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감성주의자

육아에세이 7편

by forcalmness

오늘은 아이 성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모든 아이들이 타고난 성향이 있다고 하죠. 부모와 아이의 성향이 잘 맞아야 한다고도 하고요. 엄마로 제 아이의 성향을 어떻게 느껴왔는지, 그 성향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또 그 마음들을 어떻게 다잡아 왔는지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전 태어난 아이를 다양한 별명으로 불러왔습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별명은 신랑이 지은 '이스까불'이었습니다. 까불까불거린다는 의미로, 이스탄불을 살짝 변형한 '이스까불'이 입에 찰싹 붙어서 부르는 재미가 참 좋았습니다. 사실 저희 아이는 평균적인 남자아이보다 까불거리는 정도가 많이 낮았습니다. 먼저 행동하지 않고 가만히 주변을 관찰한 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였거든요. 누가 갑자기 다가오면 피하고 주춤하는 아이. 그런 아이가 까불거리는 순간이 보이면 오히려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조심스럽고 관찰자적 성향이 강한 아이를 바라보며 조금만 더 먼저 움직여주면 좋겠다 생각한 적이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다 지금까지도 제 마음에 박혀있는 기억의 순간을 만나요. 만2세 땐가 어린이집에서 물놀이 풀장을 만들어 반 아이들 모두 들어가 놀게 한 시간을 담은 동영상을 보았어요. 그 동영상을 보는데 저희 아이가 정말로 한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그 오랜 시간을요. 그걸 알아차린 순간 가슴이 꽉 막히는 줄 알았어요. 아이가 공포감을 느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익숙하지 않은 물놀이에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라 붙박이처럼 서있는 아이 모습을 보는데 그때 받아들인 것 같아요. 아 이 아이는 조심성이 강한 성향임을 받아들여야 하는구나. 왜 그럴까 생각하고 부모까지 아이를 다그친다면 이 아이는 누구에게 기댈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턴 자연스레 새학기 새로운 반 어린이집 선생님을 만나면 이 이야기부터 합니다. 저희 아이는 조심성이 많고 신중하고 관찰자적 성향이 강합니다. 물을 무서워하는 편이니 물속에 들어가기 싫어하면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 그렇게 먼저 말하고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더군요. '내 아이는 왜 그럴까'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그런 아이에요'라고 타인에게 선언하며 수용하는 과정으로 건너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난관에 부딪친 건 아이가 생각보다 성취욕구, 인정욕구가 강하다는 걸 느꼈던 때였습니다. 스스로 해보다 잘 안되면 울먹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되면 감정적으로 표출하는걸 지켜보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또 지금까지 제 마음에 박혀있는 두번째 순간을 만납니다. 아이 탱탱볼을 들고 공놀이를 나왔는데 집앞 배드민턴 코트에서 신랑이 재미로 탱탱볼을 네트위로 올려 넘겼습니다. 그걸 보고선 아이가 자신 키보다 높은 네트 위로 공을 던지는데 네트를 넘어가지 않자 울먹이더라고요. 처음엔 저희도 몇 번 더 방법을 알려주고 도전해보게 하다가도 안되자 울먹임이 지속되길래 신랑은 네트 밑으로 굴려보자고 다른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아이는 끝까지 처음 방법을 고수하더라고요. 신랑은 그 순간을 못견뎌서 집으로 들어가고, 제가 '꼭 안해도 돼 울면서까지 할 필요없어'라는 얘기를 해도 울면서 아이는 계속하는 거에요.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든 도움을 줘서 공을 네트 위로 넘기는 순간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이를 살짝 들어올려서 키를 높여주자 공이 네트 위로 넘어간 거에요. 그때 아이가 어찌나 기뻐하며 웃던지. 그전까지 울던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고 웃는게 약간 신비한 경험처럼 느껴졌어요. 그다음엔 울음을 그치고선 제가 키를 높여주지 않아도 혼자서 몇번 해보더니 진짜 스스로 네트위로 공을 한번 넘기는 거에요. 그리고선 '이제 집에 가자. 아빠에게 성공했다고 얘기하러 가자'라고 아이가 얘기하더라고요.



그때 확실히 느꼈어요. 이 아이는 스스로 해내고픈 욕구가 크고, 그걸 꼭 해내서 인정받고픈 욕구가 큰 아이니까 세심한 도움을 통해서 성취경험을 주는게 중요하구나. 처음엔 도움을 많이 줘서라도 성취해보게 하고 조금씩 도움을 줄여서 도전할 기회를 더 늘려주며 세심하게 지지해주는게 이 아이의 엄마로 내게 주어진 소명(?)이구나란 생각까지 했습니다. 내 아이에게 필요한 건 하고픈 아이에게 할 필요없다는 얘기를 하는 엄마가 아니라 세심한 도움을 적절히 줄 줄 아는 엄마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때부턴 침착함을 일단 유지하고 제 성향대로 아이에게 조언하기보다는 아이 성향에 맞춰 말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한 듯합니다.



전 이런 아이성향을 '완벽주의 감성주의자'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하고픈 걸 해낼 때까지 지속하는 끈기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속으론 이런 생각을 하는 절 발견합니다. 완벽주의를 추구할거면 감정 컨트롤을 할 줄 알던지 그리 힘겨워하면서 그걸 바라보는 엄마아빠도 힘들다고요. 한편으론 어른처럼 끙끙대지 않고 울먹임으로 열심히 표출하는 게 고맙다고 해야하는건지 너를 바라보는 엄마아빠도 창밖을 바라보며 울고 싶다고요. 색칠놀이에 빠졌을땐 색칠하는 테두리를 삐져나오면 안되고, 한글에 한창 빠졌을 땐 글자를 잘못 따라 쓴 걸 까맣게 칠하며 실수를 지우려 노력하는 모습들을 마주했습니다.



성취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방법을 적절히 알려주면서도, 실수에 대해 감정적인 표출을 다독여주어야 하는 이 수고스러움을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것 같습니다. 이 '완벽주의 감성주의자'를 양육하는 동안은 계속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세심한 지지를 보내는 기술이 늘어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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