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완벽하지 않아서 마음이 끌렸다.
워낙 잘 웃고 어린 나이다 보니
자그만 실수를 하게 되면은
주변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걱정이 되었다.
아무 표정 없이
묵묵히 있고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나이와 맞지 않는
두 어깨의 책임감이
무겁게 보였다.
첫사랑을 떠올리면
나무에서 두 발을 교차하며
대롱대롱 즐겁게 앉아있었는데
무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모습은
어울리지 않았다.
첫사랑에게
마음을 전하기도
알아차리라는 것도
안 하고 싶었다.
어떠한 제스처조차
하기 싫었는데
그 이유는
결론을 알고 있었다.
너무나 다른 사람이기에
직감으로나
이루어지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렇게 어깨가
무거운 얼굴을 보니
나무 밑에서 올려만 보다가
저 사람의 나무가 되고 싶어졌다.
우유에 말아먹으면
호랑이 기운이 나는 시리얼을
언제나 웃고 있는
스펀지밥으로 포장을 했다.
색도화지와 색종이를 자르고
그림이라곤 전혀 실력이 없었지만
몇 시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다.
시리얼만 달랑 주기엔 허전해 보여서
걸그룹이 모델로 한 비타민씨를
한 알 한 알,
색종이로 만든 하트에 넣었다.
쌍팔년도에는 학종이가 있었다면
그땐, 비타민씨가 들은 하트가 있었다.
이틀 내내 밤을 새기도 하며
엄지손톱의 옆이
파일정도로 접었다
웃게 해주고 싶었다
밤을 새워서 그런지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첫사랑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첫사랑오빠는 친구와 나왔는데
정성스러운 선물을 전달하려면
불러야 하는데
입에서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입에서 “어버버버저저”라고
나올 것만 같았다.
“어버버버저저”라고 말하느니
차라리 안 하는 편이 나은 선택이었지만
준비해 둔 스펀지밥과 비타민은 전해야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첫사랑 오빠가 건물에서 나와서
묵언수행하고 있는 내 앞에 섰다!
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거 같았다.
내 앞에서 눈을 마주치며
웃고 있는 그의 눈을 피해
아래로 떨궜다.
그땐 몰랐는데
마음을 숨긴다고 숨겨도
줄줄 새어나가
누가 봐도 좋아하고 있다고!
새침한 얼굴로 마주 보지도 못하고
쓸데없는 이상한 자존심을 부리면
떨리는 마음이 안 보일줄 알았다.
선물을 내밀으니
첫사랑은 당황하며 받았다.
갑작스럽지,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뭔지도 모르고 나 같아도 당황스러웠다.
말없이 내밀었는데
말없이 받아들여주니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행동이나마 표현을 하고 싶었는지
오른손을 내밀었다.
첫사랑 오빠가 악수를 해주자,
너무 기쁜 나머지 내밀었던 오빠의
따뜻한 잡은 손에 나의 왼손을 덮어버렸다.
기쁨보다는 감사함에 더 가까웠다.
지금 보니 웃기고 슬프지만
숨이 막히게 떨리는 순간이었다.
손끝까지 그에게 전해졌을까?
또 한 번 당황한 첫사랑은 웃음을 보였고
건물에서 같이 나온
첫사랑오빠의 친구는
잡아둔 택시에서
빨리 오라고 부르는데도 안 가고 있었다.
‘무유야! 말을 좀 하라고…’
여전히 말이 나오지 않았고
민망해진 첫사랑은 택시로 향하면서
뒤를 계속 돌아보며
친구와 클럽으로 떠났다.
부담스러워할까 봐
길게 쓰고 싶은 편지보다는
조그만 쪽지를 같이 넣어뒀다.
to. 첫사랑 5 빵그림,
초등학생도 아니고
오빠를 숫자 5와 빵그림으로 대신했다.
쪽지의 첫 글인 to부터 보고
빵빵 웃으라고…
다른 한 편의 마음에서는
이것밖에 해줄 수 없는 내가 비참했다.
비싼 옷, 비싼 선물이 아니라
고작 시리얼이라니,
보잘것없는 21살이 부끄러웠다.
그저 나무 밑에서 지켜만 보고 싶었는데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고
언제나 쉴 수 있는
첫사랑의 나무가 되고 싶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던
그 이후로
분명 나처럼 떨리고
설렜던 첫사랑오빠의 감정도 느껴졌는데
확신할 수 없지만
자꾸 시뮬레이션이 재생되어
빨개진 얼굴과
하루 종일 웃고 있는
나사 빠진 사람이 되어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