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갱년기 보이, 갱보라 불린다

by 도시 탐험가

나는 어릴 적 친구들이 모인 대화방에서 이름 대신 별명으로 불린다. ‘갱보’라고. 외국의 어느 유명한 시인을 떠오르게 하지만 그냥 어떤 두 단어에서 앞 단어만을 따온 줄임말이다. 갱년기 보이. 줄여서 갱보라고 불리는 거다.


2017년 여름 즈음 이 별명이 내게 붙었다. 내 모습이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걸 친구들이 느꼈다고 했다. 평소와 다르게 감상적인 표현을 한다거나, 갑자기 짜증을 낸다거나, 혹은 친구들의 농담에 까칠하게 반응한다거나. 그런 나를 보고 친구들은 대화방에서 대놓고 흉을 봤다.


“저 녀석 오춘기를 겪는 건가?”

“오춘기는 무슨. 갱년기를 겪는 게지.”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나를 ‘갱년기 보이’라고 놀렸고, 한 친구가 앞글자만 따서 ‘갱보’라 불렀다. 그러다가 공식적인 내 별명이 되어버린 거다.


아무튼, 난 친구들이 느낄 정도로 달라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계기가 있었다. 2017년 6월, 난 16년을 함께 산 반려견을 떠나 보내고 큰 상실감을 겪던 중이었다. 그런 내 심정을 녹인 글들을 SNS와 친구들이 모인 대화방에다 올리곤 했다.


그 전까지 난 그곳에 정책이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주로 올렸었는데 갑자기 자연과 생명을 노래하니까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쓰고 싶은 글을 썼고 올릴 수 있는 곳에는 다 올렸다.


나는 먼저 내 반려견과 함께한 16년을 글로 정리했다. 문학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소설 형식을 빌려서 단편 10여 편을 썼다. 그 글들을 어느 인터넷 글 사이트에 올려서 잔잔한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 글들을 쓰면서 머리로만 생각했던 이야기를 글로 완성해 가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난 사랑하던 반려견이 떠나 허전해진 마음을 글로 차곡차곡 채워 나갔다. 서서히 치유되는 것도 느꼈다. 녀석이 떠난 자리는 무척 컸지만 어느덧 글쓰기가 그 자리를 메웠다.


그즈음 내가 사는 경기도 성남의 탄천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반려견과 16년을 함께 걷던 그 탄천을 혼자 걷게 된 후였다. 처음에는 내 손에 전해지던 목줄의 반동이 없어서 어색했다. 자연스레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았다. 강아지 궁둥이만 쫓던 눈에 다른 생명이 눈에 들어왔다. 탄천과 나무와 물새들.


탄천을 이십 년 가까이 다녔지만 처음 보는 광경처럼 놀라웠다. 보기보다 맑은 물에는 커다란 잉어들이 돌아다녔고 물억새와 버드나무는 바람 따라 춤추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물새들이 많아서 눈이 즐거웠다.


처음에는 몸통이 작은 건 오리요 큰 건 백로인 줄 알았는데 생긴 것만큼이나 다양한 종들이 살고 있었다.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쇠백로, 중백로, 왜가리…. 호기심이 생겨서 새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사서 공부도 하게 되었다.

▲ 학익진 탄천의 흰뺨검둥오리들. 오리들이 나란히 가다가 브이자 대형이 된 모습을 두고 "학익진"을 펼쳤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었다. ⓒ 강대호


그렇게 찍은 물새들 사진에다 내 해설 혹은 해석을 달아서 SNS에 올렸다. 예를 들자면 ‘오리들이 일자진에서 학익진을 펼치고 있네요.’라면서. 그런 내 글을 보고 좋다는, 재미있다는 반응이 나를 탄천과 더 가깝게 만들었다. 핸드폰 카메라로는 부족해서 카메라도 하나 구했다. 나중에는 망원렌즈까지 구했다.


이렇듯 어떤 계기가 이끈 상황들이 내게 글에 대한 눈을 뜨게 했다. (내 반려견) 비니와의 기억을 짧은 소설로 쓴 것이 글의 구조를 익히는 계기가 되었다면 탄천의 물새를 SNS에 올리는 것은 자연 관찰과 기록의 묘미를 알게 된 계기가 된 거다. 그런 내 글을 보고 친구들은 내가 이상하게 변해간다고 염려하게 된 거였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난 ‘갱보’라는 멋진 별명을 얻게 되었다. 물론, 친구들에게는 내가 변해가는 모습을 놀리려는 마음도 컸을 거다. 하지만 내가 꾸준하게, 진지하게 그런 글들을 쓰니까 수필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조언을 해 주는 친구도 있었다. 잘만 정리하면 수필이 될 것도 같다면서.


주변의 조언을 들으며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 좋기도 했지만 조금은 두려웠다. 그때까지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나가는, 글을 쓰고 읽는 내가 만족하고 마는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었던 거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니 가볍게 쓸 일이 아니었다.


월간문학.jpg ▲ 수필가 등단 2018년 월간문학 3월호에 실린 신인작품상 당선 소감 ⓒ 강대호


아무튼, 나는 제대로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수필에 도전해 보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우선 수필 개론서들이 강조한 글 소재와 주제, 구조와 문체 등을 공부했고, 수필 문예지들도 들춰 보면서 등단작들과 그 심사평들을 연구했다. 그렇게 쓴 작품으로 난 2018년 ‘월간문학’ 3월호에서 신인작품상을 받으며 수필가로 등단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친구들이 축하하는 의미에서 갱보라는 별명에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갱보(鏗普)’라고. ‘금옥 소리’, 혹은 ‘거문고가 울리는 소리’라는 뜻을 가진 ‘갱(鏗)’과 ‘널리 퍼지다’는 뜻을 가진 ‘보(普)’를 합친 거다.


“갱보 선생. 거문고 소리처럼 깊은 글을 많이 써서 퍼뜨려 주시게.”


친구들이 붙여준 우아한 의미도 좋지만, 원래 의미인 ‘갱년기 보이’도 난 맘에 든다. 어쩌면 ‘갱년기 즈음의 철부지 아저씨’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벽을 뛰어넘고자 하는 힘찬 모습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 또래에게 갱년기는 아마도 드러내기 힘든 자화상일 거다. 특히 남자들에게는. 여성에게는 대표적인 증상이라도 있지만, 남성에게는 콕 집어 얘기할 만한 증상이 없기도 하고, 있더라도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 증상도 남자다움, 남편다움, 아비다움이 없어진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마 숨기고 싶어질 거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남성이 그러한 증상을 스트레스로 생각한다거나, 그 나이에 따르는 당연한 변화라 생각하곤 그냥 넘긴다고 한다. 그러다 감정 표현도 잘 못 하게 되고 점점 움츠러들게도 되고.


삼성서울병원 등 여러 병원의 건강칼럼에 의하면 신체적으로 변화가 오는 우리 또래 남성들에게는 “건강하고 활동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주위 사람들과 자기 생활이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자주 갖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을 한다.


나는 글쓰기도 대화라고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자기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그 글을 읽는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게 되는 거니까. 물론 처음부터 내의 글을 남에게 보여주기는 부끄러웠다. 마치 옷 벗고 사람들 앞에 선 느낌이니까.


하지만 난 내가 쓴 글을 들여다보며 미처 몰랐던 내 마음을 깨닫게 된 게 소중했다. 거기서 알게 된 내 마음을 난 외면하지 않았다. 갱년기는 모든 사람에게 겪는 통과의례이지만 어떻게 넘어가냐에 따라서 남은 생이 결정될 수도 있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소년이 된 듯 활기차게 도전하면서 늙어가고 싶어졌다.


나는 ‘갱년기 보이’라는 말에서 움츠리기보다는 그 벽을 뛰어넘고자 하는 어떤 힘을 느낀다.


이 책은 갱년기를 소년처럼 살고 싶은 한 50대 남자가 마음의 소리를 받아 적어 내려간 이야기들이다. 탄천에서 물새들이 사는 이야기들, 종이에 인쇄된 책을 보면 생각나는 이야기들, 주거 환경에 관한 이야기들, 그리고 50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소소하지만 삶의 성찰을 얻어 가는 갱년기 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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