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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짐 Oct 25. 2017

오늘의 다짐

거의 다 왔어, 우와

피터 앤턴은 그림을 그린다. 잡지 삽화가를 꿈꾸며 대학에 진학했고 수업 중 누드화에 매료된 자신을 발견했다. 그에게 누드화는 아름다운 형태와 음영, 선일뿐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런 피터를 못마땅하게 여겨 대학을 그만두게 했다.

그 후 피터는 어린이들을 무대에 세워 아이들이 가진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돕는다. 공연에서 찍은 사진들을 그림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했던 피터에게는 자서전이 있었는데, 무려 12권짜리로 제목은 'ALMOST THERE'였다. 피터는 자서전 658쪽에 이렇게 적었다. 죽기 전에 내 이야기를 널리 알리는 게 목표라고.

이 목표를 이루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로부터 1년 뒤, 피터는 꿈을 이룬다. 한 축제에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던 피터의 스크랩북이 다큐멘터리 감독의 흥미를 끈 것이다. 피터는 말한다.


거의 다 왔다는 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다.


언제였더라, 벌써 오래전 일인 것 같다. 매거진 어라운드의 구인공고를 보고 위의 문장으로 시작하는 자기소개서를 썼었다. 한 가지 일에 집요할 정도로 꾸준히 몰두하는 피터의 열정이 결국 내가 목표해야 할 지점이라고. 언어를 다루는 일이 내게 그런 지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적었었다.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그런데 호기롭게 써 내려간 그때의 문장들은 이제 와선 거짓이 되어버렸다.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고 싶어서 안달이 난 때였으니 글을 쓸 상황이 아니었다는 변명,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 감정의 파동만 우직하게 따라갔어도 됐을 일을, 내가 나태해서, 용기가 없어서, 뒷전으로 미뤘다. 그럴수록 첫 문장을 떼기가 힘겨워졌다. 어렵사리 시작한 문장에 끝을 맺지 못하는 일이 허다해지면 에라이, 하며 노트북을 탕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정작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썼다가 이내 지워버렸다. 빙빙 돌려 말한 글은 생명력이 없는 빈 껍데기 같았고 가슴에 묵직한 게 얹힌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는 동안 글이 멀어졌다. 한 발치가 아닌 먼발치로 자꾸만 흐릿해졌다. 내 안에서 글이 지워지고 사라진다는 감각은 내가 지워지고 사라진다는 감각과 맞닿아서 나는 자주 무기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도 쓸 수 있는 날에는 잠깐이나마 생기가 돌았다. 나를 이루는 수많은 요소들 중 글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컸다.


종종걸음으로, 설사 헛발이라도, 다시 내딛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브런치와 지금의 연애 덕분이다.

여름 즈음 브런치가 어라운드와 진행한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서 브런치 계정을 만들고 작가 신청을 했다. 며칠 뒤 검토할 자료가 미흡하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만 해도 아 그런가? 싶었다. 그러나 글을 몇 개 더 첨부해서 재신청한 결과가 너른 마음으로 양해 바란다는 통보로 돌아왔을 때는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쓴 글 정도의 수준으론 미달이구나. 가늠할 수 없는 무게로, 양쪽 발에 좌절감과 무력감이라는 모래주머니가 달린 기분이었다. 나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발은 꽁꽁 묶인 채 컴퓨터에서 핸드폰으로, 배터리가 1퍼센트가 될 때까지 다른 작가들의 종횡무진을 염탐하듯 지켜보는 일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아는 사람을 셋이나 발견했을 땐 더 그랬다. 하지만 귀감이 될 만큼 착실한 기록과 샘이 날 만큼 울림이 좋은 문장을 만나면 나도 쓰고 싶다는 열망이 간절해졌다. 게다가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대다수의 작가들은 결코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단지 쓰고 싶어서, 시간을 쪼개고 잠을 줄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 비해 내가 운운한 무게감은 얼마나 한심한 엄살이었는지.


한결 가벼워지자 첫 문장이 쉽게 떠올랐다.

죽기 전에 내 이야기를 널리 알리자는, 피터 같은 거창한 목표는 아니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증발되는 어떤 순간들은 스스로 붙잡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연애, 내 고양이, 시시각각 감지되는 감정 변화들... 고작 나를 둘러싼 이 작은 세계가 지금은 내가 붙들고 싶은 장면들의 전부다.

어느덧 반년을 앞둔 연애가 신호탄이었다. 남자 친구가 후쿠오카로 여행을 간 사이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곤 우리가 함께한 평범한 시간을 천천히 되감아서 글로 옮겼다. 특기는 자각이지만 끈기가 부족한 내겐 피터와는 다른 이유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그 역할을, 여행 중인 남자 친구가 근사하게 해주었다. 자기 이야기라서 재밌는 게 아니라고 계속 써보라는 응원이 그래서 못 견디게 뭉클했다.

썼던 글 중 하나는 우연히 소재가 맞아떨어져 웹진 무구에 실렸다. 그 뒤로 한 편을 더 썼고 한 번 더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그 결과로, 이렇게 이른 새벽까지 두서없는 글을 쓰고 있다.  


내게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어느 날, 마늘 다지는 내 모습을 본 친구가 기가 막히게 잘 다진다며 '박다짐'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농담 같은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다짐'이라는 단어 속에 포함된 중의적인 표현이 좋았다. 그때부터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다짐들로 마음을 다졌다. 아주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된 다짐은 소박한 일기처럼 글을 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위 문장들은 피터 앤턴의 이야기와 연결된 자기소개서의 뒷부분이다.

앞으로도 내 글쓰기는 특별할 것도 소란스러울 것도 없는 담담하고 고요한 일상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 안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으리라.

이제 겨우 시작이지만 거의 다 왔다고, 피터 앤턴처럼 말하고 싶다. 거의 다 왔다는 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니까.

쓰자, 끝내 살아보자는 뚜렷한 맘을 갖자. 오늘의 다짐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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