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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사랑 Mar 22. 2019

이 세상 대부분의 혼자는 아무렇다



스물넷이 된 날엔 혼자였다.


4학년 1학기, 애인은 없었고 수업은 2교시부터 8교시까지 꽉 차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신촌으로 가서 또 드라마 작가 수업을 들어야 했고 모든 일과를 마치면 막차 한 시간 전이었기 때문에 아무 약속도 잡지 못했다.


만석 지하철과 꽉 찬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려 들어가고, 4학년씩이나 되어서도 목소리를 떨며 발표 시간을 오버하고, 수업 시간에 제멋대로 지각하고, 다시 만석 지하철을 타고. 특별히 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다.


그날은 온종일 낯선 피해 의식에 사로잡혔다. 환영받아야 할 날에 왠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단 피해 의식. 생일이라는 게 뭐길래, 원래 혼자 잘 다니면서 그날따라 억울했다.


저마다의 부담과 우울을 짊어지고 캠퍼스를 바쁘게 걸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밀물처럼 밀려드는 서글픔을 참아 냈다. 스스로가 아이 같아서 이제는 어른이 되어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는 이유로 그 생소한 절망감을 어디에도 토로하지 말고 묵묵히 참아야 한다는 게 싫었다.


태어나 1년씩 2년씩 그렇게 스물네 해씩이나 살아왔다는 건 결과적으로 쓸쓸한 일일 뿐이었다.



응. 내가 바로 달려갈게.



전철을 타고 가는데 어디선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에게도 누군가가 응, 내가 바로 달려갈게, 라고 말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일인데 혼자 있으니까 당연히 그런 기분이 들 수 있어. 괜찮아. 내가 갈게.


외로움이라는 것은 이런 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나에게 당장이라도 달려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오라는 말 대신 간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 챙기란 말 대신 챙겨 주겠단 말을 듣고 싶은 것. 가끔은 당신의 시간이 아니라 내 시간을 먼저 배려받고 싶은 것. 당신의 필요로 오는 연락이 아니라 나의 필요에 맞는 연락을 받고 싶은 것.


하필이면 낙엽이 무르익은 쓸쓸한 한가을. 오늘도 빈틈투성이였던 하루를 보낸 나에게, 어제나 오늘이나 특별할 것 없이 똑같은 플레이리스트에 아쉬워하고 지루해하고 서글퍼한 나에게, 억지로라도 훌쩍 떠나 버릴까 고민하다 결국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발 돌린 나에게, 조금은 어른이 되었구나 하며 홀로 뿌듯해한 나에게 결국 오고야 마는 것은 없었다. 그러니 “응. 내가 바로 달려갈게.” 옆에 선 양복쟁이 아저씨가 전화기에 대고 하는 소리에 괜히 심통이 났다.


생소한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묵묵히 선 채로 집으로 향하는데 그럼 나는 누군가에게 기꺼이 달려가 준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쪽으로 가겠다고 한 때가 있었던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누군가에게 달려갔던 건 오로지 그 사람만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내가 혼자이기 싫어서였을까?


나는 혼자가 좋다.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책을 읽고 혼자 돌아다니는 게 좋다.


하지만 진정 끝까지 혼자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 혼자가 아무렇지 않게 계속 혼자일 수 있는 건 일종의 재능이다. 이 세상 대부분의 혼자는 아무렇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잘하는 혼자만이 어른이 된다. “내가 바로 달려갈게.”라는 말에 동요하지 않는 혼자만이, 어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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