 노래와 그들의 수다를 배경으로 두고 우리 둘 역시 노래에 얽힌 추억들을 끄집어내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노래는 노래대로, DJ는 DJ대로, 청취자인 우리까지 가세해 제각각 떠들어대는 정신없는 식탁 앞에서 2007년과 2010년에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댄다.


"아휴, 엄마 아빠도 옛날 사람이네, 완전 아재 감성!"

녀석들의 놀림에도 아랑곳 않고 추억 속에 푹 빠져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열 곡이 모두 끝나 있다.

본격적인 음악 감상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그날 소개된 노래들을 플레이 리스트에 골라 넣어놓고는 스피커가 쩌렁 울리도록 거실 가득 노래를 채워간다.


5위 어떤날의 '출발'

4위 푸른하늘의 '눈물 나는 날에는'

3위 오석준의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2위 박학기의  '이미 그대는'

1위 황치훈의 '추억 속의 그대'


오늘은 유난히 마음을 건드리는 노래가 많아서인지 그 여운이 더욱 길다. 이런 날은 아주 오래 전의 어딘가를 서성이느라 황금 같은 토요일 하루가 구름처럼 다 지나가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음악을 벗 삼아 살고 있지만, 그 옛날에 들었던 음악들은 요즘 듣는 음악과는 다르다. 단순히 무엇이 더 좋고 아니고를 떠나 기억하는 방식부터 차이가 있다.

좋아했던 옛 노래들의 전주가 흐르는 순간, 몸과 귀와 마음이 이미 반응하면서 마치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듯 어릴 적 내가 머물던 어떤 공간이나 인상적인 에피소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순간들이 동시에 상기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예를 들면, 유재하의 '지난날'을 들을 때면 라디오를 켜놓고 '별밤'을 듣던 주말의 어느 밤들이 찾아온다. 이문세 아저씨는 주말마다 인기곡들의 순위를 정해 들려줬는데, 유재하가 세상을 떠난 후 한동안 1위를 했던 '지난날'을 마지막 곡으로 듣노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짠해서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별밤이 끝나고도 밤새 뒤척이던 좁고 어두운 내 방과 누워서도 어스름하게 보이던 천장과 벽에 걸린 낡은 옷걸이들까지 모두 눈에 선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유재하의 단 하나의 음반

맑고 차분한 기타 소리와 조곤조곤 읊조리는 노래로 시작되는 어떤날의 음악을 들을 때면 마치 소녀로 되돌아간 듯 마음이 설렌다. 순수한 십 대 감성에 조용조용 영양분을 부어주었던 그들의 노래는 책상이 놓인 답답한 현실 너머의 먼 어딘가를 응시하게 했다. 마음이 허전한 날, 친구들에게 손편지를 쓸 때면 서정적인 그들의 노래 가사를 마치 시처럼 인용하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하늘, 바람, 비, 나무, 바다, 그리고 친구를 이야기하는 어떤날의 노래는 한참 세월이 흐른 지금 아일랜드의 푸른 풍경과도 제법 잘 어울려서 지금도 가장 자주 찾는 나의 친구이기도 하다.


김현식의 노래는 그가 세상을 떠났던 1990년 11월 1일 아침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부고가 전해진 아침. 아이들이 빽빽한 교실 안에서 슬픔에 억눌린 친구와 나는 도무지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내내 아쉬운 마음을 쪽지로 주고받으며 하루를 보냈다.

'세상은 외롭고 쓸쓸해. 때로는 친구도 필요해. 그대 멀리 떠난다 해도, 나 언제나 그대 곁으로 달려갈래요.' 주로 그의 노래 속 가사를 끄적이며 마음을 달랬던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 갔던 콘서트가 1989년 어느 날에 언니와 함께 갔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콘서트였다. 마침 그때 게스트가 김현식이었는데, 고개를 푹 숙이고 노래에 흠뻑 빠져있던 그 모습이 내가 본 처음이자 마지막의 김현식이었다.


수업시간에 소매자락에 이어폰 줄을 연결하여 몰래 귀에 손을 얹고 애써 흥을 누르며 들었던 듀스의 노래들,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에 집어넣고 어디를 다닐 때마다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듣곤 했던  'Queen'과 'Boyz II Men' 'John Lennon'  등 좋아했던 노래마다 떠오르는 장면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그 노래들은 끝없이 나를 유년의 어느 언저리로 데려다준다. 그리고 그 언저리를 거슬러 거슬러 오르다 보면 어느새 그 추억을 함께 공유했던 나의 언니의 옆자리에 머물러 있다. 언니와 함께 쓰던 방, 나란히 앉아 연주하던 오래된 영창 피아노, 함께 사 모으던 음반과 악보들, 학교를 땡땡이치고 몰래 다녔던 콘서트까지, 우리는 언제나 같이 있었다. 나보다 세 살이 많았지만 늘 친구처럼 쿵짝이 잘 맞았던 우리 자매는 취향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해서 음악과 영화, 소설과 시집 등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많은 것을 함께 나누며 성장했다.


아주 어릴 적 안방 한 구석에는 아빠가 어디선가 구해오신 턴 테이블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옆에는 초록색 테이프로 테두리를 감아놓은 레코드판들이 가득했다. 한동안 함께 살았던 고모와 삼촌들은 비틀스나 아바, 조용필, 카펜터스와 같은 가수들의 노래들로 방안을 가득 채우고, 기타를 치며 따라 부르곤 했다. 조금 자란 후 내 의지로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을 때 웬만한 올드 팝송을 들으면 대부분 다 아는 곡처럼 귀와 입이 익숙하게 반응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음악은 그냥 우리 삶의 OST 같은 것이었다.

 

삼촌 고모들이 결혼과 함께 하나둘 집을 떠나고 난 후, 그 턴테이블과 오래된 LP들은 자연스레 언니와 나의 방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는 카세트테이프를 종종 사기도 했지만 우리만의 컬렉션을 만들기 위해 적은 용돈을 모아 한 달에 한 개씩 LP를 구입했다. 심사숙고 끝에 그 달의 음반이 결정되면 동네에 하나 있던 작은 음반가게로 달려가 판을 사고 집에 와서 턴테이블에 올려놓는 기분은 정말로 최고였다. 요즘 같으면 새 음반이 나오면 바로 모바일폰의 버튼 몇 개만으로 신곡을 들을 수 있지만, 그때는 새로운 음악을 듣기 위해서 음반가게까지 한참을 걸어갔다가 LP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콩닥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설렌 맘으로 걷던 그 시간을 우리 아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한번은 TV에서 마이클 볼튼이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를 부르는 뮤직비디오가 처음 방송된 적이 있는데, 탐스러운 사자머리를 휘날리며 부르는 그 노래가 어찌나 매력적이던지 고민할 것도 없이 그의 음반을 사러 가자고 언니와 바로 나섰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이클 볼튼 음반 주세요!" 하고 판을 받아 들고 집으로 뛰어와 급하게 뜯었는데, 아무리 끝까지 들어도 그 노래가 나오지 않아 어찌나 당황했던지. 그 한 곡 말고는 그의 이력을 전혀 몰랐던 무지한 우리는 마이클 볼튼이 이미 여러 장의 음반을 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언니와 내가 사랑했던 '아침’과 '새바람이 오는 그늘’의 앨범은 지금은 희귀 음반이 되어있지 않을까.
요즘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가 없어서 듣기 쉽지 않은 오래 전의 애장품들.


우리가 음악을 향유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 때면 딸깍 때를 맞춰 녹음 버튼을 눌러서 나만의 선곡 리스트 테이프를 만들기도 하고, 악보를 구입해서 함께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일은 매일의 일과였다. 나중에는 악보를 보관할 공간이 없을 정도로 잔뜩 쌓여서 그 돈으로 참고서를 샀으면 공부를 얼마나 잘했겠냐는 엄마의 핀잔을 들었던 기억도 난다. 슬슬 콘서트에도 눈이 트이기 시작했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콘서트를 다녀온 후, 그 팀이 속해 있던 '동아기획'이라는 레이블을 알게 된 덕에 그 회사에 속해있던 김현식, 들국화, 조동진, 신촌블루스, 빛과 소금, 박학기, 푸른하늘, 김현철, 이소라, 낯선 사람들 등의 노래를 찾아 듣고 그들의 콘서트를 전전했다.


요즘 나와 아이들은 주로 유튜브나 디지털 음원을 다운로드하여 노래를 듣는다. 가수나 앨범 위주로 음악을 고르기보다는 그때그때 듣고 싶은 것을 마치 자판기로 꺼내듯 쉽게 찾을 수 있다. '디지털 싱글'이라는 것이  대중화되면서 십여 곡으로 꽉꽉 채워진 음반이 아니라 단 한 곡의 신곡으로도 가수는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따금씩 방송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아이들은 소리친다.

”아, 저 노래 무슨무슨 영화나 드라마에 나왔는데, 어느 예능프로의 어떤 장면에 나왔는데!”

옛 노래들을 지나온 삶과 공간으로 기억하는 나와달리, 아이들은 숱한 방송 장면들의 OST로 기억하는 때가 더 많다.


음반 하나를 듣기 위해서는 적어도 일상의 30~40분 이상을 비워둬야 했고, 레코드판의 앞면과 뒷면으로 나뉜 곡들을 순서대로 곱씹으며 판 한 장에 오롯이 담긴 호흡과 분위기를 가만히 음미하던 그때는 이제 정말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던 사이에 주어진 2~3초간의 짧은 공백도 노래의 일부였다는 것을 내 아이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침묵이 흐르는 동안 이미 내 머릿속에는 다음 곡의 전주가 늘 재생되고 있었다.



"희미해지는 지난 추억 속의 그 길을, 이젠 다시 걸어볼 순 없다 하여도~"

소파에 기대어 가만히 황치훈의 '추억 속의 그대'를 흥얼거리는 나를 보며 아홉 살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이 노래 좋아? 왜 좋아?"

"음.... 추억이 많아서 좋아. 엄마 어릴 때 이모랑 놀던 시간들도 많이 생각나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글쎄......."


노래 가사처럼 이젠 다시 그 추억 속으로 돌아갈 순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기억이 자꾸 희미해지는 것 같아 가끔은 서글프다. 그래도 이렇게 옛 노래를 들을 때면 아련했던 그 순간들을 잠깐이나마 음미할 수 있으니 점점 더 음악에 기대게 된다.


옛날 사람인 엄마의 아날로그 감성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딸아이를 위해 언젠가

'어떤날'의 이 노래를 들려줘야겠다. 기타 선율 사이로 조곤조곤 들려오는 노래 가사가 녀석의 마음에 와 닿을 때쯤이면 엄마가 이따금씩 만끽하던 토요일 아침의 낭만을 이해해주겠지.


오래된 친구


내겐 아주 오래된 기타가 있지
내가 그를 찾으면
비틀 술 취한 목소리로 내게 다가와
나 한번 가보지 못한 뽀얀 세상 데리고 가지

내겐 아주 오래된 음악이 있지
내가 그리워지면
저녁 하늘에 노을처럼 붉게 다가와
메말라버린 내 맘을 실컷 울게 해 주지

내겐 아주 오래된 거리가 있지
그 길을 걸으면
희미한 추억을 거리는 내게 몰고 와
표정 없는 내 얼굴에 작은 미소 만들어 주지

나는 아주 오래된 화가를 알지
눈을 내리고 또 비를 내리며
바람으로 여기 찾아와 끝없이 새로운 계절을
거리에 그리고 가지


내겐 아주 오래된 친구가 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