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외면하지 않는 연습
“괜찮아.”
“다 좋아.”
“상관없어.”
익숙하게 내뱉던 이 말들인데 정작 그렇게 말한 뒤,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거나 이유 모를 서운함을 느낀 적 있나요? 분명히 '괜찮아'라고 했는데,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어딘가 쓸쓸하고, 어떤 날은 내 안이 텅 빈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어느 날은 말문이 막히지만 웃으며 '괜찮아'라고 말하고, 어느 날은 마음 한구석이 꽉 막혀 있는데도, '나야 뭐, 다 좋아'라며 넘긴 날들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그런 날이 반복되며, 어떤 날은 상대가 나를 배려하지 않음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나는 다 괜찮아.”
“나는 별로 원하는 거 없어.”
“그냥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이런 말을 뱉어놓고도 ‘나는 대체 뭘 원하는 사람이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도 '나는 다 괜찮아, 상대가 좋으면 나도 좋은 거지'라고 오히려 자기를 다독이기도 합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나, 진심일까요?
그 말들은 정말 진심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덜 힘들었기 때문일까요, 그렇게라도 해야 버텨낼 수 있었던 걸까요.
왜 우리는 ‘괜찮아’를 습관처럼 말하게 될까요?
한국사회는 감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고,, 개인보다는 집단의 조화를 중시하며, 솔직한 감정 표현을 ‘이기적’이라고 보는 문화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참아야 해, 티 내지 마'라는 말을 듣고 자랐지요. 그러다 보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싫어하는지, 지금 정말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모르고 성장한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90년생 이전 세대라고 하는 게 적합할까 싶기도 합니다. 어쨌든 세대를 이어져 오면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어른스러운 것이라고 배우며 살아왔습니다.
진심이 아닌 ‘괜찮아’는 내 감정이 고립되고 있다는 신호
계속해서 감정을 눌러버리면, 처음엔 괜찮은 척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점점 마음은 고립되고, 나조차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나와 멀어진 자신은 처음에는 주변인들도 좋게 받아들이지만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고,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듯한 느낌에 덜 매력적이게 보게도 됩니다.
“나는 뭘 좋아하지?”
“나는 지금 어떤 기분이지?”
이 간단한 질문에도 나 스스로 답을 못하니, 누군가에게 나를 알릴 수 있는 길이 막히는 것이죠. 앞에 세대에 따른 차이를 언급했듯이 한국사회에 모든 이라기보다 각자의 기질이나 자라온 가족환경 등을 고려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조금 더 기록해 보려 합니다.
1. 감정 표현에 대한 억제
자라면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거나 위험한 일처럼 느껴졌을 수 있습니다. '참아야 한다, 울지 마라, 남에게 민폐 끼치지 마라'는 메시지를 자주 들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습관을 무의식 중에 익히게 됩니다.
2. 관계 속 갈등을 피하려는 불안
‘내가 속마음을 드러내면 관계가 깨질지도 몰라.’ 이런 불안감은 상대에게 맞추는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자기 마음보다 상대의 반응을 먼저 살피고, 분위기를 지키려 하면서 자신의 진짜 감정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3. 낮은 자존감과 자기 무시
자기 욕구나 감정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 스스로의 마음을 존중하기보다는 '뭐, 난 괜찮아' 하고 넘기는 방식을 선택하게 됩니다. 마치 내 마음은 사소한 것, 드러낼 가치가 없는 것처럼 여기는 거죠.
4. 자기 보호를 위한 방어 기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자신의 기대를 접어두는 방식입니다. 바라는 게 없으면 실망할 일도 없었다고 생각하며 나를 보호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 것입니다. 내 감정을 말해도 이해받지 못할 테니 스스로 보호하려는 마음에 ‘괜찮아’라는 단어를 대신 사용하게 됩니다.
5. 자기감정과 욕구에 대한 인식 부족
위에 말한 모든 이유를 통합한다고도 볼 수 있는 중요한 심리적 특성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입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선택이나 감정을 존중받지 못했거나, 늘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온 경우, '나는 뭘 원할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상관없어’, ‘다 좋아’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자기 내면과의 연결이 약해진 결과, 진짜 원하는 것조차 흐릿하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괜찮다’는 말은 때때로, 진짜 나의 마음을 숨기기 위해 만든 작은 방패일 수 있습니다.
‘괜찮아’ 대신,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괜찮다고 말하는 대신,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에 천천히 귀 기울여보세요.
나는 그 일이 기쁜가, 슬픈가, 서운한가?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혹시 지금 나도 모르게 포기해 버린 욕구는 없을까?
감정을 인식하는 연습은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점심 메뉴를 고를 때조차 '나는 뭘 먹고 싶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조금씩 내 안의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괜찮지 않은 나’를 그대로 인식하고 나의 마음에 귀 기울여주는 시작입니다. 그리고 선택한 것을 먹으면서 정말 좋은지 점검해 보세요. 나의 감정을 많이 알아주고, 자주 경험하면서 나의 선호를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진짜 나를 만나는 감정 인식을 연습해 보세요.
1단계 | ‘지금’ 느끼는 걸 인정하기 (질문 던지기)
“나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내 마음속에 가장 가까운 감정 단어는 뭐지?”
좋은 감정이든, 불편한 감정이든 모두 좋아요.
감정에 ‘옳다/그르다’ 평가하지 않기.
예: 조금 짜증 나. 약간 불안해. 조금 들떠. 불편하네.
“지금 느끼는 감정이 어떤 모습이든, 그건 존재할 자격이 있어요.”
2단계 | 감정에 이름 붙여주기 (단어 찾기)
‘좋다’, ‘나쁘다’ 대신 더 구체적으로!
감정카드나 감정리스트를 참고해도 좋습니다.
좋아 → 안도감, 기쁨, 설렘
나빠 → 서운함, 분노, 두려움, 슬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건, 내 마음에게 ‘네가 중요해’라고 말해주는 의미가 있어요.”
3단계 | 감정과 함께 있어주기(마음 챙김)
감정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냥 옆에 있어주세요. 급하게 습관적으로 나오는 '괜찮아'를 뱉지 말고 잠시 숨을 깊게 쉬며 감정과 함께 그때에 머물러보세요.
'아, 내가 지금 서운하구나'
'그래, 당연히 그럴 수 있어'
(3번 정도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해주기, 혼자라면 입 밖으로도 뱉어보기)
“감정은 우리를 괴롭히려고 오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의 소식을 전하러 오는 거예요.”
이 작은 연습이 쌓이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알면 상대방에게 나에 대해 말할 수도 있겠지요. < 괜찮지 않은 나를 인정하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진짜 나를 사랑하는 첫걸음입니다.
오늘 하루, 조용히 당신 마음에 이렇게 말해보세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내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알아줄게'
내 마음과 다정하게, 함께 걷기를 응원합니다.
p.s. 읽어주심과 라이킷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