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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콩 May 05. 2020

'격리'의 시대에 읽는 아일랜드 詩

이반 볼랜드의 죽음을 애도하며

며칠 전, 아일랜드의 한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아침부터 여러 신문과 뉴스에서는 이반 볼랜드(Eavan Boland)라는, 내게는 사뭇 생소한 이름의 여성 시인의 부고를 전하며 애도를 표하고 있었다. 때마침, 4월 28일은 아일랜드에서 '시의 날'이었는데, 이곳의 사람들은 그녀가 쓴 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Quarantine'이라는 작품을 유튜브나 자신의 SNS에서 낭송하며 저마다의 마음을 담아 그녀를 추모하기도 하였다.

그 밤 남편과 나는 잠들기 전 나란히 누워 그녀의 시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Quarantine

격리


In the worst hour of the worst season

of the worst year of a whole people

a man set out from the workhouse with his wife.

He was walking — they were both walking — north.

한 민족 전체의 가장 힘든 해에

가장 힘든 계절의 가장 힘든 시간에

한 남자가 아내와 함께 구호소를 떠났다

그는 걸어서, 둘 다 걸어서 북쪽을 향했다


She was sick with famine fever and could not keep up.

He lifted her and put her on his back.

He walked like that west and west and north.

Until at nightfall under freezing stars they arrived.

그녀는 너무 오래 굶어 열이 났고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를 들어 등에 업었다

그렇게 그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그리고 북쪽으로 걸었다

해 질 녘 얼어붙은 별 아래 도착할 때까지


In the morning they were both found dead.

Of cold. Of hunger. Of the toxins of a whole history.

But her feet were held against his breastbone

The last heat of his flesh was his last gift to her.

아침에 그들 둘 다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추위 속에, 굶주림 속에, 역사의 부조리 속에

그러나 그녀의 발은 그의 가슴뼈 위에 있었다

그의 살의 마지막 온기가 그녀에게 준 그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Let no love poem ever come to this threshold.

There is no place here for the inexact

praise of the easy graces and sensuality of the body.

There is only time for this merciless inventory:

어떤 연애시도 여기에 들어오게 하지 말라

여기에 여유로운 우아함과 육체의 관능에 대한

부정확한 찬미를 위한 자리는 없다

단지 이 무자비한 목록을 위한 시간만이 있을 뿐


Their death together in the winter of 1847.

Also what they suffered. How they lived.

And what there is between a man and woman.

And in which darkness it can best be proved.

1847년 겨울의 두 사람의 죽음

또한 그들이 겪은 고통, 그들이 살았던 방식

그리고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있는 것

그리고 어둠 속에서 가장 잘 증명될 수 있는 것


- 이반 볼랜드 <격리> (류시화 옮김)


시가 끝나고 무거운 침묵 속에 남겨진 우리는 가만히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때마침 서로 맞닿아 있는 발의 온기가 천천히 전해지는 것을 느끼며 남편도 나도 '그의 가슴뼈 위에 있었던 그녀의 발'을 떠올렸다. 숨이 멈출 때까지 그가 그녀에게  주고자 했던 그 살의 온기,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그녀가 받은 그의 전부.

단순히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 숭고함과 처절함의 아주 '미세한 부분'이라도 공감하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침묵 속에 서로를 내버려 두었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된 '1847년'은 이미 시인이 맨 처음에 'In the worst hour of the worst season of the worst year of a whole people'이라고 말했듯, 아일랜드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어둡고도 비극적인 시절이다. '아일랜드 대기근(Great Famine)'이라고 불리는 이때에 추위와 배고픔으로 목숨을 잃은 아일랜드인이 백만 명에 이르고, 살기 위해 다른 나라로 이주한 이들 또한 백만 명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아일랜드 인구의 25%가량을 잃게 만든 원인은 '감자 마름병'이었다. 당시 감자는 대부분의 가난한 농민들이 의존하던 주요 식량이었는데, 이것에 지독한 병이 돌아서 먹을 수 없게 되자 농민들은 소득이 없는 것은 물론, 끔찍한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1845년부터 1852년까지 기근이 계속되는 동안 당시 아일랜드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계속 늘어나는 빈민들을 구제하지 못했고, 그나마 감자 외의 다른 작물들은 외국으로 수출되는 상황이라 긴 시간 동안 이 비극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시 속의 남자와 여자는 '구호소(Workhouse)'라는 곳을 나와서 어디론가 걸어간다. 그들이 머물렀던 workhouse는 당시 가난으로 집세를 내지 못해 집을 잃은 사람들을 수용하던 곳이었다. 이 곳은 역사적으로도 굉장히 끔찍하고 악명 높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가족이 함께 들어가더라도 남성과 여성, 2살 이상의 아이와 엄마는 모두 따로따로 떨어져서 서로를 만나지도 못한 채 생활해야 하고. 기근이 심해질수록 이곳에 수용해야 하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사람들을 내쫓기 위해 더 가혹하게 이들을 대했다고 한다. 게다가 너무 많은 이들이 좋지 않은 환경에 모여있다 보니 전염병이 심하게 돌기도 해서 매일 죽어가는 자들은 늘어만 갔다.

구호소로 사용되었던 장소에서 대기근을 주제로 한 작품이 전시된 모습


대기근 시절, 구호소는 모두 수용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수의 빈민들로 넘쳐났다.


남자와 여자는 구호소에 들어간 후 오랜 시간을 격리된 채 떨어져 지냈을 것이다. 처참한 환경 속에서 잘 먹지도 못하던 여자는 지독한 병에 걸리게 되었고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게 되자 두 사람은 목숨을 걸고 구호소를 나가기로 결심한다. 그곳을 떠난 후에야 그들은 격리에서 벗어나 비로소 서로 만날 수 있었고 어쩌면 그들의 고향일지도 모르는 북쪽을 향해 얼어붙은 별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아픈 아내가 내뿜는 열기가 그녀를 업은 그의 등으로 전해지고, 그 미약한 온기에 힘을 얻어 남자는 마지막까지 힘을 내어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끔찍한 추위와 굶주림과 역사의 부조리뿐이었다. 죽음으로 온전히 하나가 될 수가 있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 시절의 수많은 가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일랜드에서 지내면서 나는 시 속에 등장한 두 사람의 얼굴을 어렴풋이 본 것 같았다. 2년 전 이맘때 더블린에서 열렸던 대기근을 주제로 한 전시회에서, 더블린의 가운데를 흐르는 리피강 근처에 세워진 굶주림에 지쳐 서있는 조형물에서,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한 아일랜드 영화 속에서 나는 그들을 보았다. 기근에 허덕이다 쓰러지고 죽어가고 다른 나라로 떠나야 했던 수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은 모두 이반 볼랜드의 시에 등장한 남녀와 같은 얼굴을 가진 이들이었다.

역사 속에서 아이리시들이 목격하고 기록한 '대기근'은 '지옥' 그 자체였다. 굶주림보다 더 무섭고 슬픈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병든 사람들을 피하고, 매장하고, 그럼에도 죽은 사람들의 유해를 발 밑에 딛고 계속 그 위에서 살아내야 하는 잔인한 현실이었으니, 그것이 바로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었을까.

대기근을 주제로 더블린에서 열렸던 ‘Coming home’ 전시회의 작품들


지난해에 한국에서도 개봉했던 <블랙 47>라는 영화 안에는 당시의 참상이 더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블랙 47'은 기근이 가장 심했던 1847년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영국에 우호적이었던 지주들과 집주인들은 집세를 내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의 터전마저 빼앗고 내쫓으려 했다. 남편을 잃고 아이와 단둘이 남은 여인이 집안에서 마지막까지 버티자 무자비한 경찰들은 그 집의 지붕을 뜯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날 한 남자가 그 집을 찾았을 때 발견한 것은 차가운 바닥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얼어붙어있는 여인과 아이였다.


비록 영화이긴 하지만, 가끔씩 <블랙 47>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죽어간 모녀의 잔상이 머릿속을  맴돌곤 한다.


아일랜드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와 같이 이름이 알려진 유명 시인들도 있지만, 이반 볼랜드 역시 그들 못지않게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예술가라는 것을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

1944년에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 영국의 아일랜드 대사로 일했던 아버지를 따라 영국에서 생활하면서 아이리시에게 적대적인 영국인들의 정서를 몸소 체험하였다. 700년이 넘도록 영국의 지배를 받아온 아일랜드는 대기근 이후 1912년부터 치열한 독립운동과 전쟁을 거쳐 마침내 1922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지금의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32개의 아일랜드의 주 가운데 26개만이 독립하고 북아일랜드의 6개 주는 여전히 영국의 땅으로 남게 되어서 한동안 긴장과 갈등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런 역사적 환경 속에서 영국과 아일랜드를 오가며 성장해온 이반 볼랜드는 어릴 적 경험한 소외감과 적대감을 딛고 아이리시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그녀만의 작품 세계를 완성해왔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 속에는 영국이라는 제국에 의해 억압되었던 아일랜드라는 나라의 슬픈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역시 소외되고 억압받으며 살아온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들이 많이 담겨있다.


아일랜드에 와서 지내기 전까지 나는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관련된 영화나 음악, 소설을 접하고 감자로 인한 대기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그저 필요한 지식만큼, 원하는 호기심을 채울 만큼 보고 아는 것에 그쳤을 뿐 더 이상의 관심을 키우지 않았었다.

단순히 여행이 아니라, 이곳에 와서 몸을 내려놓고 몇 해 지내다 보니 참 묘하게도 이들의 생각과 문화에 조금씩 동화되어 갔다. 물론 지금의 아일랜드는 고통에 허덕이던 170여 년 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초록의 나무와 숲으로 뒤덮인 풍성한 자연 속에서 친절하고 느긋해 보이는 사람들은 그때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굴곡이라는 것은 직접 그 시대를 살지 않았어도 어느 민족이건 자연스레 그들의 정서 속에 스며들어 있기 마련이다. 아일랜드라는 곳에서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고 아직도 많은 것들이 낯설지만,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아주 서서히 그들만의 정서에 익숙해져 왔다. 언제부턴가 더블린에서 지내면서 읽는 시 한 편, 소설 하나, 노래 한 곡, 영화 한 편은 이전에 보고 알았던 것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이 선언된 이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잠시 정지된 느낌이지만 여전히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요즘,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평온한 밤에 읽었던 시 한 편은 무척 큰 울림과 여운으로 남아 내 일상을 맴돌고 있다. 한 여성 시인이 남긴 이야기가 한 민족의 역사를 관통하고 인류의 사랑을 아우르고 누군가의 인생을 휘저을 수 있다니, 참으로 아름답고도 신기한 일이다.


한국의 상황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일랜드는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오늘 저녁에도 16명이 사망하고 266명의 확진자가 생겼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매일 똑같은 시간마다 몇 자리의 숫자로 사람들의 생사를 확인하며 한숨짓고 안도하는 아주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가끔은 쓴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아직 이곳에서는 보고 싶은 사람을 가까이서 만날 수 없고, 서로의 온기를 주고받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도, 가고 싶은 장소도 당분간은 더 참아야 한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뒤엉켜 놀 수 없는 나의 아이는 첫 졸업식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척 속상해하고 있다.


하지만 집 앞을 오가며 멀찌감치서 인사하고, 대화방에서 채팅을 나누고 가끔씩 화상통화로 안부를 묻는 내 주변의 아이리시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밝고 명랑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 상황을 풍자하고 재해석한 코미디 동영상과 조크들이 채팅방에 가득하고 가끔씩 전화를 나누는 아이리시들은 늘 나에게 즐거운 일은 없는지 묻고 감사한 얘기들을 끄집어내려고 애쓴다. 나로부터 전해 듣는 한국의 상황에 기뻐하며 우리도 곧 그렇게 될 거라고 걱정 말라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들이 지닌 무한 긍정성이 신기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심각해지자 오히려 의아해졌다. 마치 눈 가리고 아웅 하듯,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순진하고 마냥 밝은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 역시도 그 해맑음에 전염되어 되도록 웃으려 노력하고 이왕이면 감사하고 좋은 것들을 찾아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어쩌면 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이 긍정성은 깜깜한 어둠의 역사를 지나고 고통을 이겨내며 저절로 체득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견뎌내지 못할 날들이었기에 마치 몸속에 장치된 센서등처럼 어두울수록 자동 반응하듯 깜빡깜빡 빛을 내는 것은 아닐까.  

1847년에 이 땅을 뒤엎었던 엄청난 기근과 죽음에 비하면, 죽음만이 서로를 만나게 했던 그들의 서글픈 격리에 비하면, 지금 감수해야 하는 잠깐의 격리와 고통의 시간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고, 웃으며 서로를 다독이고 있는 것이다.


이반 볼랜드가 시의 마지막에 남긴 '어둠 속에서 가장 잘 증명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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