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많은 성당이 필요했을까?
파리의 면적은 서울의 1/6 정도 크기다. 강남구와 서초구를 합한 정도가 파리의 전체 규모다. 그 작은 규모의 파리에 현재 130여 개의 성당이 남아 있다. 시민혁명 이래로 프랑스는 정교분리, 즉 정치와 종교를 분리했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는 종교가 자치단체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회들은 우후죽순으로 들어선다. 신도시가 생기면 제일 먼저 생기는 것이 자장면집과 교회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반면, 성당은 행정구역과 신도의 숫자를 고려해서 교구 성당을 배치하고, 신부를 파견한다. 로마 가톨릭은 교황청의 교황을 중심으로 추기경, 주교, 사제 등의 위계가 있고, 다양한 수도원들이 교단별로 자체적으로 혹은 교황청과 연계되어 운영된다.
우리나라에서 성당은 가톨릭 예배당을, 교회는 개신교의 예배당을 뜻하여 서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교회로 번역하는 불어 église(에글리즈)라는 단어는 '그리스도교의 종교의식을 위한 건물, 그리스도교를 믿는 이들의 모임'을 뜻하고 두 종교의 예배당 모두를 포괄한다.
성당의 종류
우리나라에는 성당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신자 공동체인 본당구에 있는 예배당을 이른다. 대개 행정구역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데, 명동 성당, 명일동 성당, 가락동 성당 등이 그 예다.
반면, 불어로는 성당의 종류가 다양하다.
대성당, 카테드랄 Cathédrale
노트르담 대성당이 대표적이다. 카테드랄은 카테드르(cathèdre)라는 주교가 앉는 등받이가 높은 고딕식 의자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즉, 주교좌성당을 카테드랄, 대성당이라고 하는 것이다.
교구 성당, Eglise paroissiale
우리나라의 본당에 해당하는 것이 교구 성당이다. 프랑스는 가톨릭이 국교가 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면서 자신의 교구 성당에 세례를 받으며 교적에 등록되고,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할 때에도 성당에서 혼배미사로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리고 죽을 때에도 병사 성사를 통해 교적을 닫게 된다. 즉,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개인의 삶이 모두 교회에서 관리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본당으로 주임신부가 파견되고, 부사제가 보조역할을 한다.
바실리카, la basilique
로마제국의 바실리카는 공공건물이었다. 포럼 안에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큰 규모의 실내 공간으로, 재판소, 상업 거래소, 대규모 회합의 장소로 쓰였다.
그것이 가톨릭 성당에서 신자들을 모두 실내로 들어오게 하여 미사를 집전하는 공간으로 쓰기 위해 바실리카 건축이 도입되고, 건축분야에서 하나의 건축양식으로 쓰인다.
종교적으로 바실리카는 특별한 의미와 위치를 갖는 성당에 교황이 영예로운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바실리카다. 예를 들면, 사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지어진 로마 가톨릭의 본산, 교황청의 성당은 베드로 바실리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바실리카라는 용어가 특별히 영예로운 직위가 부여된 성당이란 의미가 통용되지 않아서 그냥 베드로 대성당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의 바실리카의 대표적인 예는 생 드니 바실리카이다. 생 드니는 파리의 첫 번째 주교로, 그의 무덤 주변에 프랑스의 왕과 왕비가 묻히면서, 왕실의 네크로폴(공동묘지)이 된다. 생 드니 바실리카는 1966년에 주교좌성당이 되어, 주교가 파견되는데, 오랫동안 바실리카로 불려서 카테드랄(대성당)과 바실리카 둘 다 통용이 된다. 파사드의 한쪽 종탑이 번개에 파괴되어 복원에 대한 논란이 있다.
파리에는 사크레 퀘르 바실리카가 있는데, 몽마르트르 언덕은 생 드니 주교가 처형당한 곳이고, 파리 코뮌이 보루로 지키다 패한 곳이다. 네오 비잔틴 양식의 성당 모습을 모든 파리지엔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의 축복을 바라며 파리지엔들이 십시일반 모금을 해서 완공한 성당이다.
특별한 성예물이 있거나, 특별한 성인이나 성녀를 기리는 곳, 많은 순례객이 방문하는 수도원의 성당, 샤펠 등이 바실리카로 지정되어, 프랑스 전체에는 171개의 바실리카가 있다.
샤펠 les chapelles
파리에는 현재 40여 개의 샤펠이 있다. 샤펠은 불어에서 생긴 단어로, 그 기원이 망토에서 유래했다. 메로빙거 왕조(5세기-8세기)에서 마르텡(Martin) 성인의 망토(cape/cappa)를 귀한 성유물로 여겨 자신들이 이동을 할 때마다 늘 함께 가지고 다녔다. 성유물을 사제에게 맡기고, 그 사제를 샤플랑 chapelain이라고 불렀다. 샤플랑은 왕이나 영주의 전속 사제이자 성유물을 지키는 사제를 뜻한다. 그리고 샤펠은 왕이나 영주가 자신의 왕궁이나 성채 안에 지은 성당을 가리킨다. 그 의미가 확장되어 성당 안에 특정한 성인을 기리는 성소를 샤펠이라고도 한다.
파리에서는 시테궁 안에 루이 9세(성 루이/생 루이)가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보관하는 성유물의 보석함 같은 개념으로 지은 성당인 생 샤펠이 대표적이다. 성인으로 추대가 된 루이 9세는 신앙심이 깊은 왕이기도 했고, 파리를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세우고자 하는 그의 종교적 야심이 생 샤펠을 짓게 했다.
왕이 벵센느 성으로 옮겨갈 때에는 가시관도 가지고 갔는데, 그곳에도 생 샤펠을 짓는다. 두 개의 성당이 비슷한 이유가 바로 같은 목적으로 같은 왕이 지은 왕궁 안의 샤펠이기 때문이다. 베르사유궁 안에 루이 14세가 죽기 5년 전에 완공한 샤펠 루와이얄(왕실 샤펠)도 왕궁 안에 왕이 지은 대표적인 샤펠이다.
사실 샤펠이 왕이 왕궁 안에 지어서 유명하긴 하지만, 종교적 위계는 가장 낮은 건축물이다.
수도원의 구분
그리고 우리가 구분 없이 수도원으로 번역하는 용어도, 그곳에 수도원장 abbé(여성형 abbesse)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아베이 abbaye와 프리외레 prieuré로 구분이 된다. 프리외레는 프리외르 prieur가 수도원의 장으로, 결국 용어가 없으니 수도원장이 된다. 이 두 곳은 위계에 의해 구분이 되고, 모두 수도사(남성형 moine, 여성형 moniale)들의 공동체를 부르는 용어이다. 수도사는 세속을 떠나서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같이 자신의 삶을 기도와 신에게 봉헌하기로 서원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수도사와 약간 구별되는 샤노완 chanoine이 있는데, 이들은 수도사와 같이 머리를 동그란 원만 남기고 깎고, 같은 옷을 입지만, 그들의 삶은 절반은 수도사와 같고, 절반은 세상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샤노완 chanoine을 참사원이라고도 번역하는데, 그들의 활동이 다양한데, 교구 성당에서 임무를 맡거나, 교육을 담당하고, 병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현대에, 그것도 혁명 시기에 공교육이 시작되기 전에는 학교라고 할 수 있는 교육기관은 어린아이부터 대학까지 모두 종교기관이 담당했다. 그리고 병자를 돌보고, 죽음을 앞둔 사람을 거둬들이는 곳도 모두 종교시설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성직자들이 모여사는 아베이와 프리외레를 모두 모나스테르 monastère로 부른다. 반면, 일반 신자들도 받아들이는 쿠방 couvent 이 있는데, 이 기관은 기숙학교와 비슷하다고 할까,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들이 들어가는 곳이 따로 있다. 쿠방의 장은 수녀(원장 수녀)나 신부(원장 신부)가 맡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구별하는 단어가 따로 없어 이것 또한 수도원으로 부른다. 우리에게 없는 단어는 번역이 안되고, 단어가 없으니, 개념을 설명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고, 처음 용어를 접하면 사실 혼란스러운 것이 자연스럽다.
루이 13세의 아내, 안 도트리쉬가 23년 만에 아들을 낳고 하느님께 바친 수도원, 이곳은 처음에는 프리외레prieuré 였다가, 아베스(abbesse)가 있는 아베이 abbaye로 승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