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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얼리 Feb 12. 2021

새해 첫 멍

togo 2021 through

이제 더 말할 것도 없이 새해다. 음력 설날이 따로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1월 1일부터 대략적으로 2월 11일 전후까지 많은 것들을 미뤄둘 수 있다. 신정이라 불렀던 1월 1일 연도 계산법이 생긴 이후로 이 반도의 사람들은 모두가 인정하는 애매하고 신비로운 시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새해 인사를 두 번씩 하느라 바빴을 테지만 말이다.


늦잠을 자기로 약속해뒀는데 일찍 깨버렸다. 어젯밤 늦게까지 귀에서 이어폰을 빼지 못해서 더 잘 수 있을 줄 알았다. 사람들은 할 이야기가 많고 아는 것도 참 많고 경험이 많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 방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수다 떨다 마지막에 잠들던 몫을 다시 하는 기분이었다. 새 스마트폰이 주는 아날로그 경험이란 게 참 묘하다.


아침에 먹을 약이 있기에 바로 다시 잠을 자기보단 바나나와 우유, 스트링치즈를 가져와 옆에 두고 포레스트 검프를 틀어두고 글을 쓰는 중이다. 매년 한 번씩은 빼놓지 않고 보는 영화다. 어깨에 힘 쫙 빼고 사는 익숙한 이야기가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톰 행크스가 새 주연 영화를 넷플릭스에 공개했던데, 이어서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영화가 1870년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포레스트 검프가 되기 전생쯤의 이야기다. 그제는 영어 음성이 없이 일본어로 나와서 조금 보다 멈춰뒀었다. 신작을 해에 걸쳐 보는 것도 참 묘하다.


극중 검프 씨의 표정은 언제 봐도 명연기라고 생각한다. 아역 배우의 표정과 똑같은것도 신기하다.


올해도 나는 아직 휴직 중이지만 소소하게 글을 두 개 정도 비정기 연재하게 되었다. 묘한 일이다. 브런치 작가 되는 법, 같은 것도 읽다 보면 신기하다. 나는 서비스 초기라서 운 좋게 브런치에 작가로 글 쓰게 된 것 같다. 어쩌면 비정기 연재 중의 하나는 여기에도 모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허락을 받아야겠지만.


글을 더 잘 써보려고 (6년 묵은 맥북을) 활용해보려 노력 중이다. 활용 노력이라고 하면 성능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은 느낌인데, (2015 얼리 맥북 에어라 6년이나 된) 중고품이다. (6년이라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초등학생 두 명의 아빠가 되는 것은 딱히 상상해보지 않았는데 훌쩍 그렇게 되어버렸다. 나는 왜인지 해남 서쪽 끝에 살게 되었고, 창밖에서는 아직 얼굴을 모르는 동넷분인지 외짓분인지가 큰 소리를 내고 있다. (헛짜! 갈매기이~) 새벽엔 고라니가, 아침엔 까치가, 지금은 사람이 득음을 하는 중이시다. 평소 아이들 등하교를 맡고 있는데 학교까지는 차로 약 40분 거리다. 어란리에서 40분은 너무나 힘든 여정이었는데, 공룡대로 40분은 나름 괜찮을 것 같다.


아무도 안 만나는 설 연휴를 지나고 나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이장님께 전화드려서 소소하게 땅을 갈고 싶다고 문의하는 일이다. 어제는 집 바로 앞에 화단을 정리했고, 2020년을 보내는 의미에서 집 앞 구덩이에 잡목을 태웠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청소를 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말에도 같은 루틴으로 불멍 -> 늦잠 -> 포레스트 검프 할 수 있길, 그리고 일 뿐만 아니라 글 쓰는 것도 이어갈 수 있길, 소망하며 잠시 멍해져 보았다. 창 밖의 창도 멈췄다. 나도 늦잠을 좀 이어 자야겠다. (새해를 영타로 치면 togo라는 사실을 제목을 쓰면서 알았다. 역시 위트 있는 맥북이다. 아이클라우드 문제가 해결됐다는 빅 서 11.2.1 에서는 문서 폴더에도 접근을 허용해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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