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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숙 Jan 29. 2022

몸의 리듬



'탁, 쿵. 탁, 쿵.'

예기치 못한 발목 골절은 전에 없던 몸의 리듬을 만들어 냈다.


한동안 깁스를 한 다리는 눈에 띄게 앙상해졌다. 근육이 빠진 오른 다리는 왼다리에 빚질 수밖에 없었다. 몸의 왼쪽이 힘을 쓰기 시작하면서 엇박의 리듬이 만들어졌다.


불안정한 리듬은 지면과 닿으며 파열음을 냈다. 예민해진 발에는 땅의 질감과 경사가 고스란히 전해졌고 울퉁불퉁한 길, 미끄러운 길은 무시무시한 장애물이 되었다.


균형이 안 맞는 걸음걸이에 신경을 쓰다 보니 원체 느린 걸음은 배로 느려졌다. 점차 나를 추월해 가는 사람들에 익숙해졌고, 자연스레 그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저마다의 리듬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떤 이는 K-POP 아이돌 댄스곡, 어떤 이는 카리스마 록, 어떤 이는 컨트롤비트 랩, 어떤 이는 소주를 부르는 감성 발라드.


그 속에 어떤 가사가 담겨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확실한 건 그들이 자신만의 리듬으로 주저 없이 걷고 있다는 것이었다. 부러움 그득한 마음으로 그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나의 리듬은 어떻게 비칠지 문득 궁금해졌다.


예전의 나는 터덜터덜 걷곤 했는데, 이제는 꾹꾹 눌러 밟는다. 엇박의 리듬을 들키지 않으려고 힘주어 걸으면서 생긴 버릇이었다.


누구는 그 리듬에서 활기와 기세를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에게는 두 다리가 땅과 만나는 감각을 온전히 느끼려는 절실함이다.


느릿느릿, 꾹꾹. 오늘도 내 걸음을 길에 새긴다.


걷다 보면 감사하고, 뭉클하고, 대견한 마음이 왈칵 밀려온다. 시간이 흘러 엇박의 리듬은 정박으로, 정박에서 겉멋 든 R&B가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 이 리듬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오른 다리가 왼다리에 빚지고, 내가 두 다리에 빚져 만든 이 리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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