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장애가 있다면, 예를 들어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은 그림을 그릴수도 춤을 배울수도 없는 것일까? 아름다움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아름다움을 그리는지 어떻게 아름다움을 추는지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이 궁금하지 않은가. 언제나 예술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곳에 존재해왔다.
칠흙같은 어둠만이 내 세상인 줄 알았던 나에게 다가온 그, 마지막 순간에 그가 내게 돌아와 함께 생을 마칠 수 있는 것은 내 인생에 큰 축복이다. 언젠가 해와 달이 만나는 것처럼 반드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 오듯이, 우리가 하늘에서 만나게 되는 날 힘들었던 나를 다시 안아주기를...
내게 봄처럼 찾아와, 봄과 같은 사랑이 된 그에게
나는 국적이 달라 혈통이 다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다. 나는 재능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실제로 나의 부모님은 평범한 삶을 살아오셨다. 그래서 난 재능이 아닌, 노력으로 성공한 삶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다. 비록 내가 어릴적부터 척추성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지만, 나는 기죽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기죽지 않으려 애썼다.
우리 마을에 있는 지바센 예술학교는 여성이 입학하기 어려운, 보수적 남성주의관이 뚜렷한 학교였다. 하지만 입학하기 어려울 뿐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이 학교를 나온 선배 여성 예술가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난 여성이면서 동시에 장애인이라는 더욱더 불리한 조건을 갖추었을 뿐이다. 하지만 내 집념은 나를 놓지 않았고, 마침내 지바센 예술학교에 최초 여성장애인으로서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게, 우리가 재력이 있는 집안도 아니고 예술가 집안도 아니니 평범하게 공부할 수 있는 의대를 항상 강력히 말씀하셨다. 의대는 돈이 안드는가? 나는 반문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난 중간에 인문계로 전학을 갈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강요에 못이긴 공부를 열심히 하여 파리에 있는 한 의대에 가게 되었다. 다만 틈틈이 미술 과외를 통해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나아갔다. 나에게 과외를 받는 제자 '수니즈'는 내가 가진 그림 능력에 대해 그리고 나의 존재에 대해 동경하고 정말 부러워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나의 진한 눈썹을 신기하게 바라보면서도 좋아해주었다. 이 때 처음으로 난 나의 일자 같은 이 진한 눈썹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나의 미술적 재능에 대해서도 확신을 다져 나갔다.
수니즈의 마지막 수업을 해주러 가는 버스 안의 길이었다. 평소처럼 앞 좌석 노부부의 주고받는 이야기, 반대쪽에는 책을 읽고 있는 한 청년, 울퉁불퉁한 길임에도 스무스하게 운전을 하시는 운전기사 아저씨까지... Boketto란 말처럼 평화롭게 무념무상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근데 무언가가 이상했다. 저 멀리서 진작에 멈췄어야 하는 전차가 점점 우리 버스를 향해, 아니 정확히는 내 쪽에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다가온 전차는, 결국 내 눈 앞까지 도달했고 나는 기억을 잃었다. 그렇게 나의 척추와 허리는 부러지고, 버스의 쇠난간은 나의 배를 뚫고 들어가 왼쪽 옆구리를 관통하여 질을 통과해 나오는 끔찍한 일이... 하필이면 나에게, 나에게 벌어졌다.
나의 인생은 처참히 무너졌다. 어릴적부터 악조건 속에서도 기를 쓰고 노력하여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려왔건만, 이 상처와 고통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상상하기조차 꺼려지는 저주와 같았다. 그동안 버텨왔던 나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원망스러웠다. 신이라도 있었으면 그 신을 저주하였다. 왜 하필 나에게만 이렇게 큰 고통을 주시는 걸까. 병원에서도 하염없이 무념무상으로 먼 곳만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니즈가 내 병문안을 왔다. 내가 수업 중에 그렸었던 그림을 액자에 끼워 병문안 선물로 가져온 것이다. 이게 나의 첫 번째 작품이 된 보티첼리풍의 자화상이었다.
수니즈의 방문이 나의 건강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내 마음에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씨앗을 심어주었다. 내가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유일한 희망을...
덕분에 난 차츰차츰 나의 관심사를 그림에 쏟기 시작했다. 병실에서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세상이 돌아가는 뉴스도 신문과 잡지를 통해 듣기 시작했다. 절망 속에서 내려놓고 싶었던 끈을 부여잡고 다시금 하나하나, 나는 그려 나아가기 시작했다.
과거 지바센 예술학교에서 난 독보적인 나만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동급생 무리에 굳이 어울리지 않아도 난 나의 학교생활을 평범하고 만족스럽게 흘려보냈다. 나는 내 자신과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에 대한 것만 관심이 많았지, 사람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여느날처럼 점심시간이 다가와, 소소히 도시락을 꺼내서 내 자리에서 점심 보따리를 풀었다. 그런데 하필 포크와 나이프가 없었다. 바보같이 엄마가 챙겨준 포크와 나이프 말고, 엄마가 아끼던 예쁜 무늬가 새겨진 포크와 나이프를 별도로 챙기려고 기존의 포크와 나이프를 빼놓았었다. 문제는 급하게 화장실을 들른 게 화근이었다. 버스가 곧 올 시간인 걸 확인하고, 포크와 나이프가 빠진 채 다시 묶여진 보따리를 아무생각없이 그대로 들고 엄마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기존 포크와 나이프를 별도로 내가 뺀 줄 모르고 내가 화장실에 있는 동안 다시 묶어주셨던 것이었다.
바보 같은 나... 하필 친한 친구도 없는 내가, 포크와 나이프를 누구에게 빌려 점심을 먹을 수 있겠는가. 난 당황하여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도시락 뚜껑을 덮고 그대로 점심 보따리를 묶기 시작했다. 그냥 깔끔하게 오늘은 안먹는 게 내가 다른 친구들에게 빌려가며 체면을 구기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 때 옆에서 혼자 먹고 있던 '아리아스'가 내 쪽을 힐끔 쳐다보더니 자신의 포크 하나를 말없이 내게 건넸다. 보니까 아리아스 도시락에도 이미 포크 하나가 더 놓여 있었다. 원래 포크를 두 개 쓰는 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덜 미안할 수 있어서 아리아스가 건네준 포크를 덮석 받았다. 그리고 말 없이 우리 둘은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우리는 침묵 속에 각자의 점심을 먹었고, 침묵의 기간만큼 내 마음은 아리아스를 향해 뜨거운 도시락이 되어 갔다.
난 병실에서 다시 그림을 그리려하니, 문득 옛날 아리아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정확히는 보고 싶었다. 이러한 내 마음을 이제라도 고백하고 싶었다. 억울했다. 다치기 전에 고백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엉망인 상태라서 고백하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나의 모습을 과연 누가 좋아해줄 수 있을까...
그래도 난 아리아스를 생각하며 그림을 계속 그렸다. 가끔은 하늘이 내 편이었던가, 그러던 와중에 옛 선생님으로부터 기쁜 소식을 받았다. 당시 반장을 포함한 동급생 몇몇이 병문안을 온다는 것이다. 그 반장이 바로 아리아스다. 특별히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없었던 나인데... 때때로 하늘은 나를 완전히 버리시진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난 아리아스가 병문안을 오면, 그림 선물을 통해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병실에서 매 번 수술 치료를 반복해서 받을 때마다 난 죽을 것 같이 너무 아파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지만, 아리아스의 얼굴을 떠올리며 참았다. 고통의 눈물은 쉴새 없이 흘렀고 생명을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나의 눈동자와 입술은 아직 희망에 차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랑으로 차 있었기에, 나는 이 고통을 참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내게 왔다.
난 이 선물을 어떻게 전해줄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같은 동급생들에게 나의 마음을 들키긴 싫었다. 그래서 내가 한 선택은 오는 친구들 모두에게 그림을 선물했다. 물론 아리아스에게 줄 그림은 더 내 마음을 담았고 추가하여 편지에 글귀까지 새겨 넣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첫사랑 이야기다. 원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병원에서 접한 신문과 잡지는 대개 정치적인 내용이 많았다. 특히 여기저기서 혁명이 일어나, 이 주제로 대서특필한 기사들이 많았다. 나는 그 기사들을 하나하나 접하게 되었고, 점점 나의 정치적 색깔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림 이후로 내게 일어난 두번째 변화였다. 그렇게 난 공산당원 소속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도 다양한 예술가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나의 회복은 점점 완치를 향해 나아갔고,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짝사랑의 아픔도 겪었고, 정말 뼈를 깎는 듯한 병원 생활을 겪었다보니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든 이보다 지옥은 없을것이라 자부하며 더 자신감있게 나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처음으로 나의 그림을 인정해주는 한 선배를 만났다. 그렇게 난 '디에고'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