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는 오늘 밤도 쉬이 잠들지 못한다.
30분째 뒤척이는 아이의 침대 옆에 쭈그리고 앉아 나는 이 글을 끄적이고 있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틀어놓은 '수면 음악’이 유유히 방안을 흘러 다닌다. 반복되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 사이로 파도가 스르르 밀려왔다 다시 쏴아 쓸려간다. 달빛이 너울거리는 바닷가 모래 해변에 커다란 피아노가 놓여있고 누군가가 그 앞에 앉아서 다정하게 건반을 누르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파도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내가 먼저 잠이 들지도 모르겠다.
조금 전까지 아이에게 읽어주던 박완서의 <자전거 도둑>을 조용히 발밑으로 내려놓았다. 이따금씩 잠을 못 이룰 때마다 읽어주던 책이다. 며칠 전 열세 살이 된, 키가 나만해진 아이에게 아직도 책을 읽어주고 잠을 재워주는 모양새가 남들 보기엔 조금 남사스러울지도 모르지만, 누가 뭐래도 아이는 그 시간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몰두해서 책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에 이입되어 나도 모르게 감정을 실어 대사를 낭독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잠들기는커녕 아이는 이불 밖으로 반쯤 얼굴을 내밀고 키득키득 웃기 시작한다.
에이, 안 되겠다. 다시 눈 감아.
오늘도 책으로 재우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재빨리 수면 음악으로 모드를 바꾸고 대신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기로 약속한다. 아이가 취침 시간이 이렇게까지 늦어진 데에는 분명 나의 탓도 있다는 소심한 죄책감이 오늘 밤 나를 여기에 붙들어 놓은 것이기도 하니까.
작년 성탄절에 핸드폰을 사준 이후로 한동안 아이는 책을 읽어달라 조르지 않았다. 대신 방문을 닫고 혼자 무언가를 보고, 누군가와 채팅을 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한국의 아이들에 비하면 꽤 늦게 핸드폰을 갖게 된 것이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도 핸드폰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 아일랜드의 반 아이들과 비교하면 그리 늦은 것은 것은 아니다.
핸드폰을 쥐게 되는 순간,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아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는 했지만, 너무나 예상대로 변해가는 모습에 내심 서운했다. 저렇게 크는 게지, 조금씩 품을 떠나는 수순이지, 하며 이해하면서도 마치 강둑에 묶어놓은 뱃줄을 풀어주자마자, 아이가 탄 배가 물살을 따라 스르르 떠내려가는 광경을 어쩌지 못하고 보고만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턴가 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사진에 남기고 있었다. 나보다 앞서 어딘가로 걸어갈 때면 시야에서 점점 작아지는 그 뒷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에 담으며 작아져가는 실루엣을 자꾸만 눈에 넣곤 했다.
홀로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 아직 내게서 이만큼은 가까이 있구나, 안심하다가도 아니 언제 거기까지 멀어졌니, 하는 마음에 덜컹 가슴이 내려앉기도 한다. 내가 붙잡아야 할 분명한 것은 눈 앞에 아직 아이가 보이는 한 나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을 것이고, 설사 점 하나로 작아지더라도 우리가 얇은 끈으로라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아직 한참이나 곁에 있을 아이를 두고, 마치 내일모레 군대라도 보내는 것처럼 미리부터 떨어질 마음의 연습을 하는 이유는 아이가 아닌, 나 때문이다. 엄마의 손을 잡고 쭐래쭐래 따라가던 어린 여자아이가 어느새 엄마 키만큼 자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니 저만큼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언제 엄마의 곁을 스쳐 지났는지도 모르게 이미 그 곁을 떠나버린 것이다.
지금은 평생 엄마, 아빠랑 살 거라고 떠드는 녀석들이지만 때가 되면 그들도 저만치 앞서서 등을 보일 것을 안다.
섬이는 얼마 전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누구에게나 졸업식은 특별하지만,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한 학생들이 갖는 첫 졸업식이었기 때문에 더욱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아마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었다면 학교 선생님들과 부모들은 더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을 것이다. 섬이 역시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아일랜드에서 4년 간 쭈욱 같은 반에서 함께 생활해온 아이들과 이런 식으로 작별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결코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은 학교가 문을 닫기 이틀 전부터 아이는 급성 장염으로 학교를 쉬고 있었다. 이제 좀 몸이 나아져서 등교를 할 수 있게 되자 갑자기 아일랜드의 모든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진 것이다.
아마도 우리 반 애들 중에서 내가 제일 황당할 거야. 나는 얼떨결에 이틀이나 먼저 아이들과 헤어졌잖아.
처음에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좋아하던 녀석도 한 달이 지나고 두 달, 세 달이 되자 종종 신세한탄을 늘어놓았다. 설마 졸업식 때는 만날 수 있겠지 했던 바람도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자, 반은 체념, 반은 무감각한 채로 쓸쓸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인터넷 줌 미팅으로 열린 졸업식에서 선생님들의 축하인사를 듣고 아이들이 그동안 지내온 모습들을 사진으로 보면서 몇몇 아이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미리 우편으로 배달되어온 졸업장을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받는 시늉을 하며 나름 비장한 세리머니를 마치고 나니 뭉클함과 허전함이 뒤엉켜 가슴에 얹히는 듯했다.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1초도 되지 않아 모니터의 줌 미팅 화면 창이 까맣게 꺼져버렸다.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코팅된 졸업장을 뻘쭘하게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더욱 짠했다..
6년 전 어린이집을 졸업하던 날, 외할머니가 손수 만들어오신 꽃다발을 들고 친구들과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온 가족이 우르르 중국집에 몰려갔던 기억이 났다. 그 작던 아이가 어느새 저만큼 커버렸는지, 탕수육에 자장면 곱빼기를 먹어도 헛헛한 속이 쉬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초등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이상해진 세상 속에서 간단하게 치르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는 이 세상만큼이나 섬이 역시, 열세 살 인생 중 가장 큰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몸은 대책 없이 커지고, 이곳저곳은 변하고,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소용돌이치는데 소심하고 불안이 깊은 아이는 그 모든 것을 자그마한 자기 방 안에서 겪어내려 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좀처럼 방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은 아이를 붙잡고 그동안 참 많이도 싸웠다.
왜 그렇게 의욕이 없니
한국 가면 전부 공부만 할 텐데 어떻게 따라잡으려고 그래.
한 번은 너무 답답해서 날을 잡고 녀석의 감정에 대한 대화를 시도해보았다.
가장 불안할 때, 힘든 때가 언제인 것 같아?
그때 어떤 증상이 나타나니
손에 땀이 나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막 화가 나기도 하니?
그럴 땐 어떤 생각을 하면 조금 기분이 나아지니.
대부분 잘 모르겠다고 퉁명스럽게 대꾸하던 아이는 결국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면서도 이유는 절대 말해주지 않았다.
섬이는 어릴 적부터 눈물이 많았다. 아이가 울기 시작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다 달랐지만 울음이 길어지면 결국 같은 이유에 가 닿았다. 마치 세상의 모든 바다가 결국 하나로 이어져있듯 가다 보면 그 중심 어딘가에서 아이가 울고 있었다. 이제 틴에이저가 된 섬이는 그 바다 가운데 섬을 내리고, 더 자주 그곳을 오가려는 지도 모른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쨍하게 좋은 날도 있었고, 비구름에 태풍까지 몰아친 때도 있었다. 겉으로는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이의 속 안에 꿍쳐둔 감정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참 많이 미안하고 아팠다. 이제 몇 달 후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낯선 환경에 아이들을 놓아둬야 하는데, 더 겁이 나는 건 오히려 나인지도 모른다.
외롭고 불안하다는 몇 개의 단어들로 퉁칠 수 없는 아이의 복잡한 마음을 내가 다 헤아릴 수도 없을 테고, 아이가 내게 털어놓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울음을 멈추라고 하지는 않을게. 그보다는 잔잔히 응원하는 방법을 찾아볼 거야. 성능 좋은 이어폰을 너의 귀에 꽂아준 어느 날, 한 시간이 넘도록 밖을 산책하고 돌아온 네 얼굴이 참 평온해 보였거든. 나의 눈물에도 그런 약이 가끔 필요했던 것 같아.
생각해보니, 아이가 쉬이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차고 넘치는 것 같다. 아마도 수많은 그 이유 중 무언가를 딱 끄집어내지 못하고 망설이느라 뒤척이는 밤이 더 잦아지는 지도 모르겠다.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네가 쓸쓸해 보이는 밤이면 조금 더 웃을 수 있게 책을 종종 읽어주고 음악을 틀어놓고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것이 전부겠지만, 이제 이것도 그만 하게 되는 날이 오겠지.
어둠 사이로 아이의 조용한 숨소리가 밀려온다. 나름 고단했던지 코 고는 소리가 서서히 파도 소리를 덮는다.
이제 음악을 끄고 나도 자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