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동-서, 옛것과 새것
파리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도시 구성 원리 3가지가 있다.
물론 3가지, 5가지, 7가지... 원하는 대로 늘려갈 수 있겠지만,
중요하게 생각되는 3가지 : 달팽이 원리, 동-서 권력, 옛것과 새것의 공존
'달팽이 원리'는 파리의 확장을 보여주는 첫 번째 열쇠다.
파리는 시테섬에서 시작한다. 시테섬은 로마가 파리를 점령하고 요새(군사적 방어시설 )와 성을 짓던 것이 300년 경부터다. 당시의 도시 이름은 '루테스'였고, 루테스에 살고 있던 종족의 이름이 '파리지'였다.
루테스는 파리의 옛 이름으로 때때로 카페의 이름에서도 볼 수 있다. 또 로마인들이 지었던 아레나도 '루테스 아레나(arènes de Lutèce)'라고 한다. 로마시대의 아레나는 5구 팡테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위의 그림을 보면, 1구부터 20구까지 시계방향으로 숫자가 커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소용돌이 모양이 달팽이 집의 곡선을 닮아서 '달팽이'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도시의 확장 흔적을 보여준다. (아래 그림)
로마 점령기 시테섬에 지어진 담(4세기)에서부터, 필립 오귀스트(혹은 필립 2세)가 십자군 원정을 떠나면서 짓게 한 성벽(1180-1210), 샤를 5세가 우안만 확장한 성벽(1356-1383), 루이 16세가 세금을 걷기 위해서 짓게 한 성벽(1784), 루이 필립 시대에 지어진 군사적 성벽과 해자(1841-1845)가 갈색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루이 16세 때의 성벽은 그 자리에 지하철(이지만 고가 다리로도 많이 지나가는) 2호선과 6호선이 지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성벽은 현재 파리시의 경계에 가깝고, 그 자리에 파리 외곽순환 도로가 들어간다.
'동-서 권력'은 파리의 도시 구조를 반영하는 두 번째 열쇠다.
동쪽 편에는 루브르를 기점으로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 궁을 비롯하여, 주변에는 러시아, 중국, 독일, 미국, 영국 대사관 등이 위치한다. 지도에는 없지만 로뎅 박물관 가까이 우리나라 대사관도 있다. 좌안에는 오르세 박물관 주변의 외교부, 부르봉 왕궁에 자리한 하원, 총리 공간인 오텔 마티뇽이 자리한다. 이는 왕권의 중심에서 혁명 이후 대통령과 행정부가 왕과 귀족들의 저택을 국유화하고 자리를 잡은 때문이다. 물론 많은 대사관들도 귀족들의 저택에 입지 한 곳이 많다.
서쪽 편에는 파리에서 시위가 있을 때마다 공화국 광장(La République)에서 바스티유 광장(La Bastille)으로 자주 행진하는 루트가 있다. 파리에서 가장 큰 묘지인 페르 라 셰즈 (Père Lachaise)는 1871년의 파리 꼬뮈니스트 147명이 끝까지 싸우다 전사한 장소이기도 하다.
'옛것과 새것의 공존'은 축적된 파리의 역사를 보여주는 세 번째 열쇠다.
어디에서나 도시는 시간의 축적에 의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어디는 중세의 도시가 박제된 듯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고, 또 어디에는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신도시가 뚝딱 들어서기도 한다. 파리는 고대의 흔적, 중세, 르네상스와 절대왕정을 거쳐, 시민혁명의 흔적, 벨 에포크, 산업혁명기, 현대 등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옆의 지도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섬과 좌안의 도로망이다. 갈색으로 칠해진 부분은 나폴레옹 3세 시대에 오스망 남작에 의해 확장된 불바흐(Boulevard)이고, 그 사이의 거미줄처럼 좁은 길들은 로마시대부터 있던 생자크 길(소르본 옆을 지나는 길)부터 중세의 흔적이 남아있는 길들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163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해서 200년이 지나 완공되고, 이후 1844년부터 20년간 비올레-르-뒥에 의해 수리, 복원되었다.(위/오른쪽) 소르본 대학은 이탈리아의 볼로냐와 더불어 유럽에 최초로 만들어진 대학이다.(아래/중앙)
아래의 지도와 사진은, 19세기에 만들어진 길 불바흐 생 미셸에서 보이는 오스망 남작 시대의 전형적인 아파트 건물과 중세에 지어진 건물들을 볼 수 있는 생 앙드레 데 자흐길, 세흐팡트 길, 짓 르 쾨르 길의 모습이다.
파리라는 도시를 연대기적으로 살펴보면서, 관련된 것을 따로 심도 있게 다루는 것이 하나의 계획이다.
다음에는 로마시대의 파리 역사를 알아보려고 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길 중 하나인 생 자크 길이 로마시대의 도시에서 카르도(남-북축)의 역할을 담당하고, 데쿠마누스(동-서축)는 무엇이었는지도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