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쪼개쓰는 시간의 서글픔이다

육아에세이 6편

by forcalmness

평범한 주말 아침이었다. 아니다. 보다 즐거웠고 충만했던 토요일 저녁을 보내고 난 다음날이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참치회를 먹었고, 신랑과 평소보다 많은 대화가 즐거웠으며, 아직은 날것을 못먹는 아이가 "참치회 먹고싶다~냄새가 좋다" 하며 너무 불쌍한 표정을 짓는 모습에 폭소했으니. 아침에 아이 부름에 일어난 나는 아이가 덥다는 얘기에 에어컨을 약하게 틀었고, 아이가 내 무릎을 배고 누워 "아 편안해" 라는 말에 분명 행복했다.


그런데 아이가 아침간식을 이것저것 요청하고, 자꾸 자신이 보는 영상의 소방헬기를 보라고 부르고, 요즘 빠져있는 색종이접기를 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시간들이 쌓이자 난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엄마도 엄마 하고싶은 게 있어" 라고 아이에게 말이 튀어나갔다. 그러고선 오늘 하고 싶었던 것들의 목록을 보기 시작했다. 평일에 틈틈히 봤던 책 두권을 주말에 완독하고 싶고, 서평도 밀린 맛집글도 지금처럼 에세이도 쓰고 싶었다. 어제 밤에 미리 불려둔 미역으로 미역국도 끓이고 동그랑땡도 부쳐서 오랜만에 요리도 하고 싶었다. 밀린 화장실 청소도. 그 사이사이 아이의 부름에 감정적으로 긍정적인 반응하기도. 아 바쁘다. 어떻게 시간을 쪼개 써야하지? 가만히 우선순위, 일들의 순서배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고요한 시간조차 내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갑자기 너무 서글퍼졌다. 아이에게 별인사도 하지 않은채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육아의 세계로 입장하면서 난 아주 많이 성장하고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을 마주쳐도 이 사람도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아이였을 것이고, 이 사람 안에 한 부모의 시간이 고스란히 새겨지는 과정이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최대한 존중하려 노력한다. 그렇게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아이를 임신하면서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했으면 하는 내밀한 소망을 품었다. 그러려면 엄마인 나부터 스스로를 잘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마음에 담긴 말을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였을 때부터 아이에게 말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내 말이 잘 수용되지 않아서 속마음 표현을 멈췄던 내면의 결핍을 아이라는 존재가 극복하도록 노력하게 했다. 그렇게 내 안의 결핍이 점점 사라졌다.


결혼 후 배우자와의 둘만의 관계에서 아이라는 새로운 제3자가 등장하면서 새 생명을 키우는 과제 앞에 참 많이도 충돌했었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배우자의 새롭고 고집스러운 면모에 놀라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나만 그렇지 느끼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온전히 새 생명을 책임진다는 부담감과 여유없음에 서로를 배려할 힘 자체가 없었구나 지금은 돌이켜 생각한다. 그 시간들을 임기응변의 연속으로 버텨가며 지나오면서 이제는 매순간 어떤 게 조화로울지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기준에는 단단하게 내 의견을 내밀지만 그런 기준에 부딪치는 일이 아니라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조화로운 쪽으로 타협하는 힘이 늘었다. 그렇게 조화롭게 사는 능력이 생겼다.


그렇게 출산의 아픔과 육아의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들을 겪은 이후엔 '웬만한 아픔과 장벽은 껌이지'라고 생각하는 단단한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어려운 과제가 있다. '나만의 고요한 시간과 함께하는 시간의 배합'이다. 아무의 방해도 없는 절대적인 고요의 시간이 내겐 너무 부족하다.


아이에게 엄마아빠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게 적절한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어느 책에서 발견한 말에 아이에겐 부모가 온기이자 삶의 배경이라는 게 있었다. 아이가 우리를 원하는 순간에 있어주고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해주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시간에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의 적절한 배합 비율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온전히 환대해줄 수 있는 시간'과 '온전히 자신 스스로를 품어주는 위로의 시간' 사이에서 아직도 갈팡질팡한다. 그래서 오늘 아침처럼 쪼개쓰는 시간 속에서 서글퍼지는 것이다. 언제쯤 난 쪼개쓰는 시간의 서글픔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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