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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지현 Aug 26. 2023

쫓는 자, 쫓기는 자



회사에서 우리 팀과 생산 부서 간에 자주 마찰이 빚어졌다. 환경 법규를 사업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원성과 반발이 빗발치는 것이다. 전사 공지 메일을 뿌리면 사무실 전화기가 일제히 울려댄다. 우리는 앵무새처럼 했던 말을 또 한다. 법의 취지가 무엇인지, 왜 해야만 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등등. 조곤조곤 설명하다가 거의 울다시피 애원하다가 언성 높여 싸우기도 한다. 평소에도 업무 협조 전화를 걸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환경팀이라고 밝히는 순간 스팸 전화라도 받은 양 쌀쌀맞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직업, 환경 엔지니어.


과태료나 행정처분을 막기 위해 감수할 수밖에 없다. 환경 보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건지 실감이 잘 나지 않지만. 그저 법정 이행사항을 성실히 따를 뿐이다. 그 중 하나는 관리대장을 작성하는 일이다. 현장에서 사용하는 원재료 입출고량이나 오염물질 농도, 시설 점검 내역 등을 기록하는 것이다. 생산팀이 작성하고, 환경팀이 검수한다. 부서가 40여 개라 단순히 취합하고, 확인하는데만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 그런데 제출된 서류가 엉터리인 경우가 허다해 실제 마감일은 무한정 늘어난다. 차라리 직접 쓰는 편이 더 빠르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복잡한 사유로 시스템화도 불가능해 소위 ‘디지털 노가다’에 돌입한다. 온종일 엑셀창만 뚫어지게 보면 속이 메스껍고, 눈에 벌건 핏줄이 곤두선다. 파티션 너머 사방에서 푹푹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온다.


갑자기 관공서에서 불시점검을 하러오면 비상이다. 모든 업무는 올스톱. 즉시 메일로 공지하고, 전체 부서에 전화를 돌린다. 현장 점검 대상 공정은 랜덤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관리자들은 초긴장 상태다. 대외용 서류도 빠짐없이 구비한다. 경비실에 출입 안내를 요청하고, 미팅룸에 다과를 세팅한다. 공무 수행 차량이 들어올 때까지 정문에 일렬로 서서 대기한다. 비가 오면 차 문까지 버선발로 뛰어나가 우산을 씌워준다. 회의실에서 '무엇이든 잡아내려는 자'와 '무엇이든 막아내려는 자'가 대적한다. 창과 방패의 싸움. 이곳에서 우리는 처자식 딸린 가장이나 선량한 시민이 아니다. 업무상 우리는 죄인처럼 취조받는다. 책상 밑으로 두 손이 가지런히 모여있고, 다리는 미세하게 떨린다.


퇴근 이후나 주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환경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으면 119 구급대원처럼 언제든 튀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15분 내 상황 파악을 마치고 관공서에 신고해야 한다. 만약 사람이나 재산, 환경상의 피해가 2회 이상 발생할 경우, 영업정지 5일 명령이 떨어질 수 있다.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는 것이다. 천문학적 금전 손실과 이미지 훼손, 뒷수습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스한 바람이 살랑이는 봄날,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에 온 가족이 들뜬 표정으로 현관을 나섰다. 직장 생활로 뿔뿔이 흩어졌던 식구가 모처럼 뭉쳤다. 아버지 생신 겸 외식하러 나가는데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순간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우웅- 우웅-.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 수신 : OO 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OO 연구사


주말 아침에 이곳에서 나를 찾는 이유는 1가지뿐이다. 화학사고. 왜 항상 주말이나 한밤중에 사고가 터질까. 솔직히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 가족을 버리고, 적막한 공장으로 출동해야 한다니. 누구라도 달갑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개인의 삶과 회사의 안위 사이를 갈팡질팡 하다 끝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근 공장에서 신고가 들어왔는데요. 굉음과 함께 불꽃이 일었다고요. 지금 현황 파악하셔서 바로 연락 좀 주세요!”


머리가 새하얘졌지만 15분을 초과하면 지연 신고로 가중 처벌될 수 있기에 넋 놓고 있을 수 없었다. 팀장은 부재중. 고향에 내려간 사수는 당장 출발할 테니, 그동안 사고 발생 공정과 설비, 피해 정도 등을 알아보라 지시했다. 그는 사망 사고뿐 아니라 검찰 조사도 몇 차례 받아본 경험자였다. 경비실과 해당 부서 담당에게 전화하려는 찰나 또다시 연구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확인된 사실 있나요?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짜증과 조급함이 뒤섞인 말투였다. 상부와 유관 기관에 늦게 통보하면 센터 측에도 책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빗발치는 전화에 속이 급속도로 타들어 갔다. 상황 파악 중 팀 카톡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도면을 보니 다행스럽게도 신고 대상 시설이 아니었다. 단순 안전사고로 판명되어 소방서에서 진화를 마쳤다고 했다. 돌아오는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팀장 자리로 달려가 물었다.


“혹시 이후로는 별일 없었을까요?”


앞자리에 앉아 있던 사수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는 잠시 후 나를 따로 불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사고가 잘 마무리된 게 아닌가 싶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들려왔다.


“네가 팀장이야? 별일 없었냐고 물어야 할 사람은 팀장이다. 네가 보고받을 위치는 아니지 않나? 너무 놀라서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더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팀장은 불편한 기색이 없었기에 당장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내가 출근하기 전 두 사람은 본부장실에 불려 가 불호령을 들었던 것이다. 주말도 포기하고 사고 수습에 전력을 다했는데 아침부터 욕 한 바가지라니 억하심정이 들었을 터.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가 지속되던 어느 날, 한밤 중 전화가 울렸다. 불면증에 시달리다 겨우 잠들었던 탓에 미간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스마트폰 액정에 뜬 발신자를 보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 수신 : OO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장


“3공장 앞을 지나가던 트럭 기사가 약품 냄새로 숨도 못 쉴 지경이라는 민원이 들어왔어요. 화학사고인지 확인 후 즉시 연락 주세요.”


끊자마자 또다시 진동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 수신 : OO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OO 연구사


재촉과 닦달이 이어졌다.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머리카락만 쥐어뜯었다. 빠른 회신을 약속하고, 팀장에게 말하려던 찰나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 수신 : OO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OO 과장


이때부터였을까? 콜포비아가 발현된 것이. 전화만 오면 가슴이 내려앉았다가 쿵쾅쿵쾅 뛰었다. 불안 증세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났다. 사택 건너편 소방서에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면 사색이 되었다.


‘설마 우리 공장으로 가는 건가?’


창 밖으로 목을 빼 방향을 확인하고 나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후에도 연쇄적으로 세 차례 사고가 터졌다. 회사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 없이 땜빵식 대응을 지시했다. 전 직원이 사태의 심각성을 같은 강도로 느끼진 않았다. 하나씩 업무를 끝내야 하는데 계속 새로운 이슈가 터지다 보니, 업무가 마비되었다. 몇 주간 팀 전원이 야근과 주말출근을 해도 역부족이었다. 사고 조사 보고서만 썼다 지웠다 하는 나날이었다. 보고서가 허공에 처연히 날리다 떨어지기 일쑤였다. 토씨 하나로 회사 입장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일까. 문득 변호사의 글쓰기를 생각해 보게 된다. 변호인은 처벌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의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변론해야 한다. 잘못을 알면서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글을 써야할 때 과연 어떤 마음일까. 팀원들은 점점 말수가 없어졌다. 사수는 사소한 일에도 인내심을 잃고 발끈했다. 메일에 맞춤법 하나라도 틀리면 호통을 쳤다.


“일 제대로 안 하냐? 지금 당장 전 부서에 전화 돌려!”


40여 개 부서와 3분씩만 통화해도 2시간이다. 심각한 업무 로스. 구석진 자리에서 부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런 일로 전화하면 괜히 역효과 날 텐데…”


그래도 사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팀원들은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는 목적이 ‘성장’이 아니라 ‘혼나지 않기 위해서’가 된 것이다. 잦은 사건사고로 팀은 와해되기 일보직전이었다. 주말에는 아무 생각 없이 늘어져 있다가 어둑해질 즈음 친구와 한 잔 하러 나갔다.


“오늘은 어쩐 일로 조용하냐. 사고 났다는 연락 없네.”


별안간 회사 카톡방에 숫자 1이 떴다.


"에이, 설마. 농담이지?"

   

- OO공정 21시 35분 황산 의심 물질 누출, 담당자 연락 및 현장 확인 중


환경 엔지니어가 이런 일을 하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지구 온난화를 늦추고 싶었던 사명은 순진하고 무지한 고등학생의 이상에 불과했었나. 앞으로 사고는 더 잦으면 잦았지 줄어들진 않을 것이다. 노후 탱크가 하나 둘 제 수명을 다해가고 있는데 철판 조각만 덧대서는 안 될 일이다. 25년을 회사에 바친 고위 간부가 경찰조사와 사회봉사를 받았다. 다음은 누가 표적이 될까. 나는 되풀이되는 역사를 평생토록 당해낼 재간이 없다.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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