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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주섬주섬 가방을 뒤져 뭔갈 찾는다.

누군가에게 줄 만한, 주로 사탕이거나 츄잉캔디 같은 것.


가방 안은 흡사 카오스다. 립밤(세 개나 있다), 물티슈, 지난달 선물 받은 성령칠은 카드, 먹다 만 72% 기라델리 다크초콜릿, 역시나 먹다 만 이클립스, 튜브형 포포크림, 손거울, 카드지갑, 시집 '당근밭 걷기', 조르조 아감벤의 '내가 보고 듣고 깨달은 것들', 파스타 소스와 베이컨과 양송이버섯(점심 재료로 카페 가기 전 구매), 다이어리, 비상약, 선글라스, 스크런치, 장난감 꽃, 연필과 펜 두 자루. 헥헥. 이렇게 많은 물건 가운데 누군가에게 건넬만한 게 없다니. 다시 한번 가방 앞쪽 주머니를 뒤져 간신히 노란색 레몬 꿀 사탕 하나를 찾는다. 아, 다행이다. 짧게 안도하고 커피를 기다리는데 불쑥 고개를 뺀 그녀가 말한다. 원래 이 커피는 샷이 하나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샷을 조금 더 넣으면 맛있을 것 같아요. 어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좋아요! 그녀가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간다. 쉿. 그런데 이거 비밀이에요. 아, 비밀. 나 역시 손가락을 입에 가져댄다.


불룩한 가방을 뒤질 때였나, 식탁 위 투명 플라스틱 통을 채우던 사탕과 초콜릿이 떠올랐다. 어르신들이 요양보호사인 엄마에게 매일같이 손에 쥐어 주던 간식이었다. 구겨진 자켓 주머니나 오래된 손가방 안, 혹은 누빔 바지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던 그것을 엄마는 저금통 동전처럼 한 곳에 모아 두었다. 도대체가 다 먹을 수가 없다고, 주고 또 주고, 매번 고맙다고 그렇게 주는데 그런 걸 안 받을 수도 없지 않냐고 몇 개의 홍삼 사탕을 그 위에 더 얹었다. 냉장고에는 이미 사탕 세네 통이 있었다. 식탁 위의 것도 간당간당 넘칠 듯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사탕 하나가 툭, 열매처럼 떨어질 것 같아 조심스레 미니 초콜릿 바를 입에 까 넣던 나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말았다. 정적이 어색해 괜히 하는 말보다는 침묵이 낫다. 비트겐 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ß man schweigen고 했지만 어차피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고 나는 생각한다.


일 job이든 아니든 상대에게 자연스레 웃음을 건네고, 친절하게 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연한 것도 아니다. 의도치 않게 살아갈수록 친절과 배려의 무게를 알아간다. 언젠가 아이가 지하철에서 모르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한 적이 있다. 안녕하세요. 부드럽게 웃으시며 아이의 작은 손을 잡던 어르신의 대답은, 고마워요였다. 생각한다. 엄마에게 사탕과 초콜릿을 건네던 이들이나 카페에 들어서면서부터 내내 친절하던 그녀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저 고마워요, 가 아닐까.


커피가 나왔다는 말에 가방을 챙겨 커피잔을 받았다. 고맙다며 사탕 하나를 건네자 그녀도 고맙다고 웃었다. 순간 아 어쩌면 이 웃음을 위해서일지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의적인 상대에게 어떻게든 작은 마음을 건네고 웃음으로 돌려받는. 그런 웃음 하나로도 하루는 꽤 괜찮게 느껴지고, 살만하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오히려 작은 사탕이나 초콜릿으로 그런 하루를 만들 수 있다면 꽤 남는 장사인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들고. 역시 어른들은 현명하네, 멋대로 생각하고는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역시 샷 추가는 신의 한 수였다고 바리스타에게 쓱 엄지를 들어 올렸다. 아, 다행이다. 살짝 얼굴이 풀어지던 그녀가 다시 손가락을 입에 댄다. 쉿. 샷은 비밀이에요. 그럼요. 나도 손가락을 입에 가져대었다.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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