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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영 Feb 12. 2023

약속은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하는 거야!!

새해 첫날 공동체 가족들과 함께 한 약속


  어느 강의 자리에서 마흔 살에 독일 유학길에 오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여자나이 40은  '무엇을 하기에는 좀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무엇을 포기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은...' 그래서 결심하기 어려웠으나 더 늦으면 그 꿈을 포기할 것 같은 간절함이 있어 선택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집요하게 '그 꿈'이 무엇이냐고 돼 물어온다. 

 꿈.... 그 꿈... 사실  거창하고 멋진 꿈이 있으리라 상상했던지 어리둥절 해 하는 나의 표정을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게.. 그냥 좀 더 좋은 특수교사가 되는 것이었어요...


듣던 사람들이 실망한 눈길을 보낸다. 뭔가 거창한 꿈이라도 기대했던 양.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당시 나는 인지학과 발도르프교육에 빠져 있었고, 그 교육은 내가 특수교사로서 현장에서 답답해 하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 꼭 믿었다. 그래서 독일어가 아주 서툴렀지만 독일에는 학비 부담이 없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미국에도 발도르프교사과정의 사범대학이 있었지만 학비가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음), 언어 습득만 더 노력하면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 좋은 공부를 더 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그렇게 3년을 예정하고 떠난 유학이 6년이 되어 결국 발도르프사범대학을 마치게 되었고, 졸업 후에는 영국의 캠프힐 공동체에서 6개월 간 장애인과 함께 살며 장애인공동체를 한국에도 반드시 시작해 보겠노라 또 다른 꿈을 갖고 돌아오게 되었다. 

그때에는 그런 생각을 나 혼자만의 마음속 바람과 소망으로 간직하였다.

그래서 첫 번째 책 '캠프힐에서 온 편지'를 냈을 때 첫 장에 장자의 새로운 길에 대하여 말하였다. 

 

애초에 길은 없었는데, 한 사람이 가고 두 사람이 가고 여러 사람이 가다
보니 없던 길이 생긴다고.. 


 2009년, 장애아동 대안학교인 슈타이너학교는 나 스스로 담임교사인 한 학급 학교로  양평의 예쁜 펜션을 학교교사로 임대해 시작하였다.  보증금 1억 원은 서울에 살던 아파트를 전세 놓고 보증금을 빼었고 월 200만 원의 월세를 내기로 하였다. 그렇게 양평 슈타이너학교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장애아동을 위한 대안학교로 자리매김하여 10년이 되던 해인 2019년 새 터전인 지금의 캠프힐마을 동산에서 마지막 졸업생을 끝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2019년 장애인공동체 캠프힐도토리하우스가 시작되었고 이런저런 사연을 갖고 모여 살기 시작한 가족이 대략 10명, 작은 공동체가 구성되었고, 매일 재미나게 살고 있다.

  2008년 '캠프힐에서 온 편지'가 2001년 독일 유학 생활을 기록한 책이라면 2009년 슈타이너학교가 시작되고 15년 후 다시 쓰게 되는 이야기는 어떤 제목으로 시간에 색을 입힐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올해 2023년 새해를 맞이하여 가족들이 새해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 한 해의 소망 혹은 다짐을 돌아가며 말하는 자리가 있었다. 아주 구체적으로 실천 가능한 것들을 얘기하자고 독려하자 모두 갖자의 새해 다짐을 말하는 자리에 나도 모르게 두번째 책을 내겠다고 말해 버렸다.

돌아보면 나의 삶이 늘 그랬듯이 먼저 말을 던져 말로 씨를 뿌리고 그 말씨에 양분을 주어 싹이 나고 꽃이 피게 하는 그래서 힘겨운 삶을 살아 왔다.  누군가의  말 따나 지팔지꼬(지 팔자를 지가 꼬이게 만드는)!!! 말이 앞서는 사람이라고 핀잔을 받지 않으려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느라 애면글면하는 그런 어리석은 전법을 아직도 못 버린 거다.  이번에 또 이런 공약, 약속을 한 것이다. 

그 후 한 달이 지난 지난주 공동체 반상회에서... 한 달간 약속을 지켰는지 돌아가며 물어오는 사람에게..


"약속은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하는 거거든요!!!"

사실 나 스스로도 글을 쓰게 될지 어쩔지 알 수 없었기에 말은 던져 놓고 내심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글로써 마음의 상처도 기쁨도 오해도 풀어놔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좀처럼 그 시간은 오지 않았다. 상처를 안고 계속 무엇인가를 해결해야 했고, 계속 펼쳐야 했다. 

대나무가 매듭을 짓고 다시 성장하듯 어쩌면 지금이 내게는 그런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래서 감히 시도를 해보고자 내면의 말을 던진 것 같다. 알고 보면 2019년 코로나가 시작되던 때에도 한가해지면 글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곳에 남겨 놓았다. 그러니 계속 글을 쓰겠다는 빈말 약속만 한 셈인 게다. 그런 자신이 화가 나 변명처럼 괴변을 늘어 놓은 거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하는 거거든요!!!

빌리져들과 코워커들이 함께 아침열기를 한다. 

캠프힐마을의 작은 정원 '토닥토닥'


사실 핑계인지 게으름에 대한 합리화인지 나이가 들어가니 말과 글에 대한 책임감이 더 커짐을 느낀다. 내가 하는 말, 쓰는 말들이 행여 누군가에게 아픔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생기고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배려 아닌 배려 탓에 글이 무뎌지고 할 말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니 하나마나 쓰나마나 한 글과 말을 공허하게 내뱉고 있다. 

나의 글발이 좀 더 촘촘해지고 정교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에서 훈련하는 자세로 조금씩 글쓰기의 힘을 회복을 해 보려 한다.

하여 이번에 중점을 두고 싶은 이야기는 캠프힐아줌마의 삶과 교육, 장애인공동체, 혹은 장애인복지이야가 될 것 같다. 첫 번째는 힘겹게 공부하고 온 발도르프특수교육이 슈타이너학교에서 어떻게 꽃 피웠는지, 또 얼마나 즐겁게 아이들과 교육현장에서 생활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그 내용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학교 문을 닫으며 자연스럽게 캠프힐도토리하우스의 시작과 좌충우동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공동체성에 대한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배경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쓰이게 될 것 같다.


한동안 글을 읽지도 쓰지도 않았던 시간이 있었다. 새 터전을 매입하고 새 학교 건물을 짓고, 이혼소송 전을 펼치며 영혼이 털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건물의 준공을 기다리며 모든 것을 잊기 위해 대학원 박사논문을 완성한 것은 거의 모든 지력을 다 소모하기에 충분했다. 오랫동안 글을 읽지도 쓰지도 않은 것이 어쩌면 당연했을지 모르겠다. 쉬지도 놀지도 못하며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워했다. 아마도 인생의 방향을 잠시 잃어버린 것 같았다. 사실 방향성 없이 산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오랜 습관으로 인한 부작용 탓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환경이 주는 압박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상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차단된 경험은 처음이니 말이다.


올해는 나서지 말고, 남 일에 간섭도 말고 오직 캠프힐마을 빌리져들과 곳곳에 꽃도 가꾸고 채소도 심고 빵도 만들고 삽사리도 잘 돌보며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 말고 계속해야겠다고 일단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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