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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dade

by Andrew Hong

나의 작품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외로움에 따뜻함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달래주고 그 외로움에 동행하여 치유의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꿈과 행복을 누릴 수 없더라도 반드시 지키고 싶은 것은 예술가로서 살아가겠다는 가슴 속 한 켠 나만의 빛이다.


나의 낭만은 항상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사랑을 갈구할 것이다. 언젠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흐린 구름과 장마도 다시 마주할 것이다. 하지만 부딪히고 살아낼 것이다. 확신은 없다. 그래도 한 발 한 발 걸어가면, 그렇게 걷다 보면 밤하늘을 수놓은 별과 가깝게 마주하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의 낭만이 이루어지는 한 순간이라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예술이 당신의 외로움에 동행할 수 있다면, 나는 이러한 낭만에 만족할 것이다.


나는 왕족, 귀족과 같은 혈통은 아니었지만 사업 수완 능력이 뛰어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분에 나름 부유하게 살아왔다. 그래서 신분보다도 더 강력한 돈의 힘이 무엇인지 어릴 때부터 알 수 있었고, 아버지가 21살 차이가 나는 어머니와의 결혼이 가능했던 이유도 이 힘이라고 생각해왔다. 우리는 어머니의 고향인 지바센 마을에서 지냈으며 나는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숲이 우거지고 잔잔하며, 평온한 분위기 가운데 지바센 예술학교라는 곳에서 마음껏 교육도 받았다. 특히 남다른 글쓰기 능력으로, 시를 잘쓰는 실비아와 함께 선생님들의 칭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이 사실에 아버지와 어머니도 내심 마음속에 뿌듯해 하시는 것이 난 느껴졌고, 부모님을 만족시키고 부모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느낌은 내게 행복감을 주었다.



내겐 3명의 동생이 있었다. 남동생 2명과, 여동생 1명. 바쁘셔서 집에 거의 안 계시는 엄한 아버지와, 젊고 여린 어머니 밑에서 난 내 동생들을 챙겨야하는 가장의 임무를 자연스레 맡았다. 이또한 부모님께 칭찬을 받기 위해서 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한 명 한 명 동생들 모두, 내게는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보물같은 동생들이었다. 모든 가족이 자신의 동생들을 사랑하겠지만, 나는 유독 내가 직접 돌봐온 동생들이었기에 더 크게 와닿고 진심으로 사랑했다.



어느 날 어린 나이의 남동생 두 명이 하루 차이로 심한 열병에 걸리더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난 어머니와 어떻게든 살리려 애써보았다. 아버지는 사업차 출장중이었기에, 어머니와 한 명 씩 동생들을 안고 급히 병원으로 달렸다. 의사선생님은 원인을 알 수 없어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펑펑 울기 시작했고, 나도 울고 싶었지만 나만큼은 참아야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죽을 한두숟갈 강제로 먹이고, 따뜻한 수건으로 온 몸을 닦아주고, 방 안을 최대한 따듯하게 하고 이불을 덮어주며 하루 빨리 낫기를 옆에서 밤새 기도했다. 엄마가 잠든 순간까지도 나는 홀로 남아 동생들을 지켰다. 그러나 나의 사랑하는 남동생들은 모두 나의 기도가 무색하게 그렇게 말없이 세상을 떠났다.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이 일은 자그마치 10살도 안된 나에게 벌어졌다.



이때부터 나에게는 채워질 수 없는 결핍이 생겨난 것 같다. 나는 문학만으로 내가 동생들에게 주고받았던 사랑의 결핍을 결코 충족시킬 수 없었다. 내겐 사랑이 필요했고, 나의 사랑을 줄 대상이 필요했다. 마치 그게 내 삶의 원동력이자 근원이었던 것처럼 나는 사랑을 갈구하고 싶었다. 상실에 대한 슬픔을 누군가로부터 위로 받고 채우고 싶었다.



우리 집 건너편에는 그렌트헨과 클레어라는 예술학교 선배들이 살고 있었다. 특히 그렌트헨은 나와 동생들을 예뻐해주며, 종종 우리 집에 먹을 것들을 갖다 주기도 했다. 동생들이 죽은 후에 그녀는 나를 걱정하며 우리 집에 더 많이 방문해주었다. 올 때 마다 특별한 말을 내게 건네진 않았지만, 각종 과일들을 한 개 씩 가져다주며 나의 슬픔을 같이 해주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상처받아 얼어있던 나의 마음이 그녀의 따뜻함으로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눈에는 그렌트헨의 존재는 빛이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존재로 보였다. 그녀는 차분했다. 고운 부모님 곁에서 자란 덕분인지 정갈한 머릿결에, 틔는것보다는 연하고 고운 색깔의 옷을 주로 입었다. 가끔 나를 데리고 같이 동네 산책을 걸을 때면, 걸음걸이 또한 빠르지 않고 여유가 있으며 멀리서 봐도 바로 옆에서 봐도 광채가 나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나는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연상의 누나지만, 나이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싶었고, 근원적으로는 나의 결핍을 사랑을 통해 채우고 싶었다.



어느 주말 오후 부모님이 잠시 자리를 비울 동안 그렌트헨이 우리 집에 방문했다. 이번엔 찐 고구마를 가져다준 것이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만 지내다가 정신을 조금 추스르고 주말에 한창 글쓰기에 매달리던 나는, 그렌트헨의 등장에 저절로 피로가 풀리고 몸의 기운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고구마 바구니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의자에 앉자,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따뜻한 차를 내어주며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오늘도 다정다감했고, 나의 마음은 계속 그녀에게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난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고백했다. 고백하려고는 했지만 이렇게 내 자신이 즉흥적일줄은 몰랐다. 근데 그녀의 반응은 나의 불안한 느낌과 일치했다. 그녀는 아이를 다루듯 내게 조심스레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오히려 그녀보다 키가 작은 나를 안아주었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난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나는 남자가 아님을, 남자가 될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렇게 다시금 상처를 입고 어렸던 나는 홧김에 오기로 예술학교에서 글쓰기 따위는 집어치우고 전학하여 공부에 올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잘나가는 아버지였기에 학교 문제는 금방 해결되었고, 그렇게 공부하여 법학과를 진학 및 졸업하고 변호사 사무소 견습생으로 새 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난 내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결코 어릴적 겪은 결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마음 한켠의 불안정함이 평생동안 가시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그리고 이에 대한 분출은 친구의 약혼자인 '샤로테'를 사랑해버리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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