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2010 이상 문학상 대상 박민규 <아침의 문>을 읽고...

by 박지아피디

우연히 친구의 작업실에서 2010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발견했다. 어느 브런치 작가님이 박민규 소설가에 대해 언급한 글을 읽고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잊고 있었는데 친구의 작업실에 떡하니 그 책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해야 되나? 책이 나를 끌어당긴 기분이 들었다. 과연 소설의 내용 또한 그러했다.


먼저 <아침의 문>이라는 제목의 대상 수상작을 읽었다. 그리고 수상 작가 박민규가 선정한 자선 대표작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를 연달아 읽었다. 우선 아침의 문은 제목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정말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는 제목이어서 입이 떡 벌어졌다.


아침은 희망 문은 죽음이기도 하고 탄생이기도 원의 다른 이름이었다. 죽음으로 가는 문 그리고 탄생의 길목을 터주는 문. 그 두 개의 문은 동시에 열리지만 아침을 맞이하면서 희망이라는 하나의 광장에서 합체된다. 죽으려는 자와 태어나려는 생명이 동시에 한 공간에 있게 된다면 탄생이 더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가늠해 본다.


참으로 지긋지긋하게 비루한 인생들이 교차된다. 책을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절망적이다. 작가는 인간의 삶 자체를 절망으로 묘사하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것 같다. 낯선 이들과의 동반자살이나 폭력적인 임신을 당한 여자의 야생 동물 같은 출산이 두 축을 이루다가 간당간당한 생명의 탄생으로 인해 밤에서 아침을 맞는 이야기의 서사가 엄청나다. 괴물 장사가 태산을 끌고 가는 굉음이 들리는 듯하다. 머리끄덩이를 잡아채서 아스팔트 위로 질질 끌고가다가 마지막에 촉촉한 잔디밭에 툭 던져놓고 사라지는 결말이랄까... 인간의 절망과 비루함을 표현하는 데는 이만한 작가가 없을 듯하다.


다음에 이어지는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또한 마찬가지다. 1년 동안 차를 한대도 팔지 못한 50세 계약직 영업 사원의 이야기다. 굳이 말 안 해도 얼마나 고되고 짠한 삶을 살아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자신의 처절함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어느 날 집안의 물건들을 부수다가 아내의 것으로 보이는 싸구려 딜도를 발견한다. 그래 여기까지는 소설가의 상상으로 얼만든지 생각해낼 수 있는 얘기다. 마음을 진정시켜 보지만 뒤가 그게 아니다.


이건 뭐 기생충에서 가정부가 다시 출연한 다음부터 장르가 바뀌듯이 주인공은 차를 팔러 화성에 간다. 경기도 화성이 아니다. 수성 목성 그런 화성이다. 화성인의 성적인 충족을 위해 본인 스스로가 커다란 딜도가 되어준다. 그리고 차를 판 계약서를 들고 지구로 돌아온다.


이게 뭐야? 이렇게까지 얘기가 벙쪄도 되는 건가? 이런 게 소설이야? 이 정도로 상상의 나래를 펴도 된다는 거지? 그렇단말이지? 이 한 편의 단편소설이 내 머리를 도끼질하는 데 성공했다. 내가 생각하던 이야기의 범위와 경계를 비웃듯이 찢어발겼다. 소설은 네가 생각하는 그 따위 얄팍한 말장난이 아니야. 용이 용트림하듯이 지하 천 미터도 내려갔다가 우주를 싹 다 들쑤시고 다니며 천지 아래위 할 거 없이 지랄발광을 해도 될까 말까야. 알았어?라고 말해준다.

휴우~ 알았다고요 알았으니 맘 좀 진정시킬게요 박민규 소설가님! 이제 어떻게까지 머리를 찢어야 되는지 알겠다고요. 아무튼 아무도 만나지 않고 손해보고 경조사 쌩까고 강원도 산골 작업실에서 휠체어 앉아 별을 보며 오로지 (창작의 고통 따위는 없다고 하셨으니 다행인) 글쓰기만 하신 박민규 작가님 그 수고 덕에 저는 방금 도끼로 머리가 쪼개졌네요. 작가의 임무를 다하셨어요.


작가님은 지구에서 글 쓰는 일은 아무 일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적어도 지구 속 작은 나라 한국에서만큼은 소설의 새로운 길을 터주셨네요. 불도저로 밀림을 밀어제끼듯 아주 터프한 방식으로요.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가서 두통약 좀 먹을게요. 머리가 쪼개져서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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