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산책자

운동에세이 9편

by forcalmness

계단운동의 시작점은 점심시간이었다. 추워진 날씨에 업무공간을 벗어나지 않고 가능한 운동의 정점은 계단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을날씨의 변덕으로 가을다운 날이 펼쳐지자 점심약속이 늘었다. 당연히 점심시간 계단운동은 안드로메다로 갈 게 뻔했다. 이런 걸 보면 운동효과보다 운동을 하고 있다는 '노력 자체의 꾸준함'이 스스로에게 더 중요한게 아닐까 반추하게 된다.


계단운동은 계속 되어야 한다. 방법은 점심식사 전에 한번 계단운동을 하는 것이다. 처음 해봤을 때 1층에서 13층 올라오는데 10분 남짓이면 충분했다. 화장실을 길게 다녀오는 것과 비슷한 시간. 점심약속 전에 나와의 약속을 지켜보자. 스스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기분으로 1층으로 내려갔다. 한번 해봐서 그런지 계단 통하는 문도 단번에 찾고 몸도 처음보단 날렵한 기분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아침 계단운동의 묘미는 또 하나 있었다. 화장실 가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하지 못한 자잘한 일들을 계단을 오르는 시간 동안엔 차분히 하나씩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화장실에서 업무공간으로 다시 재빠르게 돌아오는 수평적인 동선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서두르게 된다. 겨우 자잘한 일 하나정도 처리하기가 가능했던 것 같다. 점심약속장소 예약하기, 미뤄뒀던 아이 미술수업 보강일 연락하기, 아이 겨울외투 하나 검색하기, 쓰고픈 글 메모하기, 안쓰는 물건 당근마켓에 판매글 올리기 등등. 사소한 일상의 파편업무가 많은데 그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기엔 화장실과 업무공간의 거리가 너무도 가까웠다.


계단은 업무공간에서 떨어져서 이런 사소한 일상의 일들을 차분히 해결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라는 걸 알게됐다. 아예 업무공간을 멀리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숨을 쉴 수 있는 공간. 생각보다 프라이빗한 공간이 계단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내연애를 할때 그렇게 계단에서 만나나 하는 생각도 스쳤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내 발걸음 소리만이 울리고, 전화소리 사람들이 밀집된 사무실 공간에서부터 꽤나 떨어져 밀폐된 장소. 그 발걸음 울림소리만 들으면서 차곡차곡 걸음을 쌓는 기분이 참 좋다고 느꼈다. 수직적으로 차곡차곡 고요하게 쌓아 올라가는 기쁨. 그러면서 생각은 정리되고 몸은 가벼워지는 기분. 나 계단 예찬론자가 된건가. 이쯤되면 산책이 주는 여유를 계단오르기로 찾고 있으니 '계단 산책자'쯤 되려나.


이제 아침 계단운동의 묘미를 알아버렸으니 점심약속이 비어있을 땐, 점심 계단운동까지 추가해서 두번은 차분히 걸어 올라와야겠다. 아침 계단운동이 기본값이 되도록. 내게 맞는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요즘 내가 빠진 삶의 방식인 것 같다. 즐거운 일상 루틴을 만들며 살자고 오늘도 내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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