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은 본능인가
“본능보다 깊은 사랑의 기록”
아직도 감동이 끝나지 않은
넷플릭스 시리즈의 '폭싹 속았수다' 장면, 장면마다,
묵묵히 가족을 책임졌던 부모의 삶이 떠오른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진다.
“엄마… 모성애는 그냥 생기는 걸까?”
그 마음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모성애는 학습된 감정일까, 본능일까?
어릴 적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이니까, ‘엄마니까’ 그래야만 한다고 여긴 거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 또한 어른이 되어보니 또 상담사라는 직업을 갖고 세월을 살다 보니, 그 당연함 뒤에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숨어 있었는지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 그 시작에서 ‘모성’과 ‘부성’은 흔히 본능처럼 여겨진다. '엄마니까 그래야지, 아빠니까 당연하지'라는 말에는 부모라는 이름 앞에 감정보다 역할을 먼저 부여하는 오래된 믿음이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모성은 본능일까?
물론 아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가 아이에게 느끼는 깊은 애착은 신체적인 변화와 호르몬의 작용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은 아이와의 접촉을 통해 분비되며 돌봄과 애착 행동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엄마니까 당연히 사랑하지'라고 말한다.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Harry Harlow)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유명한 실험을 했다. 익숙하게 들어보셨을 것이다. 철사로 된 ‘젖 주는 엄마 인형’보다, 포근한 천으로 감싼 ‘따뜻한 엄마 인형’을 새끼 원숭이들은 더 오래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모성애는 단순히 생존(젖 먹이기)의 수단이 아니라, 정서적 안정을 주는 존재와의 애착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안기고, 보호받고, 위로받는 그 감정을 통해 사랑을 배운다. 이것은 꼭 인간이 아니어도 세상의 많은 생명들은 몸으로, 행동으로, 마음 깊은 본능으로 사랑을 가르친다.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도, 이런 모성애를 때론 더 본능적으로, 더 절실하게 보여주곤 한다.
동물들에게 배우는 위대한 사랑
모성애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새끼를 지키고 보살피는 모습은 때때로 우리보다 더 본능적이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때론 그것이 생명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길일지라도, 어떤 동물들은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한다.
모성애가 유난히 강한 동물들 이야기
1. 북극곰 – 눈보라 속에서도 품는 사랑
북극곰 어미는 새끼를 낳기 위해 따뜻한 굴을 직접 파고, 몇 달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새끼 곁을 지킵니다. 굴 속에서 태어난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기 전까지 어미는 먹이를 찾아 나가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체중의 절반이 빠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미는 새끼가 굴 밖으로 나올 수 있을 만큼 강해질 때까지 한순간도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다림 속에서 더 깊어집니다.
2. 문어 – 단 한 번의 출산, 단 한 번의 사랑
암컷 문어는 알을 낳은 뒤, 그 알을 지키기 위해 먹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수천 개의 알이 안전하게 부화할 때까지 오직 알만 바라보며 물살을 보내고, 포식자로부터 지켜냅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문어 어미는 새끼가 태어나면 생을 마감합니다.
단 한 번의 출산, 그리고 그 짧은 삶을 다 바친 어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다 바치는 이 존재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3. 코끼리 – 평생 함께하는 엄마, 이모, 언니들
코끼리 무리는 철저한 모계 사회입니다. 새끼 코끼리가 태어나면 엄마뿐 아니라 이모와 언니, 할머니까지 모두 돌봅니다. 아기 코끼리는 수많은 보호자들 속에서 사랑을 배우고 성장하죠. 새끼가 실수하거나 넘어졌을 때도 무리는 절대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줍니다.
때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이들의 ‘모성 공동체’는 우리에게 돌봄과 연대의 또 다른 언어를 들려줍니다.
4. 오리 – 위험 속에서도 대열을 잃지 않는 인도자
오리 엄마는 수풀 속에서 태어난 새끼들을 데리고 물가까지 걸어갑니다. 그 여정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죠. 자동차, 사람, 천적들까지.
하지만 엄마 오리는 언제나 맨 앞에서 길을 트고, 맨 뒤까지 살피며 새끼들을 한 마리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부성애’는 모성애에 비해 덜 조명되었지만,
놀랍도록 깊고 헌신적인 사례들이 많습니다.
아버지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하는 동물들
1. 해마 – 임신과 출산을 도맡는 아빠
해마는 자연계에서 드물게 수컷이 임신하는 동물이다. 암컷이 알을 수컷의 육아주머니에 넣으면, 수컷은 수백 개의 알을 몸속에서 보호하며 수정시켜 출산까지 책임진다. 출산할 때는 진통과 비슷한 움직임까지 보이며, 그야말로 ‘몸으로 낳는 아버지’ 다.
2. 황제펭귄 – 눈보라 속에서 알을 품다
남극의 황제펭귄 수컷은 암컷이 알을 낳고 먹이를 구하러 떠나면, 영하 60도의 눈보라 속에서 두 달 가까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을 품는다. 알이 얼지 않도록 발등 위에 올리고 배로 덮은 채, 다른 수컷들과 몸을 맞대고 체온을 나눈다.
생명 하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걸 내려놓는 아버지의 전형이다.
3. 아로와나 – 입속에서 새끼를 품는 보호자
열대어 아로와나 수컷은 알이 부화할 때까지 입속에서 알을 품는다. 새끼가 부화한 뒤에도 위험을 감지하면 자신의 입으로 새끼를 다시 보호하려 한다. 한 번에 수십 마리의 새끼를 보호하며 먹지도 않고 위험에서 지켜낸다.
4. 아프리카 자칼 – 평생 한 짝, 함께 키우는 아빠
자칼은 일부일처 동물로, 짝과 함께 긴 시간 동안 새끼를 함께 양육한다. 수컷은 먹이를 사냥해 와서 암컷과 새끼에게 양보하고, 외부의 포식자로부터 보호자 역할도 한다. 부성애가 강한 종일수록, 새끼의 생존율이 높다는 연구도 있다.
모성은 본능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본능과 다르게 내 안에 잠재된 무언가를 일깨워야 하는 본능 아닐까?
“솔직히 말하면, 애가 낯설었어요.”
“사랑스럽기보다는 무서웠어요.”
“버거워요.”
그 상담장면에서 종종 만나는 양육자들의 이 고백은 모성이 본능이 아니었음을, 적어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모성은 어느 날 갑자기 ‘준비 완료’로 나타나는 감정이 아니다. 처음에는 서툴고, 낯설고, 때로는 무감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을 꺼내 들여다보고, 부딪히고, 때로는 외면하다가 다시 손 내밀 때, 비로소 ‘사랑’이 된다. 그 사랑은 애쓴 시간, 참은 마음, 지켜본 시선 안에서 자란다.
어쩌면 진짜 모성이란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감정보다는, 살면서 의지로 만들어내는 노력의 산물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어멍(엄마)과 아방(아버지)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모를 둔 존재로서, 그들이 당신을 어떻게 사랑해 왔는지를, 그 사랑이 과연 본능이었는지, 아니면 선택이었는지를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기를 바란다.
부모는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자식으로서 우리가 받은 사랑도 완벽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랑은 때로 미완성이고, 때로는 뒤늦은 후회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부모가 되어가며 만들어낸 감정과 시간 속에 ‘모성’은 존재했다.
그것이 본능이든, 선택이든,
우리의 존재는 그 안에서 자라났다.
“본능보다 깊은 사랑의 기록” 그 자체이다.
다음 발행글에서 좀 더 나눠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