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과 결정장애의 컬래버레이션
그래? 그런가?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전공을 선택할 때도 그랬다. 고등학교 때 지구과학을 선택하지도 않은 내가 지구환경시스템학과를 가게 되었다. 갑자기 지구과학에 꽂히기라도 한 걸까? 물론 아니고 말고. 그저 담임선생님이 여기가 나을 것 같다고 해서 갔을 뿐이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과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학교 홈페이지라도 들어가서 찾아보고 결정했을 것이다. 딱히 꿈이랄게 없었기에 수능 성적 맞춰서 과보다는 대학을 보고 가는 게 맞는 줄 알았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보다 입시에 대해 잘 아니까 추천해 주는 대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시 지원 3곳으로 그나마 상향지원 1곳, 하향지원 1곳, 그리고 관심 있었던 과를 3순위로 쓰려고 했더니 정시 원서 마감하는 날에 담임선생님이 '안정적으로 지원'하자며, '관심 있는 과'보다는 '무조건 붙는 곳'으로 지원하자고 설득하였다. 그래서 선택했던 곳이 '지구환경시스템학과'다.
이름조차 생소한 학과에 그저 담임선생님 말만 듣고 지원을 했다가 4년을 다니게 된 것이다. 무계획이었던 탓도 있지만 귀가 얇은 탓이 더 컸다. 이 선택은 아직까지도 후회된다. 이 과에 와보니 내가 싫어하는 물리, 역학이 대부분이었다. 더 싫었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의 흐름과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해야 한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게 아닐까?
예측한 결과가 맞고 틀리고가 명확하다. 갑자기 생기는 자연현상을 100% 예측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점차 정확도는 높아지겠지만 가시적이지 않은 학문이라 그런지 배울수록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이 없을 때는 담임선생님은 본인도 모르는 과를 가라고 해서 내 인생을 망쳤다고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선택이었다. 남에게 선택을 맡기는 것도 본인이 선택한 것이다.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지금까지 살며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내가 아닌 타인이 의견을 줄 수는 있지만 나한테 멱살 잡고 거기 가라고 한 건 아니다. 대학 전공 선택 후회를 반면교사 삼아 다른 사람을 무조건 따르는 건 조심하고 있다.
무계획이라고 막살고 싶은 건 아니다. 유연하게 살고 싶지만 되돌릴 수 없는 결정에는 고민을 더 하게 되다 보니 오히려 결정장애가 되어버렸다.
무계획에... 결정장애란... 쉽지 않은 조합이지만 어쩌겠는가.
조금씩 보완하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