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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사랑 Mar 29. 2019

‘외향인vs내향인’, 내향인의 정의



나는 내향인이다. 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인간의 성격을 네 가지 척도로 구분하여 총 열여섯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바는 없으나 이해하고 응용하기 쉬워 널리 사용된다.) 검사를 하면 늘 내향성이 90% 내외로 나오는 극내향인이다.


최근에 내향인으로 겪은 갈등이 많았다. 대부분의 내향인이 그러하듯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누워 있고만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문제였다. 학교, 아르바이트, 갑작스러운 약속 등등.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갖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외향인이 뭔지 내향인이 뭔지 그런 건 관심도 없었고 나라면 확실히 외향 쪽이지 않을까 했다.


집에 누워 있는 걸 제일 좋아하긴 하지만 밖에 나다니며 친구랑 맛있는 걸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하니까. 음악을 좋아해서 공연도 다니고 여름이면 록 페스티벌에도 간다. 클럽도 몇 번 가 봤다.


예전에는 내향인이라면 무조건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이미지만 떠올리는 편견도 있어서, 내 내향성이 높게 나온 게 왠지 걱정되기도 했다.



내향인에게 주어지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그건 사실과 다를 때가 많다.


대체로 차분함이나 활동성의 정도로 판단하나 사실 외향과 내향을 구분하는 기준은 본질적으로 에너지를 얻는 방향에 기반한다. 외향인은 타인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반면 내향인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얻는다.


내가 내향인이라는 것을 실감할 때는 누군가가 집에서 쉬고 있는 나를 부를 때다. 편한 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야, 나와.” 하며 전화가 올 때.


관심 없는 보험 전화도 제때 못 끊어서 30분 동안 붙들릴 정도로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라 예전에는 마지못해 다시 옷을 입고 나갔는데 사실 그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었다.


진짜 나로 충실히 살고자 하는 요즘은 이런 식으로 나오라는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고는 한다. 이제 쉬는 날이나 귀가한 시간 술자리로 불러내는 연락에 귀찮아하며 “놉!”을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조금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계획하지 않은 일정이 생겨 내 시간을 빼앗기면 몹시 힘들어하는 성향도 그 거절에 한몫한다. 나는 그런 거절에 반발하고 의아해하는 사람에게 유감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억울한 것 같기도 하다. 외향인과 내향인이 만나면 외향인은 에너지를 받지만 내향인은 에너지를 잃는다. 배터리가 다 닳은 전자 기기처럼 방전된 내향인은 집에서 충전할 시간을 가져야 하는 반면, 외향인은 에너지를 잔뜩 받고 귀가한다. 언뜻 불공평하게 보이는 그림이다.


이 문제에 관해 많이 생각했다. 사람들이 나를 찾는 건 나와의 관계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와의 관계가 손해라고 생각하면 나를 찾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난 그들과의 잦은 만남이 불필요해서 손해라 생각하고, 그렇게 본다면 불공평한 상황이 맞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입장을 굳이 굽히고 양보할 필요는 없다. 내가 타인과의 만남을 종종 사양하는 건 ‘그들을 만나는 시간을 나만의 시간으로 쓴다’는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만의 시간이 그들과 만나는 시간으로 소모된다’는 손해를 덜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외향인이 싫은 건 아니다.


가끔은 나에게 부족한 성향을 가진 그들이 신기하고 부럽다. 학창 시절에는 활발하고 인기 많은 친구가 너무 부러워서 나도 그렇게 변하려고 애쓴 적이 있다. 세상에 나 같은 내향인만 있으면 사회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도 나가서 사람들하고 어울리며 놀고 싶고 사회생활을 하고 싶다. 다만 남들보다 그러고 싶은 빈도가 조금 낮을 뿐.



EBS 다큐프라임 ‘당신의 성격’ 편은 3부에 걸쳐 인간의 성격에 관한 전반적인 탐구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주의력 결핍 장애 아동의 이야기부터 일란성 쌍둥이의 성격 차이까지 다양한 소재와 실험을 다룬다. 그중에서도 특히 외향인과 내향인을 소개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현명한 리더는 작은 소리로 말한다》의 저자 제니퍼 칸와일러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버락 오바마, 빌 게이츠, 워렌 버핏을 예로 들며 조직의 지도자나 임원 중에는 내향적인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국내 CEO 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자신을 내향적이라고 표현한 사람이 외향적이라고 표현한 사람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흔히 사람들은 외향인과 내향인 중 대인 관계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더 좋은 사람은 외향인일 거라 생각하지만, 정작 그런 능력이 가장 요구되는 지도자 중에는 내향인도 많다.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 칼 슈왈츠 교수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또 다른 시사점을 던진다.


그는 내향적인 아이들이 성장하면 어떻게 성격이 변할까 궁금해 알아보았다고 전했다. 실험 결과 유아기 때의 성향 차이가 청소년이 되어서도 뇌의 구조와 기능, 행동 등에 그대로 보존된 것으로 보였다 한다.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금속으로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 수는 있지만 유화를 그릴 수는 없어요. 자신이 지닌 가능성과 차이점으로 스스로를 만들어 갈 수는 있지만 지니지 않은 요소로 새로운 걸 만들 순 없는 거죠.



다큐멘터리의 궁극적인 주제에 따르면,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며, 누군가의 성격을 바꾸려 하기보다 수용함으로써 그 성격의 강점을 더 잘 발현할 수 있다.


부모 혹은 지도자가 흔히 행하는 나쁜 습관 중 하나가 자식이나 구성원의 타고난 성격을 바꾸려 한다는 점이다. 내성적인 사람을 향한 편견이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기도 하다. 사회생활을 위해 자기 본연의 모습을 애써 억누를수록 그 고유한 성격으로 이뤄 낼 성취 혹은 자아실현과 멀어진다.


오직 유화만이 멋져 보여 타고난 조각가의 자질을 깨닫지 못하면 결국 조각가도 화가도 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자신 있는 일을 고르기에 앞서 나의 성향과 가치관을 끊임없이 성찰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사회는 좋은 성격과 나쁜 성격을 규정하고 사람들이 좋은 성격을 갖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사실 성격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좋고 나쁜 건 도덕성이나 됨됨이다. 모든 성격은 제각각의 가치와 가능성을 지닌다. 개개인의 개성과 입장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은 모두가 소외되지 않는 올바른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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