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퇴고

일상에세이 12편

by forcalmness

감정에 퇴고란 말이 어울릴까. 직장동료와 오붓이 브런치를 먹으러 가는 금요일 점심, 차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직장동료는 감정을 그때그때 표출하는 사람이라 했고 난 감정을 스스로 오래 정리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그때 동료가 감정을 퇴고하듯 정리하면 자신은 처음 순간의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말하게 되더라고 표현했다. 서로 감정을 어떻게 표출하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 시간에 나누었던 얘기들을 곱씹다가 '감정 퇴고'라는 말이 입안에 맴돌았다.


그동안 내가 감정을 대상으로 퇴고를 해왔던 걸까. 스스로를 자각하기에 난 대화의 기술이 유연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화를 하며 드는 생각과 감정을 정제해서 표현해야 의견충돌과 이어지는 감정다툼이 줄어든다고 믿는다. 내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 왜 발생했나 자가진단을 한다. 그리고선 꽤나 드라이하게 말할 수 있을 때서야 대화의 상대방에게 말을 건넨다.


사실 감정을 그대로 그자리에서 표출하는 사람이 부럽다. 그 순간의 감정을 표현해도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갈등해결력이 있다는 반증 아닐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수록 속앓이를 덜해도 되고, 감정 퇴고를 하며 감정의 조각들을 내부 처리하는 시간도 적을테니.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대답은 아니다로 귀결된다. 감정을 젖은 채로 표현하다 후회하는 게 사실 더 내게는 아픈 경험이다. 감정 퇴고보다 사람에게 남기는 상처가 내게 되돌아오는 걸 감당하는 게 더 버겁다. 결국엔 누구나 본인의 성향은 스스로에게 편하고 부담이 적은 방식을 선택해오면서 다져지는게 아닐까. 내겐 감정 퇴고자가 어울린다. 가을 늦은 오후, 보늬밤 휘낭시에를 맛보며 이 보늬밤처럼 오래토록 굴려지고 졸여져 퇴고되는 내 감정들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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