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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Hong

"우리들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들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들어 있어.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 라는 데미안의 말이, 그리고 나의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나에겐 특별한 여인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성품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반듯하여 주변 지인들로부터 존경과 관심을 듬뿍 받는 대상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 주변인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속삭이는 듯한 어조 속에서도 무게감이 있고 전달력이 뛰어났으며, 외적으로도 자연스레 풍기는 선한 아름다움에 나는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작은 강연이 열릴 때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하여 그녀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그녀의 제스쳐와 하나하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녀를 소소히 사모했다.



그렇게 몇 년을 반복했지만, 나는 짝사랑 그 이상으로 발전시킬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자 팬으로서 물심양면 응원했지만, 정작 내 스스로의 발전에는 관심이 없었고 사회적 위치나 부유한 집안도 아니었기에 그녀가 나를 좋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나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그녀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어느새 지바센 예술학교를 졸업한 지 꽤 흘렀기에, 나에게도 이제는 생계를 꾸려가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부담감이 서서히 나의 목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내 인생에 대해 방관하고 회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집의 한 공간을 온전히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업실로 하나하나 청소하며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우선 작업에 필요없는 물건들을 모두 빼내고, 온전히 미술과 관련된 용품들만 하나하나 배치시켰다. 그리고 햇빛가림막으로 커튼을 구입하고, 작업 능률을 올리기 위해 화분을 사서 편안한 작업실 환경을 하나하나씩 꾸며 나아갔다. 그리고 목표를 세웠다. 처음부터 거창한 것 보다는 올해 안에 그림을 그려서 3점만 파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그림을 그릴지 나는 고민해야 했다. 오랫동안 고민해보아도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대중의 수요로 어떤 장르의 그림이 팔리는지 그 트렌드를 몇몇 예술가 친구들을 통해 조사하고, 그 중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판별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내가 가장 진심을 담아 그릴 수 있는 '낭만'을 그리기로 했다. 그래서 그 첫 작품은 나의 첫사랑인 그녀를 그리는 인물화로 낙점했다.



막상 그녀에 대한 마음을 하나의 도화지 화폭에 담으려 하니 이또한 쉽지 않았다. 스케치로만 수백번을 지웠다 그렸다를 반복하고 이주일이 넘도록 스케치하나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바센 예술학교에서는 그토록 칭찬을 들으며 좋은 학점으로 졸업까지 했는데 겨우 인물화 하나를 왜 마음처럼 그리지 못할까. 어느 오후, 연필을 내려놓고 따뜻한 커피를 머그잔에 담아 작업실의 커튼을 치고 햇살과 함께 커피를 입에 머금으며 불완성된 스케치를 다시 곰곰이 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놀라 머그잔을 놓치고 말았다. 쩅그랑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의 초점은 나의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의 낭만을 담고 나의 사랑을 담기 위해 그렸던 그녀의 인물화에서, 베아트리체가 아닌 데미안을 보았고 그리고 내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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